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9. 민들레의 법칙

불안한 세상에서 안정감을 찾는 법

2026.10.17 | 조회 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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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감이 있으시네요." 

한 달 남짓 새로운 회사에서 일하며 동료들에게 자주 들은 말입니다. 빠른 속도로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해야하고, 소화해야 할 맥락이 많은 직군 특성상 입사 초반에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별로 힘들어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짧은 시간 내에 적응을 잘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이었습니다만, 그 말을 듣는 순간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불안은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성장 속도가 빠른 회사일수록 스트레스의 강도와 빈도도 높아집니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과 동료의 평가에 대한 걱정은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짐이 되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칠 때도 있습니다.

회사 밖이라고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관계의 갈등, 정서적인 동요는 일뿐 아니라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찾아옵니다. <액체 사회>로 잘 알려진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전통과 규범, 계급, 종교 등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는 ‘액체 근대’의 세계에서 현대인들이 필연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안정감을 찾아야 할까요? 불안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외부의 평가나 상황에만 의존하지 않고, 내면에서 안정감의 근원을 찾아야 합니다. 룰루 밀러의 아름다운 에세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다시 꺼내 읽으며 불안을 마주하는 법과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는 한 주를 보냈습니다. 매일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고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저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진정한 안정감은 어디에서 오는지 곱씹어 봅니다.

 

장 줄리앙, <Etude de la Vague>
장 줄리앙, <Etude de la Vague>

 

불안 신호 알아차리기


스트레스 워치라는 앱을 요즘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박 변이도(HRV)를 측정해 현재 스트레스 정도를 알려주는 앱인데요. 내가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불안의 파도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불안한 마음을 알아차리면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그 원인이 되는 외부적, 내부적 요인을 살펴볼 수 있는 거리감이 생깁니다.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면 불안은 곧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통제하거나 수용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얼마 전 팀 위클리 미팅 중에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 동료의 질문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에 대한 질문에 공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당황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방어해야 하지? 나의 답을 기다리는 듯한 팀원들의 눈빛이 나를 평가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온몸에 열이 오르면서 얼굴에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콜린성 두드러기.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10년째 달고 사는 고질병입니다. 몸에 열이 오르면 얼굴부터 온몸으로 붉은 두드러기가 번집니다. 더운 날씨나 운동, 사우나, 매운 음식에도 바로 반응이 오지만 스트레스에도 즉각적으로 스위치가 켜집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좍좍 분비되는 게 느껴지는 기분이랄까요. 처음에는 이게 엄청난 스트레스였습니다. 당황하거나 위축되더라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싶은데, 얼굴색이 달라져 버리면 속마음을 감출 수가 없더라고요.

회의가 끝나고 무엇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동료의 질문 자체보다도, 회의 내내 많은 아젠다를 공유하면서도 팀원들의 반응이 없어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는지, 다들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 더 큰 이유였습니다. 팀원들에게 피드백을 구하자 "소화해야 할 정보가 너무 많으니 속도를 조절해주면 좋겠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팀원들의 눈빛이 나에 대한 불신이나 의구심을 드러낸 것이라는 혼자만의 추측이 사라지자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나의 신체와 행동은 지금 내가 불안과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보다 정확하고 즉각적으로 알려줍니다. 불필요한 멀티태스킹도 그런 신호 중 하나입니다. 저는 마음이 불안하면 모니터에 창이 수십 개씩 열리고, 같은 화면을 여러 개 띄워놓기도 합니다. 그럴 때 잠시 멈추어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지 외부적, 내부적 요인을 살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지금 왜 불안하지?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해보면 점점 증폭되던 폭풍우도 작은 찻잔 속 소용돌이처럼 잔잔해집니다.

 

서로를 위한 그물망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로 띄워주는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물망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는 그것이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 행성에서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안정감이란 모든 것이 잘될 거라는 확신보다, 모든 것이 잘되지 않더라도 괜찮을 거라는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괜찮을 거라는 막연한 다짐은 종종 공허한 외침처럼 느껴집니다. 번지점프대 위에 올라선 나를 상상해봅니다. 하네스와 생명줄이 있으니 떨어져도 괜찮을 거야. 그런데 이 생명줄마저 끊어진다면? 그래도 괜찮을까요? 나를 지탱해 줄 안전망의 마지노선은 어디일까요. 나는 무엇에 기대어 실패해도 괜찮다고 믿을 수 있을까요.

보다 근본적인 불안은 나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됩니다. 나의 존재는 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룰루 밀러는 회의주의적인 아버지 밑에서 삶을 긍정할 방법을 찾다가 생물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야기를 마주합니다. 재난에 가까운 시련 속에서도 세상의 생물을 분류하고 이름 붙이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삶을 따라가며, 삶의 의미를 향한 희망의 실마리를 찾습니다.

그러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존재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역설적으로 존재 가치를 규정하는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우생학은 사람의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성공한 사람, 유능한 리더, 좋은 직업, 정상적인 삶 같은 말을 쓰곤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저마다의 기준이 숨어 있습니다. 그 기준은 다른 방식의 리더십을 무시하고, 새로운 기회를 놓치게 하며, 다른 삶의 방식을 열등한 것으로 취급하는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룰루 밀러는 우생학의 피해자들을 따라가던 끝에 희망의 실마리를 발견합니다. 강제 불임화의 피해자가 된 두 여성을 만나 묻습니다. 어떻게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느냐고. 그러자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 때문이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두 사람 사이에서 룰루 밀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실이 연결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두 사람의 존재를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세상의 기준이나 분류가 아니라, 곁에 있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룰루 밀러는 이를 ‘민들레 법칙’이라는 비유로 표현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민들레가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다. 화가에게는 염료이고, 히피에게는 화관이며,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고,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며, 개미에게는 강력한 후각의 세계를 이루는 하나의 지점이다.

지금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작은 부품처럼 느껴지거나, 팀에 어울리지 않는 구성원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는 내가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게 하는 중력이고, 그 사람이 숨 쉬며 살아가는 하나의 세계일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일하며 느끼던 불안도 한없이 작아집니다.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그물망이 되어주는 존재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민들레 꽃밭처럼 밝아집니다.

 

이번 주 일하는 마음 🌿


❶ 나의 몸과 행동은 불안의 신호를 즉각적이고 정확하게 보내준다.

❷ 잠시 멈춰 불안의 내적·외적 요인을 살펴보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❸ 존재의 가치를 하나의 기준으로 규정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❹ 나의 존재를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나요? 이번 주에 일을 하며 찾은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다음 주에도 새로운 주제로 찾아오겠습니다. 뉴스레터는 매주 토요일 발행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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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충격적인 반전과 해방감이 느껴지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과학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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