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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는 세계
지인이 옆에서 닌텐도 스위치를 쥐고 몰두하던 나를 보며 진지하게 물은 적이 있다. "그 게임은 목표가 뭐야? 동물을 사냥해서 경험치를 쌓는 게 아니었어?" 나는 벙쪘다. 한 번도
맛없는 커피는 오래 살아남아
현재를 누릴 것인가, 미래로 유예할 것인가. 이건 보통 나에게 '그럴 자격'이라는 말로 되물어진다. 누릴 자격이 있나? 열심히 일했다, 하면 현재에 베팅. 반대로 아쉽다, 하면 미
미워 죽겠는 마음
요즘 유행하는 프롬프트들을 보면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알 수 있다.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해 줘.’, ‘나는 무슨 꽃이야?’, ‘나는 무슨 색이야?’, ‘나의 가장 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에는 사랑이 잘 안 된다. 발끝부터 빨개지는 잎들이 재촉하는 계절에는 마음도 동동거린다. 내가 가진 모든 문제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만나면 덜 중요해진다. 어떤 핑계에 갖다 붙여
어떤 우연의 폭력성에 대하여
여행 중 가장 긴장하는 순간은 비행기에 오를 때다. 추락에 대한 공포는 아니다. 겪어보지 않은 재난을 그려낼 만큼 나는 상상력이 좋지 않다. 그건 순도 높은 우연에 대한 공포다.
시간의 바깥으로
생일 선물, 뭐 갖고 싶어?'하는 질문에 나는 대부분 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알면서!' 돈보다 시간을 중요시하는 이 사회에서 나는 꽤나 차분한 것을 원했다. 정성 가득한 포장마저
단골이 되고 싶어
'먹던 걸로 주세요.' 문득 점심을 주문하며 이번 생에는 이 대사를 칠 일이 없겠지, 생각했다. 나는 늘 새로운 곳을 선호했고 매일같이 드나드는 배달 어플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을의 연애라도 좋으니까
나에게는 불면이 있다. 아빠와 엄마가 앞다투어 물려준 끈질긴 내력. 열여섯 시간의 차이가 나는 대륙으로 넘어온 뒤에야 잠이 얼마나 내 삶을 꽉 쥐고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잠과 삶의
시간 포개기
사촌 언니의 신혼집은 모든 것이 하얗고 정갈하다. 모든 것이 개성을 죽인 채 조용할 때, 오직 보드게임 상자들만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적어도 내가 아는 보드게임들은 절대 물빠진,
고상하고 촌스러운 (2)
뮤지컬은 정말 오묘한 취미다. 이상한 구석이 많은 취미이기도 하다. 그 어떤 취미보다 색깔이 많고 화려한데, 관객들은 완벽하게 고요하다. 소심한 나도 순간을 과감하게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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