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선선한 바람이 부는 9월 저녁 편지를 씁니다. 끝날 줄 모르던 더위가 9월 달력을 젖히자마자 한풀 꺾이다니… 계절의 변화는 늘 신기합니다. 그래도 아직 한낮은 덥지요? 진정한 가을은 찰나인데 가을옷은 왜 또 그렇게 예쁠까요. 조금 덥고 조금 추울 것을 감수하더라도 옷차림부터 가을로 가야겠어요. (+어제저녁 초고를 쓰고 발행 전, 글을 살피는 오후 4시…긴팔 셔츠를 입고 헥헥거리고 있습니다)
제목을 보고 눈치채셨나요? 오늘 편지는 전설의 술, 캪틴큐이야기예요. 전 캪틴큐를 마셔본 적이 없어요. 2015년에 단종된 이후론 구할 수도 없게 되어서 늘 아쉬웠답니다. 그래서 3년 전에는요. <캪틴큐 원정대>라는 모임을 결성한 적도 있답니다. 1980년 출시 이후로 각종 전설이 주렁주렁 맺힌 캪틴큐는 그 정도로 궁금한 세계예요. 대체 캪틴큐의 어느 지점이 그토록 특별했던 걸까요?
태초에 도라지 위스키가 있었다.
![도라지 위스키 광고 [출처 : 한겨레 / <위스키의 지구사 중>]](https://cdn.maily.so/du/zizikzizik/202609/1788766222912847.png)
캪틴큐로 가기 전 잠시 멈춰 설 구간이 있습니다. 가수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에 등장하는 ‘도라지 위스키’ 앞입니다.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이 있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판다는 그 도라지 위스키요.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는 이름 그대로 도라지가 들어간 위스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 걸요. 일본의 위스키 브랜드인 산토리에서 출시한 토리스 위스키와 관련 깊은 술이라고 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을 통해 호화로운 주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틈이 생겼습니다. 미군들이 즐기는 술은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그만큼 비쌌고요. 비싼 술을 사 먹을 수 없던 사람들은 이름만 위스키인 가짜 술을 만들었습니다. 소주에 위스키 특유의 씁쓸한 향을 내기 위한 몇몇 재료들을 섞는 방식으로 말이에요.

그중에서도 일본산 토리스 위스키가 인기를 끌자, 국내에서 토리스 위스키를 본떠 도리스 위스키가 출시되는데요. 해방이 몇 년 되지도 않았을 무렵, 일본 브랜드를 표방해서 만든 도라지 위스키 상호는 논란의 대상이 됩니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 바로 가사 속에 등장하는 ‘도라지(torage) 위스키’입니다. 토리스와 유사하지만, 향토적인 ‘도라지’를 이용해 새 이름을 붙인 것이지요.
지난번 대학로 앞 서울대 문리대 이야기를 하며 다뤘던 각종 차에 위스키를 몇 방울 섞은 위티(tea)의 주재료도 도라지 위스키인 경우가 많았다네요. 도라지 위스키는 1976년에 보해양조에 매각되면서 그 향기만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하는데요. 1995년 최백호의 노래 가사가 소환한 도라지 위스키에 반가웠을 사람도 많았겠습니다.
젊은이를 숙취로 무너뜨린 두 장군 캪틴큐 & 나폴레온
![캪틴큐 광고 [ 출처 : 롯데칠성음료 ]](https://cdn.maily.so/du/zizikzizik/202609/1788766409809959.png)
80년대로 접어들면서 전설적인 이름이 등장합니다. 캪틴큐, 그리고 캪틴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저가 브랜디 나폴레온입니다. 소위 대중양주라 불리는 두 주류는 한국의 개방정책과 경제성장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귀국길에 면세 양주를 구매하는 사람도 생기고 고급 호텔, 룸살롱 등이 생겨나면서 대중매체에 비싼 양주를 즐기는 모습이 자주 노출됩니다.

저 ‘비싼 술’을 즐기고 싶다는 대중의 욕구를 자극하며 등장한 술이 나폴레온과 캪틴큐입니다.
1980년 1월 롯데 주조에서 출시한 캪틴큐의 판매가는 2,700원이었습니다. 당시 일반 위스키가 1만 5천 원을 호가하던 것을 생각하면 대략 1/5 가격입니다. 물론 소주처럼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은 아니었지만, ‘양주를 마시는 기분’을 내기에는 매력적인 가격이었겠지요.
선원들의 술로 이름난 럼(rum)을 표방한 제품답게 외눈박이 선장이 카리스마를 뽐내고 있는 캪틴큐는 일반 주정에 럼을 일부 섞어 만든 혼합 주류였습니다. 캪틴큐를 유명하게 만든 데에는 엄청난 숙취도 한몫했습니다. 12월 23일에 먹고 잠들면 25일 밤에 깨어난다는 전설의 술. 안주로 손가락을 먹는다는 괴담을 낳은 놀라운 술이었으니까요.
![캪틴큐 광고 [출처 : 롯데칠성음료]](https://cdn.maily.so/du/zizikzizik/202609/1788766530002689.png)
80년대를 강타했던 캪틴큐는 90년대가 시작되며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90년대 전후로 수입주류가 개방되면서 이름만 듣던 진짜 위스키와 브랜디, 럼이 국내로 들어오기 시작했거든요. 캪틴큐의 시대도 저무는가 싶었지만…돈이 많지 않은 학생들에게 캪틴은 여전히 오 마이 캪틴이었습니다.
문제는 비싼 양주병에 캪틴큐를 넣어 판매하는 술집이 있다는 소문에서 비롯됩니다. 심지어 1991년 캪틴큐는 럼을 조금도 넣지 않고 럼 향만을 첨가해 술을 만들고있었는데요. 고급럼 병에 캪틴큐를 넣어 비싼 가격에 판다는 소문이 돌면서 사면초가가 됩니다. 결국 2015년을 기점으로 롯데 주조는 캪틴큐 생산을 전면 중단했고요. 오늘날엔 모두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술이 되었습니다.
번외) 캪틴큐 원정대는 캪틴큐를 찾았는가.
2023년 뭉쳤던 <캪틴큐 원정대>는 사실 시작부터 캪틴큐를 찾을 수 없는 모임이었어요. 모임 장소였던 남대문 주류 상가는 수입 주류를 취급하는 시장이었거든요. 캪틴큐를 만나지 못해 아쉬워할 팀원들을 위해 미리 캔버스로 구색을 갖춰 캪틴큐 로고를 그리기도 했었어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요? 캪틴큐 원정대는 그날 캪틴을 만났습니다. 캪틴큐 없는 캪틴큐원정대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가 언젠가 삼촌한테 받았다는 캪틴큐를 기증하고 갔거든요. 어쩐지 두려운 마음에 원정대원들과 함께 마셔버리지는 못했지만 보물처럼, 서랍장 한 켠을 지키고 있답니다.
1995년 최백호의 노래로 되살아난 도라지 위스키, 무용담을 내뱉는 사람들의 로얄제리를 머금고 숙성된 캪틴큐. 도라지 위스키와 캪틴큐의 공통점이 있다면 추억 속에 숙성된 술이라는 점이 아닐까요. 구독자님은 캪틴큐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있다면 캪틴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 제게도 나눠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또 다른 이야기로 편지할게요.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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