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랑, 그래도 사랑

눈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녀의 머리를 깎다

2024.07.23 | 조회 2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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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당신의 존재의 온도를 딱 1도 높여주는 그런 글 한잔이 되길 바라며 -

오빠. 아무도 못하겠다고 해요. 오빠가 와서 꼭 해주면 좋겠어요.”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가 암수술한지 몇 달이 지났다. 수술하기 며칠 전 그녀의 병실에 갔을 때가 기억난다. 천진난만 웃음을 가득히 띠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오빠. 몇 가지 검사만 하고 나면 퇴원할 수 있어요. 그때까지 혼자 있더라도 너무 심심해 하지마요.”

   그녀의 가족들은 딸내미가 사귄다는 남자친구가 병원에 왔으니 밥을 먹고 가라고 이끈다. 그녀의 오빠가 밥을 먹고 나서 잠간 부른다. “대원형제, 먼 곳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아요.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편하게 들어주면 좋겠어요.”

   그녀의 오빠는 긴 호흡 뒤에 말을 뱉는다. “내 동생은 지금 난소암에 걸렸어요. 암 덩어리가 너무 커서 긴급히 수술해야 해요. 수술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대원형제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 동생과 헤어져도 아무도 탓하지 않아요. 그러니 편하게 동생을 놓아주면 좋겠어요. 아직 동생은 자기가 암인지 몰라요세상 불편한 이야기를 편하게 들어주라니. 먹었던 밥이 다시 올라온다. 암중에서도 난소암. 내겐 너무 생소한 암이었고 의사선생님은 완치를 담보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라 했다.

   드라마는 텔레비전에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드라마가 내 삶에 들어왔다. 여자 친구도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을 수술하고 나서야 알았다고 했다. 수술 후에 그녀는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항암치료를 받을 땐 함께 있지 못했다. 몇 번의 항암치료 중 그녀는 나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녀의 오빠가 말했던 것처럼 우린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던 중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 항암치료를 하는데 내 머리카락이 하나둘씩 빠져요. 보기에 너무 흉한데 엄마도 아빠도 누구도 내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지 않아요. 오빠가 해 줄 수 있어요?” 그리고 나지막한 소리로 말한다. “나 너무 못생겨도 흉보지 말아요.”

   면도날 하나 사서 그녀에게 향했다. 그녀는 내 눈을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피한다. 그녀를 보니 풍성하고 숱 많고 까맣던 머리카락은 없었다. 여기저기 탈색된 듯 갈색의 머리카락만이 듬성듬성 있다.

   아무 말이 없이 그녀를 곱게 앉히고 준비해 간 면도날로 그녀의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잘 밀렸다. 그녀는 오빠의 뜻밖에 재능을 발견했다며 연신 웃었다. 나도 머리를 깎으며 넌 두상이 너무 예뻐서 빡빡 깎아도 여전히 예쁘다. 그렇게 말해주며 웃었다. 면도날은 미끄러져가듯 그녀의 머리를 흘러갔다.

   그녀의 다 깎은 머리카락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동안 어디에 보관해 놓았는지 모를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가 놀랄까봐 수건을 입에 넣고 틀어막았다. 울지 않으려 했다. 우는 건 고통에 나약해지는 거라 생각했다. 난 억지로라도 눈물을 참으려 했다. 참는 것이 이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눈물은 그녀의 아픔에 사치라 생각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고 내 뺨을 타고 목덜미를 따라 흘러내렸다. 그렇게 꾸역꾸역 울었다.

   2차세계대전중 나치수용소에서 겪은 고통스럽고 참혹한 경험을 이야기한 죽음의 수용소를 쓴 빅터 프랭크는 고통가운데 흘리는 눈물에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에게는 완수해야 할 시련이 너무나 많았다. 따라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나약해지지 않고, 남몰래 눈물 흘리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눈물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즉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을 깨달았다.’

   눈물은 어쩌면 고통가운데 그 아픔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내게는 용기가 필요했던 거다. 흐르던 눈물을 닦고 화장실에서 나와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가 까칠까칠하다. 너의 까칠한 성격이 이젠 머리까지 닮는다는 말로 놀리며 웃었다. 그런 나에게 그녀가 묻는다. “오빠 많이 울었어? 고마워.” 이 말에 나는 다시 울고 그녀도 울었다. 우리는 서로 울고 울며 아픔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용기를 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그녀는 지금 아내가 되었다. 그녀의 까까머리는 다시 숱 많고 까만 머리가 되었고 이젠 흰머리를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난 눈물을 가끔씩 흘린다. 인생은 여전히 웃는 날보다 눈물 흘릴 날이 많다. 하지만 이젠 그 눈물이 부끄러움이 아닌 용기를 내는 선물임을 또한 알고 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사는 인생도 스스로 괜찮다 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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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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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니신나

    0
    3 months 전

    먹먹... 감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마음이 전해지네요... 사랑을 지켜주셔서, 아내 분 곁에 계셔 주셔서, 용기있게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언젠가 제가 힘겨울 때 생각날 것 같아요^^

    ㄴ 답글
  • 세빌

    0
    3 months 전

    현실이라는 반전보다 20 년 전의 눈물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옵니다. 그때의 기억과 눈물의 사유를 가지고 눈물을 흘리며 살아내고 계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 눈물이 나네요.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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