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달렸을까요? 쉼 없이, 정신없이 달려만 왔어요.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까지 저를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조금 미안하더군요. 쉼표를 찍을 때가 온 거죠. 제가 운영하는 '내 글에서 빛이 나요'에 참여하시는 정 혜 작가님은 매화 사진을 늘 멋있게 찍어서 공유하시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글로 만난 매화향이 정말 궁금했어요. 그래서 일요일에 봉은사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봉은사는 추억의 장소입니다. 예전 직장이 봉은사 옆에 있어서 점심식사 후 자주 산책을 했어요. 그리고 바로 2년 전 예전 직장에 함께 다녔던 세 명 모두 각자의 길을 찾아 퇴사한 후 만난 장소이기도 하죠. 그때는 다른 동료가 번개를 쳐서 만났는데요. 이번에 제가 당일 번개를 외쳤어요. 둘 다 시간이 안 된다 해도 저 혼자라도 가려고 했어요. 전 쉼이 필요한 상태이니까요.
"봉은사에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제보받아서 벙개 한번 쳐봅니다."
"가족들을 늘 그러듯이 등한히 하고, 두 사람 부름에 아무 때나 됩니다."
"좋아요."
번개에 이렇게 흔쾌히 대답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감사하더군요. 그렇게 우리 셋은 예정 없이 봉은사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2년 전 동료는 박사 진학을 선언했는데요. 어느덧 시간이 흘러 수업(coursework)은 거의 끝나가고 논문을 준비할 단계네요. 인생의 반을 산 후 시작한 박사 진학이라 무척이나 놀랐는데 정말 시작이 반인가 봅니다.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시작에 끝이 보이니 말이죠. 박사를 하는 동안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작은 회사에 취업도 했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운동 앱으로 매일 15분 근력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운동 앱을 다운받았습니다. 혼자 요가를 하지만 앱에서 알려주는 대로 시간에 맞춰 운동하니 더 재미있더군요. 독서 이야기도 나누며 '매일 독서 습관 쌓기' 모임도 알려주었어요. 책을 읽으면 그 내용을 금세 잊는다고 해서 독서 토론과 서평 쓰는 중요성을 강조했어요. 다음에 만날 때는 책 한 권을 정해서 서로 토론해보자고 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동네 책방 이야기가 나와서 제 꿈이 작은 책방을 여는 것이라 말도 하고, 책 추천 서비스 이야기를 하다가 구독 경제까지 나누었는데요. 면도기 구독 서비스라는 새로운 정보도 얻었어요. 신문, 우유 구독에서 정수기 렌털로 그리고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확산되었는데, 이제 구독이나 공유하지 않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정말 무섭게 변하는데 우리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두렵기도 합니다.
봉은사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동백꽃을 보았어요. 저는 동백꽃이 겨울에만 피는 줄 알았는데 지금이 한참이군요. 매화로 가득한 봉은사에 동백꽃이 혼자 당당하게 자태를 뽐내더군요. 동료가 문정희 시인의 『동백꽃』을 공유했습니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단호한 참수
- 문정희 시인의 『동백꽃』 중에서
이제 새싹이 나는 봄의 한 가운데 붉은 감탄사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동백꽃과 일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 그윽한 매화향에 푹 빠진 나들이로 심신의 피로를 내려놓았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잠시 쉬어가야 멀리 가겠죠? 3일과 같은 3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다시 일상을 준비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쉼을 누리고 있나요?
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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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심
사진도 너무 좋고 글도 감성적이네요. 봄이 한층 가까워진 것 같아요. 소식 감사합니다~
일과삶의 주간 성찰
감사합니다~ 봄꽃 덕분에 위안을 받습니다. 작가님도 꽃구경으로 힐링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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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ca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ㅡ시인의 언어가 대단합니다. 꽃향기가 나는 봄나들이 글 잘 읽었습니다^^ 어디든 가고 싶습니다ᆢᆢ멀리요ᆢᆢ
일과삶의 주간 성찰
문정희 시인 참 좋더라고요 ㅎㅎ 꽃향기 좀 맡으셨나요? 그렇죠~ 저도 떠나고 싶네요 ㅎㅎ 봄이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봄을 느껴보시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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