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엄마 뱃속에서 나왔지요.” 아들이 눈을 말똥뜨고 엄마에게 묻는다. 드디어 이런날이 오고야 말았다.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놀랐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는다. 아내는 천천히 아들에게 말해준다. “아니. 너도 이모 뱃속에서 나왔어.” 아들이 말이 없다. 그리고 곧 울음을 터뜨린다.
나는 입양부모다. 11년간 아이없이 지내다가 40대를 바라보는 즈음 첫째 아들을 가족으로 만났다. 아이가 없는 삶과 아이가 있는 삶은 전혀 달랐다. 지난 시간 충분히 준비했다 생각했고 그만한 지식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늘 달랐다. 머리로는 프로선수인데 실제 살아보니 아마추어보다 못하다.
아이와 함께하는 세상은 신비 그 자체였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늘상 고요했던 집안에 아이소리가 들렸다. 때로는 까르륵, 우와앙. 만화에서나 보았던 글자가 뛰어나와 현장감 있는 소리로 다가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쉽게 행복을 만들어주는 존재임을 알았다. 하지만 한 가지 몰랐던 게 있었다. 육아는 지식이 아니라 체력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건 지식이 있어야 한다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것인가는 지식이 아닌 체력이 먼저였다. 첫째를 키우며 또 다른 아이를 입양한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첫째를 키우며 미혼모를 돕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의진이(첫째 이름이다)를 키우면서 미혼모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커졌다. 아이를 키우는 건 행복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우리도 이렇게 행복함을 느끼는데 생모가 아이를 키워도 얼마나 이뻤했을까를 생각했다. 조금만 도와주면 아이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미혼모들을 돕게 되었고 러브더월드란 단체를 만들었다.
쉼터를 운영하며 미혼모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쉼터에서 여러 아이가 태어났다. 그 중에 7번째 태어난 아이가 둘째 아이가 되었다. 아이의 생모는 임신한지 6개월쯤 쉼터에 입소했다. 출산할 때 아내가 분만과정에 참여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은 후 우린 생모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날 생모가 우리 부부에게 말한다. “두분이 이 아이를 입양해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이 이름도 지어주세요.”
생모가 아이를 키우도록 권했다. 아이를 충분히 잘 키울 수 있다고,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생모는 자신의 살아온 인생을 아이에게 대물려주는 삶이 두렵다 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엄마를 잊고 살다가 이제 만났다고 했다. 내 엄마에게 딸로 살고 싶다 한다. 여러번 설득해도 굳건한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아이 이름은 ‘여진’이라고 지었다. 여진이의 생모는 쉼터에서 같이 살면서 아이가 100일 될 때까지 모유를 먹이고 키웠다. 100일지난후부터는 입양절차가 진행되면서 여진이를 우리가 키우며 입양진행을 했다. 그때부터 여진이 생모는 이모가 되고, 우린 아빠 엄마가 되었다.
여진이가 우리 방으로 왔다.(쉼터에서 미혼모들과 함께 살면서 한방을 우리 가족이 사용했다) 첫째에게 동생이 생겼다 말해주었다. 첫째는 의아해한다. “내 동생이요?” 첫째는 여진이가 다른이모(아이들은 미혼모를 이모라 불렀다) 배에서 나온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 동생이라니. 아이가 이상하게 생각할 만도 했다. “여진이는 다른 이모배에서 나왔지만 오늘부터 우린 가족이 되었어. 그래서 여진인 우리 가족이고 의진이 동생이야.”
아내가 아이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말해준다. 이때 의진이가 말한다. “엄마 나는 엄마 뱃속에서 나왔지요?” “의진이도 다른 이모 배에서 나왔어.” 그러자 첫째가 계속 묻는다. “누구이모요. 누구요? 민숙이모요? 수정이모요?“ 첫째는 쉼터를 거쳐간 모든 미혼모들의 이름을 말하며 물었다.
자신이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지 못했다는 걸 첫째는 알았다. 아직 어리니까 여러 복잡한 감정들을 느끼지 못하겠지란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첫째는 많이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먼 산을 바라보는 버릇도 생겼다. 이제 겨우 4살을 넘어가는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일은 아닌지 생각되었다.
아이에게 상실감이 찾아왔다. 첫째는 이렇게 물어왔다. “왜 나를 낳아준 이모는 나를 안키우고 입양 보냈어요?” “나를 낳아준 이모가 나를 버린거예요?” 그렇지 않다고 의진이를 낳은 것이 너를 소중하게 생각한거라고. 아이를 키우는 여러 어려움으로 의진이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을 선택했다고 이야기해주어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듯 했다.
입양한 아이들이 상실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상실이 이렇게 아이에게 깊게 다가올지는 몰랐다. 사실 이런 상실감은 난임가정 당사자인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왔다. 아내는 이렇게 이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직접 낳지 못했다는 마음을 터놓았다. “내가 아이를 낳았어야했는데.” 아이가 있으면 모든 슬픔과 서글픔과 서러움이 사라질꺼라 생각했지만 그렇진 않았다.
우리 아이들은 낳아준 생모로부터 분리된 상실감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왜 엄마는 나를 낳아주지 못했어요. 나 좀 낳아주지 그랬어요?”라고 물으며 지금의 엄마 뱃속에서 나오지 못한 슬픔을 토로한다.
우리 부부의 상실과 우리 아이들의 상실감이 서로 만났다. 서로 마주친 순간 첫째가 말한다. “엄마 나 엄마 뱃속에 들어갈래요.” 그러곤 엄마 치마속으로 쑥 들어간다. “엄마, 나 엄마 뱃속에 있어요. 이제 저를 낳아주세요.” 아내는 “이제 우리 의진이를 엄마가 낳는다.” 말하며 쑤우욱 낳았다. 엄마 치마속에서 쏙 나온 첫째는 ‘까르륵’ 웃는다. 처음 우리와 가족이 되었을때 웃었던 그 만화같은 웃음말이다. 엄마뱃속에서 쏙 들어갔다 나오는 일은(우리 집에서 이 놀이는 알낳기 놀이라고 한다)첫째를 지나 둘째까지 계속 되었다.
이제 아이들이 제법 컷다. 첫째는 초등학교 5학년 둘째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우리 아이들은 수도 없이 엄마뱃속에서 들어갔다 나왔다. 아내와 사귈 때 우리는 최소한 4명은 키울꺼라며 당차게 말했던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알낳기 놀이를 통해서 수천번 아이를 낳았다. 상상했던 꿈은 이루었다.
알낳기 놀이를 할 그때 우리 부부와 아이들은 많이도 웃었다. 많이 웃었던 이유는 우리의 상실감이 해소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해 준 것이리라. 인정하며 울 때 서로 울어주고 웃을 때 함께 웃었다. 우리가 가족이 된다는 건 행복하고 좋은 것만으로 가족이 되는 게 아니었다. 서로의 상실을 인정하며 애도할 때 우린 서로 더 가족이 되었다. 첫째와 둘째는 웃기게도 이젠 정말 엄마뱃속에서 자기들이 나온거라 자랑스레 말한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입장이 바꿔지겠지.
가족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전통적인 가족형태처럼 뱃속에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자라고 형성된 것만이 가족일까? 그렇게 본다면 가족의 그릇안에 담기지 못하는 가족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의 이런 모양도 가족이기에 상실로 무너지고 비워진 자리에 서로의 마음을 채워 넣는다. 오늘도 우린 서로 사랑하기로 마음먹으며 살아간다. 우리는 가족이다.
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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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니신나
정말 따스한 이야기예요ㅜㅜ 의진이, 여진이 정말 너무 사랑스럽고 두 아이의 부모님, 세상 아름답습니다. 미혼모를 돌보는 일까지 하시다니, 정말 멋지십니다~♡
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쓰니신나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에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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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빌
알낳기 놀이가 상실을 인정하며 애도하는, 가족이 되는 과정이라 복잡한 마음을 치우지 못하고 계속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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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산소통
글이 너무 따뜻하게 묵직해서 두 번 읽었습니다. 더 많이 듣고 싶네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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