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_ 수영복 세 벌

뭐든 시작이 어려운 거니까.

2022.02.08 | 조회 3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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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계절들

에세이 같은 그림, 그림 같은 에세이.

[고요한 계절들] cover
[고요한 계절들] cover


 고요한 계절들 레터의 커버 이미지에 들어간 그림은 1년 전 쯤에 그렸던 그림이다. 그림 속에는 곧 물 속으로 들어 가려는 수영복 입은 사람이 중앙에 서 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한 물 앞에 서 있는 모습이 이 메일링서비스를 시작하기 전 내 마음 같았다. 고민도 많았고 주저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고 보니 큰 고민 없이도 진작 시작해도 됐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메일링 서비스를 해보고 싶었을 때 시작했다면(대략 2년 전?) 벌써 베테랑이 되어 글도 엄청 많이 쌓였을 텐데. 무엇이든 시작이 어려운 거구나 하고 다시금 느꼈다.

 나는 수영을 못 하고 물을 무서워 하는데 그래서 더 물 속에서 자유자재로 유영하는 모습을 동경한다. ‘수영’이라는 운동이 최근 몇 년 각광을 받기도 했던 것 같다. 수영을 배우는 얘기를 담은 에세이도 출간되고 이슬아 작가가 운영하는 출판사는 ‘헤엄’출판사다. sns에서도 물 속에서의 나아감을 삶에 빗댄 얘기들을 많이 접했다. 그들이 겪고 느낀 것을 겪어 보지 못한 나는 그저 상상 속에서 간접 체험해 볼 뿐이었다. 그런 내게도 지금껏 내 손으로 구입한 수영복이 세 벌 있다. 한 벌도 아니고 세 벌씩이나 있는 연유를 얘기해 보겠다.

 첫 번째. 대학 1학년 겨울 방학, 친구들은 모두 본가로 떠났지만 나는 학교 앞 자취방에 남아 알바를 하며 혼자 시간을 보내게 됐다. 매달 따박따박 용돈을 받는 팔자 좋은 대학생이었던 나는 어느날 아빠가 두달치 용돈을 한번에 송금해준 걸 보고 간 크게도 한 달 용돈보다 더 비싼 카메라를 질렀다. 늘 소심한 내가 이상한 데서 대책 없이 과감한 게 그때부터였나.

 텅빈 조용한 학교를 왔다갔다 하며 사진도 찍고 피아노도 뚱땅거리며 낮 시간을 보 내고 저녁에는 레스토랑 서빙 알바를 했다. 시급 삼천원. 당시로서는 나름 괜찮은 수준의 시급이었다. 출 근하면 유니폼을 입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처음 일을 해보며 왜 돈벌기가 어려운 건지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밤에 알바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며 편의점에 들러 두 세 시간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의 아이스크림 큰 통을 사와서 혼자 우걱우걱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웃기다.

 그 겨울, 다음 학기 교육과정에 수영 수업이 있어 미리 수영을 배워둬야 한다는 얘기가 동기들 사이에 돌았다. 수영을 전혀 못하는 나는 근처 체육관에 새벽 수영 강습을 등록 했다. 물이랑 친하지 않은 나는 수영복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면서도 걱정 투성이였다. 겨울의 찬 새벽, 눈 비비며 일어나 20분 넘게 걸어서 낯선 수영장에 잘 다닐 수 있을까 싶었다.

 근데 어찌된 일인지 수영반에 등록했지만 한 번도 수영장 물에 들어간 기억이 없다. 다음 학기에 수영 과목은 다른 것으로 대체된다는 얘기에 수영을 배울 필요가 없어졌던 것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강습료를 다 내고도 안 간 것인지, 아님 등록을 취소한 것인지. 새벽, 일어나야 하는 시간에 몇 번 이불 속에서 갈까말까 고민도 했던 것 같은데.. 어쨌든 내가 처음으로 산 수영복은 내내 서랍 속에서 잠만 잤다.

 두 번째 수영복은 직장인 때다. 여름 방학을 앞 둔 무더운 7월 초, 학생들을 인솔해 함께 근처의 실내 수영장에 가는 교내 행사를 치러야 했다. 부랴부랴 시내 스포츠용품점에 가서 수영복을 준비했다. 수영복을 고른 기준은 단 하나, 가장 몸을 많이 가릴 수 있는 디자인으로 골랐다. 안쪽에 비키니를 입고 위에 점프슈트 형식으로 한벌 더 걸칠 수 있는 쓰리피스 수영복이었다. 그렇게 실내 수영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해변에 온 듯한 알록달록 수영복을 입고 그 시간을 무사히 보냈다.

 세 번째는 인도 여행 때다. 인도 남서쪽의 휴양 도시 ‘고아(Goa)’에서 숙소에 딸린 수영장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사람들이 부러워 샀다. 길거리 샵들에 줄 지어 널린게 수영복이었기에 그 길들을 지날 때마다 괜히 사야할 것만 같았다. 해변가에도 그냥 평상복을 입고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행객들 모두 멋진 수영복 차림이었다. 나도 물을 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첨벙 몸을 담궈봐야 겠다는 강한 충동이 일었고 마음 먹고 수영복 가게에 들어갔다. 그리고 핫핑크 색깔의 원피스 수영복을 골랐다.

 그 수영복의 운명은? 고아 아람볼 바닷물에 딱 한 번 담가본 게 다다. 어차피 바다에 들어가도 깊은 물까지 헤엄을 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꼬마 애들이 노는 마냥 모래사장 주변 무릎 정도 깊이 물에서 왔다갔다 하는 게 다였기에 사실 별로 재미도 없었다. 후에도 미련이 남아 한참을 여행 배낭 한구석에서 왔다갔다 하던 수영복은 결국 버려졌다.

 지금은 한 벌의 수영복도 내겐 없다. 앞으로의 인생에 네 번째 수영복이 등장할 것인가? 나도 궁금한 바이다. 다음 번엔 한껏 더 신중해야겠지. 물을 제대로 만나지도 못할 수영복을 내 손으로 또 소비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매 번 수영, 수영, 물을 동경하는 얘기를 하고 또 하다 보면 어느 날 물 앞에 서서 시작하는 내가 있지 않을까? 뭐든 ‘시작’이 어려운 거니까!


 

구독자님은 수영 잘 하시나요? 어떤 수영복을 갖고 계신가요? 혹시 요즘 새로 시작하고 싶으신 게 있나요? 계획만 오래 하신 일이 있다면 과감히 행동에 옮겨 보세요. 제가 응원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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