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쓰고뱉다의 글쓰기 과정 최고 단계인 숙성반을 하게 되면서 마주하게 된 나의 고민이었다. 메일리 서비스를 통한 <영심이의 오뚜기 인생> 7편은 나의 어린 시절부터 반백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나의 인생 여정을 담은 글이었다.
1편부터 엄마와의 화해에 관한 이야기였다. 솔직히 꽤 오랫동안 엄마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 성격 차이도 컸고 내가 좀 느리고 곰 같았기 때문에 둔탱이 소리를 들으며 많이 혼났던 것 같다. 언니 두 명도 여우였고 나만 곰이었기에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았다. 혹 내 편이었다면 아빠가 얼굴 표정으로, 고갯짓으로 나를 받아주었던 것 같다. 결국 1편은 어릴 적 우리 가정의 역기능적인 면과 그 화해의 과정을 담았다.
이제 내 나이도 50을 성큼 넘었는데 이제는 얘기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글을 썼다. 그런데 쓰고서 꿰뚫어 생각해 보니 우리 가정이 그렇게 엄청 문제가 있는, 역기능 가정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가정의 특수한 환경하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그런 조금은 슬픈 사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글로 쓰고 뱉어낸 이상 이 글은 더 이상 슬프기만한 사연은 아니다. 쓰고 뱉다를 통해서 ‘내 가정은 역기능 가정이다.’라는 생각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고, 또 그런 상황과 맥락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함께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은 나의 이런 이야기들을 어디서도 말하지 못했다.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더욱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였는지 그런 말 못하는 마음들이 나에게 이러저러한 병치레를 하게 했는지 모르겠다.
7편의 이야기를 써오면서 느낀 점이라면, 먼저 나의 인생 여정의 점철된 기억을 글로 표현하고 퇴고하는 작업과 또 <숙성반> 수업 시간에서 함께 낭독하며 합평하면서 나의 삶이 결코 낙오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경우 평상시에도 보통 만화 영심이처럼 명랑한 스타일로 비추어진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포장된 것일 뿐 의외로 자존감이 낮았다. 그래서 내 자신이, 나의 삶이, 나의 직업들이 그저 그런, 특별하지 않은, 조금은 열등하다는 생각이 잠재해 있었다. 그러나 이 7편의 인생 여정을 스케치하고 그려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모래사장에 파묻혀 있던 다이아몬드처럼 밝게 빛나는 나 자신임을, 나의 인생임을, 나의 직업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의 직업이 2편에 담기게 되었다.
신의 한 수인 듯, 별명이 영심이인 나는 만화 영심이에 나오는 왕경태같은 남편을 만났다. 실제로 남편에게는 왕경태같은 동그란 잠자리 안경을 쓴 고등학교 증명사진이 있을 정도다. 그를 만난 것이 곧 치유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3편에 영심이와 왕경태의 결혼 이야기를 담았다.
4편~7편의 이야기들을 통해, 하고 싶어 하던 직업도 찾고, 좋아하는 취미생활도 했던 것 같다. 물론 암이라는 질병으로 인생의 위기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인생의 귀한 깨달음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매주 한편씩 메일리 서비스에 올리는 작업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때로 감정의 요동침도 경험했지만, 그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의 감정도 정제되고 나의 삶을 객관적으로 인지해 볼 수 있었다.
글쓰기 공동체 <쓰고 뱉다>의 대표이신 김싸부님께서도 강조하시지만 역시 글쓰기에는 치유하는 힘이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영심이의 오뚜기 인생>을 쓰고 나니 조금은 생각을 정리해서 생각하고 말하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이전의 나는 참 단순해서 좋으면 웃고 화나면 울고 성내고 싫으면 찡그리는 아주 단순하고 무식한 나였는데 일곱 편의 글을 쓰면서 생각하기 시작했고, 꿰뚫어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고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 것 같다.
총 여덟 편의 글을 목차로 만들고 글의 순서를 매겨 한주 한주마다 메일리 서비스에 글을 서비스하는 이 과정은 어쩌면 치유와 성장의 리츄얼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8주 아니 나에겐 12주 과정이었던 <숙성반>에 함께했던 서꽃님, 인사피어님, 진진님, 푸실님, 그리고 매의 눈을 가지고 나에게 통찰을 가르쳐 주시고, 잘 좀하라고 (말로) 꼬집어도 주시고, 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신 김싸부님과 뒤에서 섬겨주신 미정님께 감사드린다.
<영심이의 오뚜기 인생: 필자소개>
살아오면서 다양하게 굴곡진 삶을 당당하게 맛보며 살아온 그녀. 1990년대 만화 캐릭터 영심이처럼 밝고 활기차게 그리고 가뿐하게 어려움들을 이겨냈다.
다양한 삶을 살아온 만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깊이 공감할 수 있기에 더욱 행복하다.
2022년 세움북스 신춘문예에 입선했다. 매일 SNS에 글을 올려왔고 2024년 <쓰고 뱉다 24기생>이 되면서 그녀의 글은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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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빌
불순물이 쏘옥 빠지고 진정으로 숙성되셨다니 축하드립니다.
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캄사캄사드립니다!! 큰 격려가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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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실🌱
영심이님의 에필로그 및 진정한 졸업을 축하합니다 🌱 함께할 수 있음이 감사했고, 좋은 글을 읽을 수 있어 좋았고,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에 기뻤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말씀 전해드리며, 앞으로의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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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니신나
인생 전반을 돌아보는 의미 있는 글, 그동안 잘 읽었습니다^^. 꾸준히 쓰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몸소 보여주셨기에, 조금이나마 닮아보려 합니다. 연재하는 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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