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곧 4년 동안 살았던 집을 떠나 이사를 간다. 정확히는 잠시 한국을 벗어나 캐나다에 머물기로 했다. 출국을 앞두고 4년 치의 생활을 처분해야 하는 숙제가 떨어졌다. 일단 부모님 집의 창고가 된 내 방에 짐을 쑤셔 넣기로 했다(엄마 사랑해요!). 몸집보다 비대한 귀찮음을 달고 사는 나에게는 당근마켓에 처분해야 할 물건이 아직도 한가득이다. 더이상 쓰지 않는 타블렛, 헤드폰, 서피스, 닌텐도... 한때 내 전부였던 것들이 시위하듯 굳세게 버티고 있는 서랍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콱 막히는 느낌이 든다. 싫다.
그것들을 한껏 외면하고는 결연한 마음으로 캐리어를 열었다. 여기에 들어갈 물건들은 내 변덕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진짜 소장품들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캐리어는 가득 메워졌고 물건의 종류는 뻔하게도 딱 하나였다. 책. 일반 서적이 아닌 해외여행을 하며 각기 서점들에서 모아온 것들이었다. 짐을 싸다 말고 처음으로 내 방을 천천히 뜯어봤다. 왜 하필 책이었을까? 내가 쓴 것도 아닌데. 내용도 새하얗게 모른 채 표지가 아름답다는 이유로 모셔둔 책도 많았다.
언젠가부터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면 스스로와 굳게 약속했다. '한 서점에서는 가장 마음을 울린 딱 한 권의 책만 살 것.' 그러나 작년 말의 유럽을 비롯해 이십몇 년 동안 비축해 둔 역마살을 한 번에 몰아 쓰며 이 다짐의 치명적인 허점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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