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촌 언니의 신혼집은 모든 것이 하얗고 정갈하다. 모든 것이 개성을 죽인 채 조용할 때, 오직 보드게임 상자들만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적어도 내가 아는 보드게임들은 절대 물빠진, 여리여리한, 멀멀한, 유행 타는 색깔들을 쓰지 않는다. 한 톨의 오차 없이 진한 원색의 향연. 클래식이다.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싸구려 플라스틱의 텅 빈 무게와 그들이 상자 속에서 부딪히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어떤 보드게임과의 첫 만남은 첫 여행 같은 설렘을 준다. 도통 쓰지 않던 쪽의 머리로 쏠리는 피와, 말이며 주사위를 집을 때 느껴지는 가볍고 단단한 감촉. 함께했던 사람들의 표정과 화장실에서 돌아올 때 들리던 소란한 웃음소리처럼, 쓸모없지만 귀여운 기억들을 나는 이상할 만큼 생생하게 떠올린다.
혼자서는 결코 플레이할 수 없다는 보드게임의 속성은 역설적으로 보드게임을 가장 완전하게 한다. 불완전함이 가져다주는 완전함. 그 명백한 불완전함은 기어코 타인을 불러모아 우리의 시간을 부드럽게 포개어 놓는다. 함께하고 싶은 누군가를 데려와 앉히고, 언제나 새로운 이들에게 규칙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설명하는 성실함에 나는 남몰래 감동한다. 언니는 그걸 기꺼이 감수할 만큼의 애정과 끈기를 가졌구나! 나는 언제쯤 같은 것에 지루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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