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입추가 지나니 거짓말처럼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네요. 저는 최근 『편안함의 습격』이라는 책을 읽으며 바쁜 일상에서 작게나마 빈 공간을 만들어보려 애쓰는 중이에요. 오감의 자극이 전혀 없는 상태를 느껴보고 싶어 휴대폰을 멀리 치우고 음악마저 끈 채 눈을 감아보는 연습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산책을 나갔는데, 매일 귀에 꽂고 있던 에어팟을 빼보았어요. 앱을 통해 흘러나오는 기계음을 끄고 무심하게 걸었어요. 며칠 동안 괴롭히던 생각의 타래가 신기하게도 스르륵 풀려나가는 경험을 했어요.
자리를 비워야 비로소 찾아오는 것 같아요. 작은 여백을 조금씩 더 자주 만나보려고 합니다.

✏️ 이렇게 사용해요
단골 길이 있다. 은행, 병원, 도서관, 수업 등 삶의 축을 이루는 장소에 갈 때마다 거치는 길이다. 목적지는 달라도 향하는 길은 늘 같다. 자꾸 걷다 보면 미세하게 바뀌는 풍경을 자연스럽게 알아차리게 된다.
요즘 같은 여름에는 나무들이 모두 무성한 초록이다. 그래서 나무들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진분홍 꽃이 포도송이처럼 피고 나서야 ‘배롱나무였구나!’ 하고, 하얀 표창 같은 꽃이 펼쳐지고 나서야 ‘산딸나무였구나’ 알아본다. 주렁주렁 열매가 달리고 나서야 감나무였다는 걸, 작은 열매가 알알이 맺혀야 아로니아였다는 것도 알게 된다.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어야만, 결과를 내야만 알아보는 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다. 수없이 지나쳤어도 그저 ‘나무’라고만 불렀으니까. 매일 같은 길에서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우듬지만 보아도 ‘아, 너였구나’ 하고 알아볼 수 있겠지.
💥<에디터의 질문> 우리는 꽃이나 열매처럼 눈에 띄는 모습이 나타난 후에야 대상을 알아채곤 합니다. 하지만 오래 관심 두고 들여다본 길에서는 아무런 장식 없는 맨 꼭대기의 우듬지만 보고도 '아, 너였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순간이 옵니다. 늘 곁에 있어 익숙하지만, 알고 보면 내가 여전히 꽃과 열매의 화려함으로만 판단하고 있던 대상은 누구 혹은 무엇인가요?
나무 다섯 그루의 우듬지를 상상하는 모음곡

시벨리우스(Sibelius)의 <나무들(The Trees, Op. 75)>은 <나무들(The Trees, Op. 75)>은 <꽃이 피는 마가목>, <외로운 소나무>, <사시나무>, <자작나무>, <가문비나무>까지 다섯 그루의 나무를 각각 한 곡에 담았습니다. 같은 나무라도 계절과 날씨, 서 있는 곳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가는 것처럼요.
시벨리우스는 나무를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았다고 해요. 핀란드의 숲과 자연은 중요한 영감이었고, 실제로 나무를 바라보며 음악적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집니다.
나무를 바라볼 때 우리는 보통 꽃과 열매부터 봅니다. 조금 더 올려다보면 시선은 나뭇가지 끝, 우듬지로 향합니다. 가지가 가장 높이 뻗어 있는 우듬지까지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 그루의 전체적인 모양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지요.
다섯 곡을 들으며 마음에 드는 나무 한 그루를 골라보세요. 그리고 그 나무를 천천히 상상해 보세요.
낯선 단어 '우듬지'를 일상으로
[👁 눈으로] 무성한 초록 잎들 너머,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우듬지)가 여름 하늘과 닿아 있는 모양을 유심히 관찰하기
[✍️ 손으로] 매일 만나 익숙하지만, 아직 전부는 잘 모르는 존재(가족, 친구, 혹은 일상의 물건)의 사소한 특징 하나를 노트에 적어보기
[🚪 밖으로]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러 식물도감을 찾아보고, 늘 걷던 길 위 나무들의 진짜 이름을 확인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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