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원래 아침 8시에 발송되는 '낯선 어휘집'이 지난주에는 실수로 정오에 발송되었어요.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정오에 보내드리는데, 혹시 기다리셨나요?
저는 월요일 오전에 부담스러운 발표가 있을 때가 많아, 월요일 이 시간이면 주말 내내 긴장했던 몸이 풀어지곤 해요. 물론 월요일 오후도 쉽지 않지만요. 이미 지나온 시간에 대한 안도와 아직 남아 있는 시간에 대한 기대나 두려움이 교차하는 지점이네요. 묵묵히 식사 후 원치 않는 곳으로 돌아갈 수도, 충동적으로 자체 휴가를 쓸 수도 있을 테죠.
봄날의 정오, 하루의 한가운데에서 숨을 고르고 계실 구독자님과 함께 할 수 있어 기뻐요. 찬란하게 남은 오후의 풍경은 온전히 구독자님의 것이기를 바랄게요!

✏️ 이렇게 사용해요
인생이 24시간이라면 내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어느 구석을 찌르고 있을까.
칠흑의 밤을 건너는 동안 눈은 점차 어둠에 익숙해졌다. 깊고 검은 구멍 속에서 점차 희끗하게 드러내는 형체를 경이롭게 바라보며 다 아는 줄 알았다. 곧 해가 떠서 세상이 구석구석을 밝히리라고는 모르면서, 어둠 속에서 뭉그러진 얼굴들이 전부인 양.
활줄에 해를 걸어 하늘에 건다고 준비가 된 것은 아닌데, 아직은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면서 눈을 비비고 싶은데, 입고 싶은 옷과 신고 싶은 신발을 고를 새도 없이 길을 나섰다. 발은 어디로 왜 가야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목적지라고 부르는 곳을 향해 바삐 움직였다. 사람에 밟히고 돌부리에 넘어질 뻔하다가 어깨를 강하게 치고 지나가는 힘에 주저도 앉았다가 쇼윈도를 통해 이국적인 스노우볼 안에서 흩날리는 눈송이에 시선을 빼앗기며 구경도 했다가. 아프면 아픔을 받아들이며 속도를 늦춰도 됐을 텐데 그때는 왜 몰랐는지. 지금 이 길을 걸으면, 다시 이 길로 돌아오기까지는 한참이라는 것을. 잠깐 잔소리 한 번, 오리걸음으로 운동장 한 번 걸으면 되는데 뭐 그렇게 급히 발을 움직였는지.
환상의 성에 급하게 들여놓은 몸뚱이가 되돌아 나가는 것을 허용치 않겠다는 듯 무시무시하도록 아름다운 철문이 굳세게 닫혀버렸고, 차가운 오전의 시간이 흘렀다. 의자에 붙은 엉덩이는 아파오고, 무거운 먼지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눈이 자꾸만 꿈뻑여도 다르지 않으려 억지로 버티는 시간.
하오가 시작되자마자 날이 좋아서, 찬란한 빛같은 미소가 떠올라서 자리를 박찼다. 12시 5분. 오전이 끝났다는 안도와, 오후가 시작된다는 긴장이 숨과 숨 사이에 번갈아 넘어간다.
하오에는 조금 달라도 될 것 같다. 고장 난 CCTV가 한 점만 응시하는 벽을 넘어 나만 아는 골목 하나쯤 발견하고 싶다. 좋아하는 냄새가 나는 빵집이 있고, 철저히 존재를 무시당해 온 낡은 벤치가 있고, 남몰래 등을 쓸어주는 그늘이 있는 곳. 그럴싸한 구원의 빛이나, 시간 맞춰 열릴 철문을 기다리는 것보다 그 골목을 걷는 동안의 표정과 태도가 좀 더 나다운 것 같아서. 하오는 주르르 흐르는 땀을 내 속도에 맞춰 닦아주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
시침이 이제 겨우 정오를 넘겼다. 아직 해가 한참 남았다.
하오, 바깥으로 기울어지는 마음을 붙잡고 가야 할 곳
햇볕의 농도가 짙어지는 것을 보니, 이제 기꺼이 바깥사람이 되어야 할 계절입니다. 제 지도 앱 속에는 1,000곳 이상의 장소가 저장되어 있어요. 따뜻한 기온이 몸을 감싸는 이 시기가 오면, 고를 수 있는 옵션이 더 많아져서 설레면서도 고민에 빠지곤 합니다.
다녀온 뒤 한 번 더 가고 싶은 공간들은 특별히 핑크색 아이콘으로 다시 저장해둬요. 진짜 추천하고 싶은 저만의 리스트에요. 오늘은 그 중에서도 하오에 볕과 바람을 누릴 수 있는 공간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 더숲초소책방(서울)
- 인왕산 중턱에 자리 잡은 카페 겸 책방. 도착까지 여정은 조금 험난하지만, 서울 시내의 파노라마 뷰가 모든 수고를 잊게 해줘요! 탁 트인 야외 테라스에 앉아 봄바람을 맞으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도심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요.
- 콘드에뻬뻬(서울)
- 정원에 놓인 테이블들이 마치 프랑스 어느 정원에 와 있는 듯 착각을 일으켜요. 아이에게도 다정한 세심한 배려 덕분에, 온 가족이 여유롭게 야외 브런치를 즐기기 좋은 공간이에요.
- 과수원프로젝트(이천)
- 사장님이 고른 식물들이 곳곳에 생기를 더하는 카페에요. 카페 옆 넓은 정원에서는 강아지가 신나게 뛰어 놀 수 있어, 반려견과 함께 봄 나들이를 계획 중이시라면 추천해 드려요.
- 돌미나리집(남양주)
- 한강 자전거 길 옆의 오래된 노포로, 오래된 분위기와 세월의 결이 느껴져요. 요즘 제철인 미나리의 향긋함을 즐길 수 있어요. 바삭한 미나리전에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면, 그 어떤 화려한 접시보다 풍성한 맛을 경험할 수 있어요.
- 싱글핀에일웍스(양양)
- 바닷바람 냄새를 맡으며 들어서는 크래프트 맥주 펍입니다. 서핑과 힙한 감성이 섞인 이곳의 별미는 초당 옥수수튀김! 수제 맥주와 함께, 다가올 여름을 미리 상상해 보는 건 어때요?
- 스누피가든(제주)
- 단순한 어린이 전용 캐릭터 테마 파크를 넘어, 제주의 자연과 스누피의 철학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야외 정원입니다. 다양한 테마로 꾸며진 산책로를 걷다 보면 어느새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탐험을 즐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지난주 낯선 단어: 목하
요즘 나는 정리를 미룬다. 해야 할 일은 분명한데,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대신 책상 위를 조금씩 비우고, 오래 쌓아둔 파일을 하나씩 열어본다. 급한 일은 아닌데 자꾸 눈에 들어오는 것들. 누군가는 비효율적이라고 말하겠지만, 나게는 지금 필요한 순서다. 목하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나는 후자를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본다. 당장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이 시간을 건너뛰고 싶지는 않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우회하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곤 한다. 밀어붙일 때보다 방향이 또렷해진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보다, 왜 이걸 붙잡고 있는지 묻게 만드는 시간이다. — by.봄동비빔밥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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