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연휴 동안 뭐 하셨어요? 오래 벼르던 전시를 보러 간 분들도 있었을 테고,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다짐한 분들도 있었을 거예요. 별로 당기지 않아서 계속 미뤄두었던 영화를 시도했다가, 이미 봤던 드라마를 다시 튼 분들도요. (물론 저처럼 일한 분들도 계시겠지요)
보고 싶은 것과 보기 싫은 것, 가고 싶은 곳과 가기 싫은 곳. 사소하지만 그 선택들이 누군가를 보여주는 꽤 솔직한 사실들이잖아요. 무엇을 골랐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이니까요. 그래서인지 구독자님의 연휴도 궁금해지네요!

✏️ 이렇게 사용해요
대학생이 되어 살던 도시를 떠났다. 새로운 도시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친구와 선배들이 있었다. 미술 전공이라 그런지 하나같이 취향도 개성도 뚜렷했다. 그들은 내가 미쳐있던 남자 아이돌 대신 들어본 적 없는 심오한 메탈을 좋아했고, 베스트셀러 매대의 자기계발서 대신 몽환적인 유럽 소설을 좋아했다. 납작한 원색의 아이팟을 하나씩 들고 휠을 빙글빙글 돌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삼각기둥 모양의 MP3 플레이어를 가방 속에 넣은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노래를 들었다. 누군가는 나의 뭉툭한 MP3 플레이어, 신분증에 적힌 주소지, 초록색 치마에 대해 함부로 지껄이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무례함을 무례하다 지적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가 가진 것들이 부끄럽기만 했다. 처음 받은 알바비로 신상 아이팟을 구매하고 나서야 편안히 테이블 위에 MP3 플레이어를 올려둘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얼마나 속상했을지...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오래 안아주고 싶다.)
나의 호오는 중요하지 않았고, 남의 호오를 내 호오인 양 보여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하지 못하고 가까워진 것들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남들의 호오를 공유하며 남들과 보낸 시간은 시끌벅적했지만, 찰나일 뿐. 부츠에 작은 모래알이 들어간 듯 문득 불편해지곤 했다. 좋아한다고 믿으며 꾸역꾸역 쥐고 있던 것들은 시간이 흘러 결국 손에서 허무하게 미끄러져 나갔다. 토요일 저녁 6시 반에 모여 무한도전을 보고,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걸고 원 카드를 하다가, 노래방에서 밤새 무한도전 가요제 노래를 열창했던 이들만 끈끈하게 곁에 남았다. 나의 호오를 외면할수록 외롭지는 않았지만 내가 점점 흐릿해졌고, 나의 호오를 지켜낼수록 주변은 고요했지만 나는 단단해졌다.
호오를 선명하게 만드는 책 시리즈


"아무거나", 또는 "다 좋아"라는 말 뒤에 숨겨두었던 구독자님의 진짜 마음은 무엇인가요? 바깥에서 정해준 취향이 아니라 마음이 반응하는 호오를 분명히 알게 되는 만큼 개인의 세계가 견고해지는 것 같아요.
취향의 발견부터 일의 철학, 그리고 삶의 클래식까지. 서재 한 켠을 채울 수 있는 출판사의 책 시리즈를 소개해드려요. 아직 구독자님의 호오가 모호하게 느껴진다면, 이 시리즈 중 한 권일지라도 더 눈길이 가는 책을 찾아보세요.
- 아무튼 시리즈(출판사: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지독하리만큼 강렬한 '호(好)'의 기록. 남들이 뭐라든 내가 좋으면 그만인 것들. 한 사람의 세상을 가득 채운 '좋음'을 집요하게 따라가다 보면, 나의 숨겨진 취향도 발견할 수 있어요.
- 에디터의 호: 《아무튼, 술》, 《아무튼, 클래식》, 《아무튼, 뉴욕》
- 띵 시리즈(출판사: 세미콜론): 식탁 위에서 마주하는 솔직한 '호오(好惡)'.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 입안에 남는 기억과 감각. 무엇이 먹고 싶은지 아는 것도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작이지 않을까요?
- 에디터의 호: 《삼각김밥 : 힘들 땐 참치 마요》, 《훠궈 : 내가 사랑하는 빨강》, 《와인 : 방법은 모르지만 돈을 많이 벌 예정》
- 자기만의 방(출판사: 휴머니스트): '호오'를 돌보는 생활의 기술. 먹는 빵, 가꾸는 채소, 휴식과 일상까지 '나다움'으로 채워가는 풍요로운 일상을 제안해요.
- 에디터의 호: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민음사): 시대를 초월한 인류의 '호오'. 고전은 수백 년 동안 수많은 독자가 사랑하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질문들의 집합체입니다. 거장들의 문장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과 마주할 수 있어요.
- 에디터의 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오만과 편견》
- 땅콩문고(출판사: 유유): '호'를 실력으로.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할 때, 그 마음을 지속 가능한 실력으로 단련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요. 공부하고, 쓰고, 만드는 사람들의 현장감 넘치는 기록이 한 단계 더 깊은 전문성으로 이끌어줍니다.
- 에디터의 호: 《산책하는 법》, 《어린이 책 읽는 법》
지난주 낯선 단어: 푹하다
올겨울에는 이상하게 두꺼운 코트를 자주 꺼내 입습니다. 날이 푹한데도, 몸을 한 번 더 감싸고 싶어집니다. 사람들 사이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말이 많지 않아도 피로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굳이 자리를 피하지 않습니다. 대신 등을 의자에 깊이 기대고, 숨을 천천히 고릅니다. 마음이 조금 가라앉으면 주변 소리가 덜 날카롭게 들립니다. 특별히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안쪽이 푹 잠긴 듯 편안한 감각입니다. 요즘의 저는 그런 순간을 일부러 만듭니다. — by.모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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