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주제로 뉴스레터를 써볼까 곰자자족과 의논하다가 요즘 내게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강한 인상을 남긴 문장에 대해 써보자 제안했다. 그때는 마침 동네 빵집에서 보낸 광고문자에 감탄했던 찰나였다.
‘빵은 작품이다’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천천히, 정직하게 반죽합니다.
매월 진행하는 할인행사 안내 광고였지만, 행사보다 구구절절 적어내려 간 빵집철학 공유가 먼저인 문자였다. ‘그 빵집에서 일하는 종업원도 모두 같은 마음일까?’하는 삐뚤어진 의문도 들었지만, 광고 문자 하나에도 신경 쓴 것은 틀림없으니 많은 부분 공들였을 거란 짐작해봤다. 사실 이 빵집은 굳이 광고하지 않아도 손님이 몰려들고, 지역 브랜드지만 다른 지역에도 소문이 나 우리 시에만 몇 개의 매장을 운영할 만큼 인기있는 곳이다.

이렇게 빵집 문자 하나에 감동을 받는 나여서, 메일 한줄에도 쉽게 분노한다. 이번 주제가 정해지면서 꽤나 오랫동안 머리에 박혀 있던 메일을 검색했다. 딱 두 줄짜리 메일은 3개월도 더 지난 8월에 수신되었다. 두 줄 중 마지막 문장을 공유하자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저 문장에 꽂혀 지난 여름 더위 만큼이나 뜨겁게 불타올랐다.
부연 설명을 해보자면, 지난 여름 난 한 정원의 식재현황 조사 중이었다. 도면을 보며 이 정원에 나무와 꽃들이 도면대로 심겨져 있는지, 또 해당 식물 중 몇 주가 죽고 몇 주가 살아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아직 배우는 단계의 나로서는 공부가 많이 필요한 작업이었기에 정원으로 향하기 전 도면을 기준으로 해당 정원에 심겨진 200여종의 식물을 먼저 찾아보고, 현장에서 바로 알아볼 수 있도록 컨닝 페이퍼도 만들었다. 한 개의 정원이였지만 6구역으로 나눠 오밀조밀하게 다양한 식물들이 식재돼 있었다.
하루 한 구역 씩 조사를 끝내겠다고 계획했지만, 역시 계획일 뿐이었다. 비슷해 보이는 침엽수의 원예종을 가려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같은 조상에서 비롯된 나무들의 잎 모양이나 색 등이 달라진 것이 원예종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여러 초록 중 어떤 것이 연두색이고 어떤 것이 올리브색인지 가려내는 싸움이랄까? ㅎㅎ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았다. 아침 일찍 나가더라도 한시간이면 온몸이 흠뻑 젖는 무더운 나날들이었다. 나름대로 준비해 간 자료와 도면, 현장을 번갈아 보며 확인하고, 정 안되면 잎과 줄기, 전체 수형을 사진 찍어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렇게 정원과 사무실을 들락날락 거리면서 보름이 넘어서야 겨우 조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현황 조사가 끝나면 표찰(식물의 이름표. 국명, 학명, 과명 등이 적혀 있다)이 필요한 식물들을 추려내어 제작해 해당 자리에 꽂아 놓는다. 말은 쉽지만 나의 조사 내역이 맞는 것인지 검수하는 작업도 필요하고, 내가 기입한 낸 표찰 개수가 적절한지 확인도 받아야 한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표찰을 만들어 정원에 꽂았다. 또 다시 땡볕 아래 얼굴이 벌게졌고, 수십개의 표찰을 꽂았다. 그리고 나서도 해결하지 못한 전문 부분은 담당 주무관에게 넘겼다. 그때 내게 돌아온 메일이 앞서 말한 그 메일이었다. 나머지는 본인이 하겠으니 더는 신경 쓰지 말라는 답변.

내용상 문제될 것은 없었으나 내 기분은 그게 아니었다. 메일을 받고는 벙 쪄 버렸다. 주어진 업무를 한 것 뿐이지만, 더는 신경 쓰지 말라니. 조사하며 문의했던 부분에 대한 답변이나 이 후 이렇게 진행되었다 정도의 피드백은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내가 또 물어본다면 답변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레터에서 그 미묘한 이야기들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여튼 당시 나는 몹시 화가 났다. 만약 저 메일에 ‘수고했다’는 문장이라도 하나 들어있었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메일일텐데 말이다.
그 전까지는 주로 카톡이나 말로 업무 지시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보낸 메일은 일종의 선언처럼 다가왔다. 더 이상 이 부분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고 다른 일이나 하라는 것처럼 느껴졌달까.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 반문할 수 있는데, 예민한 게 맞다. 정원을 조사하는 동안 나는 내가 찾은 정보 값이 맞을까 몇 번을 확인하고 주변에 묻고 구글의 도움을 받아 영국이나 미국은 물론 낯선 유럽의 나무 사이트들도 뒤지고, 외국 논문까지 찾아 읽으며 이 학명이 맞는지, 이 표기는 맞는지 예민하게 검수했다. 또 그렇게 발견한 사실들은 각종 각주를 달아 길고 긴 메일로 확인을 요청하곤 했다. 그런 나에게 단 두 줄로 마무리 짓다니.
화가 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화를 낸다고 바뀔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타산지석의 또다른 돌멩이를 하나 주운 것 뿐. 물론 이렇게 생각하기 까지는 꽤 시간이 흘러서였다.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 중 하나가 ‘타인에게서 보기 싫은 나의 면을 발견해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과거의 나도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하게 메일을 보내고 종료된 업무에 대한 별다른 피드백 없이 다음 업무를 이어 갔었다. 이제서야 의례적인 친절이라도, 습관처럼 보여주는 다정함이라도 그것이 일이 굴러가는데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하는지 온몸으로 깨닫는 중이다.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서 권해효(브라이언)는 고민에 빠진 직장 후배 임수정(배타미)에게 인생 스포를 한다.
“마흔여덟이 되면 그런 생각이 들죠. 옳은 건 뭐고 틀린 건 뭘까. 나한테 옳다고 저 사람한테도 옳을까. 나한테 틀린다고 저 사람한테도 틀릴까. 내가 옳은 방향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해도 한가지는 기억하자. 나도 누군가에겐 개새끼일 수 있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이제보니 그 메일은 내게 화를 부르는 돌멩이라 생각했는데, 나를 비추는 거울이었는지도. 이제 딱 일주일 남은 수목원 근무 기간. 가식적이라도 더 많이 웃고 좀 더 친절하자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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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마치 퇴사를 결심한 후배가 꺼내는 클리셰 같은 문장. 후배를 둔 직장인이라면 뜨끔할 이 문장을 구독자 여러분께 던집니다. 어느덧 사회생활 10년이 훌쩍 넘은 경력자들이지만 여전히 머릿속에 물음표를 달고 때론 답답한 마음에 풀리지 않는 분노를 삭혀가며 고군분투 중인데요, 이런 저희에게 본인의 경험담과 생각을 들려주실 귀한 선배님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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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내 주변에 이 사람이 생각났다!’ 하는 분이 있다면 자유롭게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평생해야 할 일이라면 내 일을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또 본인의 일을 즐기는 사람이 더 많아질 수 있게 함께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회신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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