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어느덧 무더웠던 8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제가 사는 동네에는 내내 비가 내렸어요. 지금은 지붕을 치는 빗소리가 느릿느릿 잠잠합니다. 요 며칠 변덕스러운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밖에 나갔을 땐 비가 내리지 않아 다행이었어요. 8월의 마지막 주말, 저는 이틀간 선물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천호동 플리마켓에 작가로 참여했거든요. 모아둔 골동품, 다른 이에게 가 닿으면 좋을 책을 포장해서 판매했어요.

지난주 내내, 가내수공업으로 포장했습니다. 그런 저를 지켜보던 엄마는 ‘제 아빠랑 똑같다’, 소리를 했습니다. 방이 제법 더러워졌는데 기분 탓인진 몰라도 그렇게 미운 말투는 아니었어요. 90년대, 저희 부모님은 후암동에서 <선물의 집>을 운영하셨습니다. 번쩍번쩍한 포장지가 종류별로 꽂힌 카운터가 아직도 생각나요. 엄마는 그때 그 가게를 하루라도 빨리 때려치웠어야 한다고 늘 후회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무용한 것들이 다 <선물의 집>에서 씨 뿌린 거대한 뿌리라는 생각을 해요.
포장지를 보며 반가워하는 아빠를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오직 선물만을 취급하는 <선물의 집>은 90년대 한국에 어떻게 생겨난 걸까요?
1979년 청량리, 친절한 금자씨의 힌트
제가 온라인 신문 아카이브에서 찾은 가장 오래된 기사 속 <선물의 집> 이야기는 1979년 매일경제 기사에 실린 청량리 <선물의 집>입니다. 200만 원의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다며 <선물의 집> 창업을 강력히 추천하는 최금자 씨는 선물의 집 평수로 이만큼 넓은 곳이 드물 거라며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선물의 사명이 있다면 받는 사람에게 특별한 순간을 선사해야 한다는 점일 거예요. 달걀이 귀할 땐 달걀을, 설탕이 귀할 땐 설탕을 선물했던 이유도 거기 있을 겁니다. 7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선물할 수 있는 상품의 종류도 다양해집니다. 최금자 씨의 <선물의 집>에는 작게는 생일 카드부터 인형, 장난감, 심지어 전기용품까지 있었습니다. 선물할 수 있는 건 다 파는 그야말로 선물들의 작은 백화점이었습니다.
1980년대에도 있었던 아트박스 사장
비일상적인 상품들이 인기를 끌면서 미키 마우스, 펠릭스, 스누피 등 해외 캐릭터 상품을 수입해 팔기도 합니다. 이에 힘입어 국내 캐릭터를 개발하고 굿즈를 만들어 파는 사업 역시 성장합니다. 먼저 뛰어든 기업 중 하나는 바른손팬시입니다. 바른손팬시에서 만든 대표 캐릭터로는 금다래신머루가 있습니다.

금다래신머루는 이름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당시 기사에서도 다른 캐릭터들과 달리 ‘토속적인’ 매력이 인기 요인으로 꼽혔습니다.
바른손팬시가 운영하는 잡화점은 상호가 ‘팬시가든’이었다고 하는데요. 80년대 자료를 보다 보면 세 줄 걸쳐 한번씩 나오는 표현이 바로 이 팬시(fancy)더라고요.
기능 위주의 1차 개념 상품에 멋·꿈·사랑·아름다움의 생명을 불어넣어
새로운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의 재창조
89년 당시 한 신문 기사를 보면, 팬시점을 취재하면서 팬시용품에 대한 코멘트를 이토록 비장하게 남기고 있습니다. 오늘날 팬시점이 문구점과 거의 동일한 표현으로 쓰이는 것에서 알 수 있듯 80~90년대 팬시점은 노트, 편지지, 연필 등 문구류 판매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70년대엔 선물용 상품을 팔았다면 80년대부턴 내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 팬시한 물건을 직접 구매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특별한 포인트 같아요.
바른손팬시가 운영하는 팬시점이 팬시가든이라면 라이벌 팬시점으로는 삼성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아트박스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 아트박스 맞고요. 삼성출판사의 삼성은 우리가 아는 그 삼성은 아닙니다.

아트박스 역시 우리에게 오늘날까지 익숙한 베티 등의 캐릭터 상품을 수입하여 판매하기도 했고요. 한편으로는 자체 제작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팬시가든과의 차이점은 시계, 휴지통 등 연령대를 아우르는 디자인 상품을 만들어 판매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인기를 끌던 아이템으로 프라이팬 모양 시계가 언급되는데요. 사진이 없어서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아쉽네요.

확실히 80년대부터는 팬시가 돈이 되는 사업이었던 거 같아요. 해태제과 역시 팬시사업에 뛰어들어 <우리들>이라는 팬시전문점을 운영했거든요. 팬시가 급부상하던 80년대를 넘어 팬시점의 인기는 90년대까지 이어집니다. 배턴을 이어받은 브랜드로는 자체 캐릭터로 유명한 영아트와 문구 하면 떠오르는 <모닝글로리>가 있습니다.
1997년 모닝글로리의 무료 작명 서비스

문구 제조 업체로 시작한 <모닝글로리>는 IMF가 터지기 직전인 1997년까지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실적을 확인하던 <모닝글로리>는 재밌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팬시점의 상호명은 매출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나 지금이나 취향을 판매하는 곳은 물건을 파는 장소 역시도 취향을 타는 거 같습니다.
이를 알게 된 모닝글로리는 팬시점 상호를 작명해 주는 이벤트를 엽니다. 무료였지만 지극정성이었어요. 홍보실의 국문·영문 카피라이터들이 직접 가게를 찾아 상권을 살피고 점주를 인터뷰한 뒤, 상표등록 검색까지 거쳐 2~3개의 안을 제안했다고 하니까요. 어렵게 지은 그 시절 상호 구경하실래요?
아이브(I've) — I have에서 따온 이름
그리너 — ‘그리운 너’
예나래 — ‘예쁜 날개’라는 느낌의 이름
하늬샘
문구매니아
마이월드
영어를 쓰면 쓴 대로 안 쓰면 안 쓴 대로 그 시절 감성이 깃든 게 재밌는 지점이네요.
번외) 후암동 <선물의 집>은 왜 망했는가

엄마의 이야기에 따르면 1987년 미혼의 아빠는 선물의 집을 차렸다고 합니다. 가맹점으로 본사가 상품을 구성해 주는 <선물의 집>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아빠는 남대문에서 직접 사다 팔았다고 합니다. (진정한 편집숍 점주였네요.) 엄마는 그게 패착이었다고 합니다. 별 예쁘지도 않은 걸 사 와서 팔았다던 엄마는 ‘사람이 망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라는 쓸쓸한 결말로 스몰톡 같은 헤비톡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시간을 돌려 후암동 <선물의 집>에 10분만 가 있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20대 후반 아빠 취향은 뭐가 문제인지 살펴보고 평생 놀릴 수 있을 텐데요.
천호 승룡이네집 <유실물보관소>

2026년 8월 이틀간 차린 선물의 집도 소개합니다. 잃어버린 상품에 새주인을 찾아주는 <유실물보관소>부스를 운영했습니다. 이번 플리마켓 최고의 수확은 비슷한 사람을 만나 호들갑 떠는 즐거움이었어요. 수많은 악보 중 고민하다가 녹색지대 <사랑을 할 거야> 악보를 사신 손님께서는 연신 노래도 따라 부르시고 일기장도 살펴보시고 블라인드 북 문구도 읽어 보시더니 오늘 하루 힘들었는데 피로가 싹 가셨다는 말씀을 남겨주시고 떠나셨어요. 그 말씀 덕분에 진짜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주말이었답니다!

편지와 선물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받는 사람을 특별하게 해준다는 것. 그리고 그전에 받는 사람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것. 반찬 고민하듯 이번 주엔 어떤 편지를 쓸지 고민하다 보면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덕분에 이번 편지도 수취인 불명 신세를 면했네요. 돌아오는 9월에 또 가을 편지 드리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좋은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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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인간
아... 플리마켓.. 동네에서 열렸는데 제가 확인을 못했는지 몰랐군요. ㅠㅠ 너무 아쉽습니다.
유실물보관소
레트로인간님, 안녕하세요 :) 저 고전악보 수집할 때 레트로인간님이 정보주신 게 도움 많이 됐었는데 뉴스레터로 인사나눌 수 있어 기뻐요. 강동구 천호동 승룡이네집 카페 가보셨나요? 위층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만화방도 있어서 따님과 가보셔도 좋을 거 같아요! 고전만화들도 꽤 보이더라고요! 다음에 또 행사하게 되면 소식 크게 전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레트로인간
카페 가보겠습니다. 그.. 행사... 가깝기만 하면.. 같이 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아니더라도 크게 전해주세요. 귀 활짝 열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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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은
시간을 돌려 후암동 <선물의 집>으로 가게된다면 저도 꼭 껴주세요!
유실물보관소
좋아요. 함께 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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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한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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