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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요즘 좀 무기력한 것이 아무래도 가을을 타는 듯합니다.🍂
오늘은 무슨 주제로 장아찌를 담가 보낼까 고민하다가요. 이번 주에 이상하게 회사 앞 sk 빌딩이 과거 쎄시봉이었다는 말을 동료들에게 자주 한 게 기억나더라고요. 그래서 쎄시봉으로 대표되는 60년대부터 많은 인기를 끌었던 '번안곡'을 주제로 장아찌를 담가보려고 해요.
같은 멜로디지만 전혀 다른 가사로 사랑받았던 그 시절 번안곡 이야기
만나러 가볼까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번안곡의 역사
온 국민의 희망이 되었던 희망가
번안곡은 일제강점기부터 등장합니다. 특히 일본을 통해 들어온 음악들이 많았는데요. 번안곡으로서 최초의 유행가가 되었던 음악은 '희망가'였습니다. 희망가로 알려진 선율은 미국의 찬송가 중 하나였습니다. 1830년 제레미아 인갈스라는 미국인이 미국의 찬송가를 정리한 악보집 안에 수록되어 있었거든요. 이 음악을 먼저 접한 건 일본이었습니다. 1890년대, 일본에서 이 곡은 망자를 위로하는 진혼곡으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한반도에 이 음악이 상륙한 건 그로부터 20년 뒤였고요. 기독교 신자였던 임학천씨가 '이 풍진 세월'이라는 제목으로 곡에 가사를 붙였다고 합니다. 1920년대 민요 가수에 의해 처음 발표되었으나 그때는 큰 반응을 얻지 못했고요. 1930년대에 들어 인기가수 채규엽이 이 음악을 리메이크하면서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희망가가 우리나라의 첫 번째 대중히트곡이라고 평가되고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느껴지네요! 희망가가 큰 사랑을 받게 된 데에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식민지 조선의 현실도 한몫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조사를 하다 보니 몇 년 전 미스터트롯에서 가수들이 희망가를 선보여 큰 사랑을 받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요. 희망이 필요할 때마다 국민들에게 다시 회귀하는 귀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절한 죽음의 노래, 사의 찬미
희망가가 희극이라면 사의 찬미는 비극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사의 찬미는 음악을 부른 윤심덕과 극작가 박우진이 함께 대한해협에 몸을 던져 자살을 선택하면서 대중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믿기 어렵지만, 당시엔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죽음을 선택하는 정사(情死)가 유행처럼 번졌다고 하는데요. 그 기괴한 낭만을 들끓게 했던 사건 중 하나가 윤심덕-김우진의 정사였습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던 두 사람의 사랑과 운명을 담아낸 듯한 사의 찬미 역시 순수 창작곡이 아닌 번안곡이었는데요. 루마니아 작곡가 이바노비치가 작곡한 ‘다뉴브강의 잔물결’이라는 관현악 왈츠곡이 사의 찬미의 원곡이었고요. 이 곡을 부른 윤심덕이 곡에 가사를 붙였습니다.
'광막한 황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러 왔느냐'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사의 찬미'의 가사는 둔탁하게 가슴을 칩니다.
번안곡의 황금기 60년대 : 키보이스와 트윈폴리오
일제강점기 번안곡을 소개하면서 한국 대중음악사의 귀한 음악을 벌써 두 개나 꺼내버린 기분인데요. 그래도 번안곡의 황금기 하면 60년대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걸 좋아하실지 몰라서 다른 감성을 지닌 두 보이밴드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한국의 비틀즈, 키보이스
키보이스는 록밴드입니다. 미니스커트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윤복희의 오빠, 윤항기가 동료들과 함께 결성한 그룹이었는데요. 우리나라 대중음악 록의 시작으로 생각되는 전설적인 그룹입니다. 키보이스는 다양한 음악을 번안곡으로 재구성하여 많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당시 별명이 한국의 비틀즈였다고 하는데요. 세계적으로 굉장히 인기 있었던 비틀즈의 컨셉을 차용해서 만들어진 그룹이었대요! 한국의 비틀즈, 키보이스가 부른 노래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키보이스 - 바람난 노처녀 (←클릭하면 노래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영화 중의 일부를 유튜브에서 찾아 공유합니다. 울리불리하면 영화 태양은 없다에서 이정재가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이 떠오르는데요. 그 흥을 이기는 영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울리불리는 샘 더 쉐임 앤 더 파라오스라는 그룹이 1965년 발표한 히트곡이었습니다. 가사는 사실 모호하고 의미를 알 수 없어 질타받았던 곡이었는데 멜로디가 워낙 신나서 인기를 끌었다고 해요. 키보이스는 이 신나는 멜로디에 '바람난 노처녀'라는 제목과 가사를 붙여 더욱 익살스러운 노래를 만들어냈습니다.
한국의 비틀즈 키보이스의 보컬을 담당하고 있던 차중락이 따로 솔로앨범을 냅니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수려한 외모로 인기를 끌었던 차중락은 이 솔로앨범으로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별명을 갖게 되는데요. 하고 많은 가수 중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의 영향이 컸습니다.
이 곡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곡 Anything that's part of you를 번안한 곡이었거든요. 한국의 엘비스로 불리던 차중락은 26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게 되는데요. 인기스타의 이른 죽음과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라는 음악이 궤를 같이하며 아직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이 음악을 틀어달라는 라디오 사연이 몇십년 째 이어지고 있다고 하네요.
너도나도 통기타 교습소를 드나들게 했던 그 시절 아이돌 쎄시봉, 트윈폴리오
몇 년 전, 영화로도 나왔던 쎄시봉! 무교동에 위치하던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포크 듀오로 인기를 끌었던 건 단연 트윈폴리오였습니다. 엘리트 윤형주와 자유로운 영혼 송창식이 서로 다른 매력으로 만든 트윈폴리오는 당시 모든 청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요. 창작해서 부른 곡들도 많지만, 팝송을 원곡 그대로 부르거나 번안곡으로 재해석한 음악들이 특히 사랑받았습니다. 어떤 곡들이 있을지 한번 만나볼까요?
트윈폴리오 - 웨딩케이크 (←클릭하면 노래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라 1번으로 소개합니다. 영화 쎄시봉에도 등장하는 웨딩케이크입니다. 한국에서는 사랑하는 연인이 웨딩케이크만 남기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러 가는 절절한 사랑 노래로 불리지만요. 원곡은 웨딩케이크를 자르고 난 다음부터 삶이 피곤해진 주부의 녹록지 않은 삶을 담고 있답니다. 제목도 똑같이 웨딩케이크인데 웨딩케이크를 마주하는 사람의 입장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새삼 가사의 힘을 느끼게 되네요.
트윈폴리오 - 하얀 손수건 (←클릭하면 노래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트윈폴리오의 순정 어린 슬픈 사랑 노래 하면 하얀 손수건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이 노래는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를 번안하여 부른 곡입니다. 나나 무스쿠리의 곡 역시 지난 연인을 그리워한다는 점에서 웨딩케이크에 비해 훨씬 감정의 결이 비슷하네요. 근데 나나 무스쿠리의 목소리가 너무 고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스의 흰 장미라고 불렸다고 하는 데 그렇게 불릴만한 목소리네요. 향기 나는 여행용 티슈가 떠오르는 목소리 같아요. 무슨 느낌적인 느낌인지 아시겠지요?
트윈폴리오 - 축제의 노래(←클릭하면 노래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축제의 노래라니, 제목만 들어도 들뜨지 않나요? 전 요즘 신나고 싶은가 봐요... 자꾸 '축제'만 보면 마음이 두근두근합니다. 트윈폴리오가 노래한 축제는 교양있는 축제예요. 잔잔한 강가에서 나른하게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송창식 - 윤형주 듀오의 화음이 듣기 좋은 축제의 노래, 원곡은 이탈리아 가수가 부른 칸초네입니다. 듣고보니 베네치아의 가면무도회가 떠오르는 것 같아요! 번안곡이라고 해봐야 팝송에만 국한되어 있을 것 같았는데 샹송부터 칸소네 그리스 가수의 노래까지...오히려 과거에 음악을 통해 갈 수 있는 국가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아찌pick) 오늘의 번안곡
우리가 사랑하는 번안곡은 시대를 불문하고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한 곡을 꼽는다는 게 너무 어려운데요. 오늘 이 무드에 추천하고 싶은 곡은 배인숙 -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입니다.
배인숙은 미8군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신중현 사단의 여성 듀오, 펄시스터즈 출신입니다.
언니 배인순과 함께 시스터즈로 활동하던 그녀는 언니의 결혼으로 잠시 음악 생활을 접고 있었는데요. 그녀가 다시 돌아올 때 선택했던 곡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였습니다.
프랑스 가수 알랭 바리에르의 샹송 '시인'을 번안한 곡인데요. 번안곡의 묘미가 가사에 있다고 생각해본다면, 이 가사는 추천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아서 픽했습니다:)
쓸쓸하고 처연한 감정들을 툭툭 던지는 가사의 느낌이 가을과 잘 어울려요.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가을에는 이런 노래를 들어줘야 하잖아요? 쌀쌀한 날씨에 팔을 부비며 걸을 때 듣고 싶은 노래예요.
같은 선율 속 다른 가사를 확인하는 재미가 있는 '번안곡' 이야기 어떠셨나요?
전 이번 장아찌를 담그며 플레이리스트가 풍성해진 것 같아서 아주 기쁩니다.
요즘 석양 정말 예쁘더라고요. 짧아서 더욱 애틋한 완연한 가을을 담뿍 느끼시는 한 주 되세요
저는 다음 주에 또 케케묵은 장아찌를 담가올게요 :)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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