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오늘도 밝게 인사 나누고 싶지만, 요즘 저는 마음이 무거워요. 한창 설렘으로 가득할 시기인데 말이죠. 그 이유는 저의 피드에 가득 찬 슬픈 썸네일 이미지와 최근 읽은 책 때문일 거예요. 오늘 인사는 책의 구절로 대신합니다.
허락한 적 없고 동의하지도 않은 전쟁으로 언제라도 부상과 죽음이 가능해진 비상시가 도래했다는 것을 나스차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전쟁을 결정한 정부의 국민은 평범하고 안전한 오늘을 누리고 있는데, 아이를 다치게 하거나 잃을지 모른다는 원시적인 공포를 느낄 필요도 없는데, 그저 아이의 미래를 서로 축복하고 있을 텐데, 태연히, 나태하고도 태연히 풍요로운 저녁 식탁과 따뜻한 잠자리를 나누고 있을 텐데, 왜, 우리만 왜!
조해진, 《빛과 멜로디》

✏️ 이렇게 사용해요
겨우내 차갑게 얼었던 땅이 녹는 해토머리 무렵, 생명의 근원을 감싸안을 자리에 감히 생명의 끝을 심판하는 불청객이 들어앉았다. 봄바람에 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 대신 고막을 찢는 폭발음, 만물을 내려보며 유영하는 구름 대신 중력을 거스르는 시커먼 연기구름도 함께. 그 땅에 발을 붙이고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살아내는 이들은 굉음을 내며 사방으로 날아든 금속 파편을 단 한 번도 허락한 적 없다.
엄마, 밤하늘에 저 빛은 뭐야?
어떤 아이는 끝이 보이지 않는 우주를 뚫고 지구에 도달한 빛을 볼 것이고, 어떤 아이는 칠흑을 가르며 무시무시한 독무를 추는 불덩어리를 볼 것이다. 어떤 아이는 그것을 '별'이라 배울 테고, 어떤 아이는 그것을 '미사일', '폭탄', 혹은 동화책 속 어느 무서운 존재의 이름으로 배울 것이다. 또 어떤 아이의 세상에 담긴 밤하늘에는 미사일의 궤적이 전부일지 모른다.
누군가가 크게 울부짖으며, 아니, 울부짖을 여유도 없이 무심결에 생과 사를 가르는 선택지를 오갈 때, 나는 무슨 음식을 입에 넣어야 더 달콤할지 가늠한다.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할 일상이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으로. 멀리 떠나지 못하도록 단단히 발목을 붙잡은 일상에 안도의 숨을 내뱉다가 이내 그 따뜻한 숨을 쉬어버린 자신을 증오한다.
자연이 당연하게 준비한 부드러운 땅이 밟히고, 짓이겨지고, 뒤집어지며 피와 섞인 진흙이 아무렇게나 튀어 있을 그곳의 잔혹한 해토머리. 나약한 나는 커다란 올리브 나무의 잎사귀 사이로 들어온 눈 부신 빛이 당신들을 감싸기를 쉬지 않고 희망할 것이다.
전쟁 없는 해토머리를 그리며 보고 싶은 작품들

오늘의 뉴스레터는 전쟁에 관한 시선을 담아봤습니다.
저는 그동안 전쟁, 특히 중동에서 전쟁이 발생했다고 하면 마음은 아프지만, 금세 잊어 버려왔어요. 전쟁으로 인한 참혹한 실상보다는 하늘길이 막힌다거나, 기름값이 오른다거나, 주가가 떨어지는 등에 불평을 늘어놓기만 했어요. 그러다 최근 우연히 읽은 책 《빛과 멜로디》에 묘사된 전쟁에 휘말린 사람들, 그들의 연대를 간접적으로 접하며 전쟁이 파괴한 평범한 삶들을 조금은 더 생각하게 되었어요.
당장 제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모든 사람이 일상을 버리고 그곳으로 뛰어들 수 없겠지만 지구 어딘가에서는 계속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되고 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봄이 시작되는 해토머리에 시간을 내어 볼만한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 더 스위머스(The Swimmers, 넷플릭스, 영화)
- 시리아 내전을 피해 독일로 향하는 자매의 실화를 그린 영화입니다. 침몰하는 난민선을 끌고 바다를 헤엄쳐 생존하고, 수영 선수로서 올림픽 꿈을 이루는 과정을 그립니다.
- 사마에게(For Sama, 왓챠, 다큐멘터리)
- 시리아 내전 중 태어난 딸 '사마'에게 엄마가 남기는 기록입니다. 저널리스트이자 엄마인 와드는 전쟁의 고통뿐 아니라 폭격 속에서도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병원을 지키는 아름다운 일상을 담습니다.
- 마리우폴에서의 20일(20 Days in Mariupol, 웨이브, 다큐멘터리)
- 러시아의 침공으로 고립된 우크라이나 도시 마리우폴에 끝까지 남은 AP 취재팀의 기록입니다. 러시아가 숨기려 하는 진실을 기록하기 위해 병원에서 아이를 잃은 부모, 집이 무너진 노인 등 평범한 이웃들의 비극을 가감 없이 취재하여 보여줍니다.
지난주 낯선 단어: 일별
잠깐이라 믿었던 일별은 가늘고 기다란 꼬리를 남기다가 끝내 이별이 되기도 했다. 혹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기도 했다. 영원하리라 다짐한 이별은 한순간 웃음이 터져버리는 바람에 일별로 남기도 했다. 때론 단순한 습관 하나로 어이없게 연이 다시 이어지기도 했다.
마지막 순간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나 계획 같은 것들은 그저 연약할 뿐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근거를 모으고, 다시 한 번 결심을 다잡고, 괜히 헛기침을 한다고 해서 일별이 이별이 되고 이별이 일별이 되지 않았다. 꼭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골치 아픈 일이다. — by.누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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