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불어온 꽃잎들일까, 마당에 하얗고 동글동글한 작은 꽃잎들이 이렇게 흩날리고 있네. 벌써 봄이 온 거야?
어디서 왔나 했더니 집 바로 옆에 커다란 꽃나무가 있었네. 이미 꽃들은 떨어지는 중이고 사이 사이로 연둣빛 잎들이 한창이네. 꽃이 피기 시작할 때는 전혀 몰랐어. 매일 바람을 쐬는 곳이었는데 거기서 한 번도 하늘을 올려다 본 적이 없었나봐. 꽃이 핀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 꽃잎이 떨어지고 나서야 그걸 알았네.
꽤 커다란 나무가 집 동쪽 편에 떡하니 있어서 추운 겨울에 나무 그림자에 가려 해가 늦게 들곤 했었지. 이미 마당과 지붕이 따끈하게 데워지고 있는 다른 집들을 보며 나무를 탓했었는데. 내 추위가 나무 탓이라도 되는양 말야. 근데 그 나무가 이른 봄 꽃을 피우고 거기서 떨어진 꽃잎들이 마당을 수 놓으니 별안간 나무가 예뻐 보이는 구나. 언제부터 여기에 자리 잡고 있었을까, 밑동이 굵고 커다란 나무. 아래부터 굵은 곡선을 그리며 휘어서 자란 자태가 제법 멋이 나는 나무. 내가 모르는 사이 이웃들은 멀리서도 보이는 커다란 나무에 꽃이 핀 것을 보며 봄을 실감하고 미소지었겠구나.
날씨가 확 풀리긴 했어. 겨울 내내 입던 검은 롱패딩을 벗어 던진지 며칠 되었지. 잘 세탁해서 다음 겨울을 기약해야 할 때가 된 거지. 계절이 바뀔 때 오래도록 입지 않았던 옷을 반갑게 다시 입는 기분이 좋아. 특히나 겨울에서 봄이 될 때, 무거운 겉옷들은 넣어 두고 얇은 점퍼나 가디건 한 장 가볍게 덧 입어도 딱 맞는 기온이 될 때.
아침 문 밖을 나서는데 살짝 쌀쌀한 기운이 잠시 감돌긴 해도 춥지 않을 때. 감고 덜 말린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선선한 기운이 감돌 때 그 상쾌한 기분. 한 낮엔 따스한 햇빛 아래 앉아 담소 나누고 커피를 아이스로 주문해도 괜찮아지는, 기분 좋은 경계에 있는 듯한 시기.
식물들이 여린 잎을 틔우는 생동하려는 시기, 겨울잠 자던 청설모들이 깨어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가며 날렵한 움직임을 할 때. 그 가운데에 나도 있으면 내 몸도 새로운 세포들이 자라나는 듯 새로운 느낌이 들어. 이젠 노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이지만 괜히 청춘인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나 이걸 느끼는 시기도 잠깐이지. 계절이 옮겨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것과 동시에 겨울은 사라지고 봄이 익숙해질 일만 남아있어. 봄 한 가운데에 있을 때는 아, 봄이구나 하는 생각이 잘 안 들어. 봄을 만끽하는 시기는 딱 그 경계에 있는 시기가 다일지도 모르겠어. ‘아! 사랑이 시작되고 있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 사랑의 다인 것 같은 것 처럼. 찰나의 순간. ‘아! 이제 봄이구나’ 하고 느끼는 그 순간이 각자의 봄 아닐까.
구독자님은 올해 봄을 느끼셨나요? 아니면 아직 겨울에 계신가요, 생동하는 봄을 만끽하는 시간 가지실 수 있길요.
* 작년 봄에 그렸던 봄풍경 그림들을 중간 중간 넣어봤습니다. :)
* 주 2회 보내드린다 해놓고서 약속을 못 지켰습니다. 기다리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노력은 해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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