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상과 김환기, 그리고 변동림이자 김향안이었던 그녀의 이야기

2023.01.08 | 조회 2.45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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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장아찌 주문배송

직접 공수한 케케묵은 낭만 장아찌를 잔-뜩 퍼서 댁의 편지함에 보내드려요.

구독자 안녕하세요.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 주는 어떠셨나요? 저는 별로 좋지 않았어요. (적다보니 요즘 맨날 안 좋다는 얘기만 하는 거 같네요? 근데 진짜랍니다? 세상이 매일 절 승질나게 해요.) 그래서 어제는 마음도 가라앉힐 겸, 오랜만에 전람회 앨범을 들었는데요. 세상에, <그대가 너무 많은..> 이라는 곡이 작은 방에 가득 차는데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도입에 앞서 이 노래 하나 추천하고 가겠습니다. 새해는 시작되었는데 모든 일들이 내맘 같지 않아 힘드신 분이 계신다면,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들 것 같은 청년의 목소리로 위로를 노래하는 <그대가 너무 많은...> 들어보세요. 

오늘 가져온 주제는 어떤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요. 언젠가 한번 꼭 담아보고 싶었는데 그게 오늘이 될줄은 몰랐네요. 벅찬 마음으로 이어가보겠습니다.

매력이 넘치는 천재 작가, 이상

이상
이상

우리에게 소설 <날개>로 잘 알려진 이상이 오늘 주인공 중 한명입니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입니다. 1910년 9월, 식민지 조선땅에 태어난 이상은 약 26년의 삶을 살다가 1937년 병으로 사망합니다. 세상에 머물렀던 시간은 너무 짧았지만 세상에 일으켰던 파동이 커 우리는 아직도 이상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요. 역사가 오래 기억하는 작가 이상, 그는 1930년대 그가 살고 있던 세계속에서도 매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짧은 삶을 살았음에도 많은 연인들과의 러브스토리가 전해지는데요. 몇몇 연애중 오늘 방점은 '변동림'이라는 여성과의 러브스토리에 찍어볼게요.

친구의 이모를 사랑했네

이상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여성은 변동림이라는 모던걸이었습니다. 많이 배운 이 여성을 소개해준 사람은 한국의 툴루즈로트렉으로 알려진 이상의 절친, 구본웅이었습니다. 그런데 구본웅과 변동림의 관계가 좀 흥미로워요. 변동림은 구본웅의 이모였습니다.

화가 구본웅
화가 구본웅

이게 무슨 소린가 싶으시죠? 사연이 있어요. 구본웅은 어린시절 생모가 돌아가시고 새엄마 변동숙의 손에 자라는데요. 새엄마 변동숙의 아버지, 그러니까 구본웅의 외할아버지가 나이가 들어서 새로운 여성과 결혼을 해서 변동숙보다 스물여섯살 어린 이복동생이 태어나게 되는데요. 이 이복동생이 바로 이상과 마지막 사랑에 빠진, 변동림이었던 겁니다. 

변동림은 그 시절에 경성여고보(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전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수재였고 엘리트인 이상과 다양한 분야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학식이 풍부했습니다. 당시 온갖 예술가들이 몰려들던 카페 '낙랑파라'에서 둘은 깊은 속도로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은 말했습니다.

'우리 같이 죽을까? 아니면 같이 먼 데 갈까?'

같이 죽어도 좋고 먼 데로 가도 괜찮겠다 싶었던 변동림은 그날로 가방에 잡동사니 몇 개만 넣어 이상과 함께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백 년 전 여성이 이렇게 쿨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서 전 이상보다 변동림에게 큰 매력을 느꼈어요. 하지만 이들의 행복은 얼마 가지 못합니다. 이상이 전부터 앓고 있던 폐결핵이 너무 심해지고 있었거든요.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던 친구 구본웅은 당시 의학기술이 조선보다 훨씬 발달해있던 일본으로 가서 요양할 것을 추천합니다. 하지만, 그 금액은 두 명이 가서 생활을 할 만큼 큰 돈은 아니었다고 해요. 그래서 치료가 필요한 이상이 먼저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으로 갑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식민지 조선인이 편하게 요양을 할 수도 없었던 것 같아요. 어느날 오뎅집에 있던 이상은 일본경찰에 의해 불령선인으로 잡혀 감옥으로 끌려갑니다. 가서 모진 고초를 겪은 이상의 몸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빠져 있었대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경찰들은 옥사를 할 것 같은 조선인들은 문제가 커지기 전에 보석을 시켜줬습니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보이는 이상이 감옥에서 죽어 문제가 커질 것에 대비해 일본경찰은 이상을 풀어줍니다. 그리고 일본에 있던 이상의 친구들은 이상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다며, 경성에 있는 변동림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천재적인 황홀한 일생의 마지막 순간

편지를 받은 변동림이 그 날로 일본으로 건너왔습니다. 편지로 보았던 것처럼 이상의 상태는 정말 좋지 않았죠. 걱정하는 변동림을 보며, 이상은 병원에서 떨어져 있는 센비키야의 멜론이 먹고 싶다고 말했답니다. 변동림은 멜론을 사러 먼 길을 떠났대요. 이후, 회고록에 변동림은 이 날의 선택을 후회한다고 말했습니다. 바보 같았다고 멜론을 사러 갈 게 아니라 더 지켜봤어야 했다고요. 힘들게 멜론을 사왔지만, 이상은 멜론을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멜론의 향기만을 맡으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짓다가 이내 다신 올 수 없는 길로 떠났습니다. 변동림은 훗날, 이상의 마지막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그는 가장 천재적인 황홀한 일생을 마쳤다.

그가 살다간 27년은 천재가 완성되어 소멸되는 충분한 시간이다.

변동림의 두번째 사랑, 신안에서 온 꺽다리 화가

이상을 잃고 힘들어하던 변동림. 그녀에게 일본시인 노리타케가 소심한 구애를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꿈짝도 하지 않았죠. 이에 변동림과의 연애를 포기한 노리타케는 자신과 일본에서 알고 지내던 유학파 출신의 한 화가를 그녀에게 소개합니다. 신안에서 왔다는 키 큰 그 남자에 대해서 변동림은 아무 인상도 받을 수가 없었다고 해요. 하지만 이따금 주고받는 편지에서 남다른 감수성과 표현으로 그녀를 놀라게 했지요. 알고보니 그 화가는 한 때 문인을 꿈꿨던 사람이었습니다. 주고 받는 편지가 많아질수록 동림은 키 큰 화가에게 마음을 열게 됩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신안에서 온 그 화가, 김환기의 이야기

김환기
김환기

신안에서 왔다는 이 화가는 훗날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는 김환기였습니다. 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 친척집에서 하숙을 하던 김환기는 일본으로 넘어가서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환기가 돌아와 가업을 잇길 바랐죠. 어쩔 수 없이 고향에 돌아온 환기는 한 여성과 결혼했지만, 학업을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에 다시 일본행을 선택합니다. 그렇게 드문드문 국내와 일본생활을 겸하던 중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게 되지요. 아버지의 재산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먹고 사는데 문제 없을 만큼의 돈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난 환기는 금액 중 일부를 부인에게 주고 이혼을 하게 됩니다. 

이혼녀와 애 셋 달린 홀애비의 사랑

둘은 모두 이번 사랑이 두번째였습니다. 환기에겐 고향에 계시는 노모와 세 딸이 있었고 동림은 이상과의 결혼생활이 있었지요. 두 집안은 그 이유로 결혼을 반대합니다. 하지만, 같이 살거나 멀리 떠나자는 말에 짐을 싸던 변동림은 어디 가지 않지요. 자기가 낳아야만 자기 자식이냐며 또 한번 쿨하게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이때 이름을 본명인 변동림에서 김환기가 어릴 때 쓰던 아호 '향안'으로 바꾸게 됩니다. 둘이 서울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결혼을 했습니다. 신혼집은 막역하게 지내던 미술계 선배 김용준이 선물한 노시산방으로 정했습니다.  비록 가족들은 사랑을 환대하지 않았지만, 김용준은 다정하게 수화 김환기와 김향안의 이름 자를 따 <수향산방>이라는 이름까지 다시 붙여 주었지요. 하지만 수향산방에 그리 오래 머물지는 않았습니다. 환기는 끊임없이 서방 세계를 궁금해했거든요. 

환기의 꿈은 현실이 된다 (with.향안)

환기는 미술의 중심인 서양세계에 자신의 그림을 선보이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죠. 우리가 지금까지 봤던 향안이 어떤 사람이었죠? 그런 꼴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습니다. 파리로 나가고 싶어하는 환기가 술김에 꺼낸 취중진담에 '그럼 나가봐' 한마디 합니다. 어떻게 나가냐는 말엔 '내가 먼저 가볼게'로 응수하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향안은 파리로 나갈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환기보다도 일년 먼저 나가 남편이 꿈을 펼칠 수 있게 기틀을 마련합니다. 그 결과 파리를 포함한 다섯 군데의 지역에서 환기의 개인전을 열 수 있었고 세계 속에 김환기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게 되지요. 

환기의 호기심은 파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이후 행선지는 뉴욕이었습니다. 뉴욕에서도 향안은 어려운 상황 속에 환기가 예술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백화점에서 일하며 물심양면 그의 예술세계를 지원합니다. 향안의 지원으로 날 수 있게 된 향기는 자신의 작품관을 세상에 선보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한국미술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지요.

환기를 향한 향안의 서포트는 그가 죽고난 후에도 계속 됩니다. 1974년 지병으로 환기는 세상을 떠났지만, 향안은 환기를 알릴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습니다. 글을 쓸 수 있는 자신의 재능을 이용하여 예술 잡지에 김환기 관련글을 싣기로 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이 환기미술관을 부암동에 세우기도 했지요. 

환기를 기리는 와중에 이상과 관련한 일에도 적극적으로 팔벗고 나섭니다. 이상이 죽고 난 뒤 50여 년이 지나 이상을 기리기 위한 시비를 세우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향안은 자신의 사비를 들여 이상의 모교에 비석을 세우기도 했지요.

20세기 한국을 풍미했던 두 예술가 이상과 김환기. 그들의 예술세계를 더욱 빛나게 했던 것은 사랑에 풍덩 빠져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삶에 최선을 다했던 멋진 여성, 변동림 그리고 김향안이었습니다. 이제 이상도, 김환기도, 김향안도 세상에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남긴 작품과 이야기들만이 그 시절의 사랑을 증명하고 있을 뿐인데요. 그들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났을까요. 

 

오늘의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저는 이 낭만적인 사랑과 사랑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어 벅찼습니다 :) 

다음 번에는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아 올게요.

돌아오는 한 주도 아프지 마시고 내내 어여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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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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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레네

    0
    almost 2 years 전

    너무 좋아하는 커플입니다.. 저는 외국에 살고 있는데 한국에 갈때마다 환기미술관은 꼭 찾아요. 처음 '성심'이란 작품을 보았을 적 느꼈던 감동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외국에 존레논과 오노 요코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김환기와 김향안이 있따??? 뭐 그러케 생각합니다. 갠적으론 수향 커플을 더 좋아하지만...ㅎㅎ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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