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길목에서 -도시락집이야기

여권 사진을 찍다

"이거 나 아닌 것 같은데요?" 사진관 사장과 웃픈 설전

2024.07.26 | 조회 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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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당신의 존재의 온도를 딱 1도 높여주는 그런 글 한잔이 되길 바라며 -

   자영업을 한 지 17년차다. 그게 뭐라고 해외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살았다. 바쁘게 살다 보니 동갑 내기 부부가 어느새 환갑이 내년이다. 아이들이 내년에 해외 지인 방문을 보내 주겠단다. 아! 여권이 어디있더라? 여권을 써 본지가 10년이 넘었으니 이제 찾아 본들 쓸모 없겠다 싶었다.

   여권 사진을 먼저 찍어야겠구나 생각을 하니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냥 시청 앞 사진 자판기에서도 찍을 수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좀 근사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도시락을 만드는 일이다 보니 매일 두건을 쓰게된다.  편하다보니 몰랐는데 어느새 귀 밑에서 애써 자라고 있는 흰 머리도 보이고, 푹 눌린 정수리도 보기 싫었다.  '사진 찍기 전에 염색이라도 해야겠다' 생각하니 '무슨 옷을 입고 찍지? '가 또 다시 올라왔다. 여권 사진을 찍으려하는데 뭐 이리 걸리는 게 많은지 한편 살짝 우수운 마음이 들었다. 일 끝나고 나가려니 시간이 여의치 않아 쉬는 주말에 날을 잡았다.

   토요일 아침 머리를 감고 정성껏 드라이를 했다. 흰머리는 문명의 기술을 빌려보자 싶었다 . 그리고 오랜 만에 뽀얀 흰색 셔츠를 꺼냈다. 입어 보니 살이 붙어 예전만큼 태는 나지 않지만 검은색 정장을 걸치고 우리 동네 사진관을 검색했다.   

사진관이 예전만치 흔하지가 않았다. 아이들 네컷사진방은 곳곳에 있었지만 패스~.마침 사진관 이름이 (증명사진 여권사진 잘 찍는 사진관)이 눈에 들었다. 집에서 차로 20분거리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토요일 오후 사진관에 들어서니 한산하다. 잘 찍는 사진관에 왔는데 왜 사람이 없을까 하던 차에

사진사로 보이는 이가 좀전까지 졸았을 법한 눈으로 인사를 한다. 여권 사진을 찍으러 왔는데 그는 나의 살짝 흥분된 기분을 맞추지 못한 채 서둘러

카메라를 들이 대면서 외운 듯이 말을 했다.

"어머니(?)~ 여권 사진은 절대 이쁘게 나오는 사진이 아닙니다. 기대하지 마세요~ 안경도 빼시고 머리도 귀 뒤로 전부 넘기세요~ 앞 머리도 이마 보이게 ~"

    약장사에 홀린 듯 그의 연출에 따라 사진을 찍었다. '눈 좀 크게 뜰 걸 '하는 아쉬움이 사라지기도 전에 사진을 건네 받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천상 아줌마처럼 이렇게 소리쳤다.

"이거 나 아닌것 같은데요?" 이게 무슨 말인가?"

되돌아오는 사장님 말이 더 과관이다. 20년 사진관하면서 이런 말은 처음 듣는 소리란다. 내가 생각해도 손님이 나 밖에 없는데 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속으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여권사진은 이쁘게 나오는게 아니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외국에서 테러범 잡을 때 목적으로 찍는 사진이라 ~~" 아이고 테러범까지 등장했다.

서울 사진관에 부천 아줌마 소문날까 서둘러 계산을 했다. 주차 된 차에 들어와 시동도 켜지않은 채 차근차근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나는 앞머리가 생명인데 망쳤다. 귀 뒤로 넘긴 머리밑둥도 흰색이 살짝 보인다. 거의 평생 쓰던 안경을 벗은 모습이 너무 낮설게 느껴졌다. 안경빨이 없으니 얼굴이 왠지 허전하고 주름도 보이는 것이 영락없는 중년의 아줌마 모습이다. 그나마 웃는 모습이 예쁜데 무표정하게 입을 다물었다. 차 안에서 내가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는데 왠지 나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 모습이 내가 60년동안 살아왔던 내 얼굴이구나.   이런 나를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었구나.

귀엽고 파릇한 청춘을 지나 이제는 아줌마라 불러도 자연스레 뒤를 돌아보는 나이로 도착 한거구나. 내가 나같지 않다고 했으니 내가 많이 섭섭했겠다' 운전석 위쪽 거울을 재끼고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고 내 앞 머리를 제자리에 돌려

놔 주었다.

   며칠이 지나고 딸이 물었다.

"엄마! 여권사진 찍으셨어요?"

"찍긴 찍었는데 좀 이쁘게 안 나온거같아"

사진을 지갑에서 꺼내는데 남편과 아들도 눈 크게뜨고 모여든다. 엉거주춤 건넨 사진을 본 딸이 말했다.

"엄마! 여권사진 이정도면 잘 나온거예요~

예쁘게 나왔어요~ 이제 아빠랑 비행기만 타면 되겠네!"

   10년 뒤 다시 여권 사진을 찍을 땐 나는 또 어떤 마음일까? 이젠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인데 나 한테 부끄럽지 않도록 자~알 살아 보자. 앞으로도 크고 작은 일 들이 삶 가운데 찾아 오겠지. 아주 소소한 행복 마저 놓치지 않고 순간 순간을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 혹 원치 않은 힘들고 고단한 시간 들이 온다면 절망에 빠지지 않고 옅은 미소로 담담하게 이겨내야지. 사랑하는 가족, 이웃들과도 좋은 관계를 주고받으며 내 얼굴로 위로가 되는 삶을 살아 가야지 생각해 본다.

행복한만찬의 도시락 만드는 모습
행복한만찬의 도시락 만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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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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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심이

    0
    3 month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1)
  • 인사피어

    0
    3 months 전

    여권 사진 얘기로 이런 깊은 통찰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삶에 일상이 모여 우리 인생을 이루는구나' 깨닫게 하는 좋은글 감사해요🙇

    ㄴ 답글 (1)
  • 세빌

    0
    3 months 전

    그동안 걸어오신 얼굴에게 잘 살아 왔다고 칭찬해 주신다면 원하는 바람을 이루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행기만 타시면 되는 거네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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