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제가 없는 여름 무탈하셨나요? 저는 자꾸 일 벌이고 수습하며 팔자를 스크류바 만큼 꼬아대는 날들이었는데요. 모든 과정 웃고 있던 걸 생각해 보면 싱그러웠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입추에 돌아온다고 얘기할 때, 거짓말처럼 시원할 걸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잠못 드는 열대야는 정말 계획에 없었단 말이죠. 말도 안 되는 더위에 사실 첫 주제를 그 시절 더위를 피하는 방법으로 할까 했습니다.
그런데요~
무려, 오늘 오전 이웃분과 나눈 따끈따끈한 대화로 돌연 주제를 바꿔버렸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께 내어드릴 이야기는, 꿈과 희망을 주던 백화점, 미도파입니다. 도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었길래 이렇게 되었는지는… 대화를 첨부할게요 😊
언제나 제게 큰 영감이 되는 레트로맨님께서 피드에 미도파 백화점 전화 카드를 올려주셨습니다. 그걸 본 저는 인스타그램에 팔로우하고 있던 카페, 미도파를 떠올리고 추천해드렸는데요. 레트로맨님께서는 청량리/전농동에 살아서 미도파 백화점에 가본 적 없다는 얘기를 들려주시지 뭐예요. 그래서 오늘은 이러네 저러네 해도 그 시절엔 모르는 사람이 없던, 미도파 백화점이야기를 담아왔습니다.
멋진 그 이름, 미도파
여러분, <미도파>라는 이름을 듣고 무엇을 떠올리셨나요? 저는 미도아파트 거주민으로써 우리집 아파트만 생각이 났는데요. 그 이상으로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었더라고요. 미도파는 대도시와 주변 지역을 뜻하는 말인 ‘메트로폴리탄’과 발음이 비슷한 한자를 차용한 음역어입니다. 의미는 같지만 메트로폴리탄과는 귀에 닿는 느낌이 제법 다른데요. 맘 속 꿈틀대는 사대주의 때문인지 처음엔 메트로폴리탄이 더 멋졌거든요? 그런데 미도파 백화점의 한자는 ‘아름다운 도시의 물결’로도 풀이가 가능했다는 걸 듣고난 뒤부터 <미도파>의 손을 들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아름다운 도시의 물결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미도파백화점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에 멈춥니다. 일본인 소유의 양복점으로 시작했던 미도파는 창업주가 사업을 확장하며 백화점이 되었습니다. 광복 이후 한국인에 넘어온 건물은 잠시 중앙백화점으로 불리다가 우리가 아는 미도파백화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데요. 다양한 지역에 미도파가 들어서기 시작했던 것은 1964년 대농그룹이 미도파백화점을 인수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 이후로 1996년까지 서울 각지는 물론이고 지방 전역에까지 아름다운 도시의 물결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리한 사업 확장은 늘 문제를 일으키는 법이지요. 머지 않아 IMF의 여파로 미도파백화점은 부도를 맞습니다.
부도난 미도파백화점은 롯데그룹에 넘어가는데요. 미도파의 브랜드 파워를 신뢰하던 초기에는 상호를 미도파로 남겨두기도 했었지만 몇 년 뒤, 모두 롯데백화점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시절 미도파백화점 본점은 어디였을까요? 여전히 명동 앞을 지키고 선 롯데영프라자 건물이 과거 미도파백화점이었습니다. 상호와 주인이 바뀌며 굴곡의 세월을 지났지만 그 외관만은 처음 백화점이 될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요.
미도파백화점과 이중섭
낭만 장아찌를 보내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던 중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은박지 그림과 황소 그림으로 잘 알려진 화가, 이중섭이 첫 전시를 열었던 장소가 미도파백화점이었다고 하는데요. 때는 전쟁이 지나고 혼란스럽던 1955년이었고요. 미도파백화점 화랑에서 열린 첫 전시 안내장엔 이런 말이 적혀있습니다.
당시 그가 어떤 전시 작품을 내걸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아있는 안내장과 방명록이 가족과의 재회를 꿈꾸며 예술에만 매진했던 이중섭의 심정을 짐작하게 하는데요. 롯데영프라자 어딘가에서 이중섭이 개인전을 열었다고 생각하니, 현실과 과거를 잇는 점이 하나 생긴 기분입니다.
미도파 살롱을 아시나요?
청년문화가 싹트던 1966년, 명동 미도파백화점 5층에 <미도파살롱>이 문을 열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저녁 6시까지 차를 팔았다고 하는데요. 이 공간의 하이라이트는 6시를 넘기면서 시작됩니다. 시계가 6시를 알리면 홀은 넓어지고 그 위에 밴드와 가수가 올라와 라이브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생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즐기곤 했죠. 한국에 불어닥친 그룹사운드 바람으로 미도파 살롱은 언제나 젊은이들로 북적거리는 핫플레이스였다고 하는데요. 최초의 포크듀오로 알려진 ‘뚜아 에 무아’가 주로 활동하던 공간이 바로 미도파 살롱이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뚜아 에 무아 노래 한 곡 듣고 가실까요?
이들이 얼마나 미도파 살롱과 연이 깊은지를 알려주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본래 이필원과 박인희로 결성되었던 듀오가 인기를 끌자 후에, 멤버들을 몇명 더 포함해 5인조 밴드를 결성하는데요. 그 밴드의 이름이 <미도파스>였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지요?
마지막으로, 연희동 미도파
아름다운 도시의 물결은 IMF를 기점으로 잔물결 마저 사라지고 없지만, 미도파의 여운을 재해석한 공간이 연희동에 있습니다. 제가 레트로맨님께도 말씀드렸던 연희동 미도파인데요.
퇴근하자마자 미도파로 날아온 저는 오늘의 이야기를 미도파에서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모던한 레트로, 계산된 촌스러움이 너무 매력적입니다. 커피와 술을 팔고 있는 미도파에서 OB 생맥주를 마시고 있자니, 가보지 못한 그 시절 <미도파 살롱>의 정취가 느껴지는 것도 같네요.
미도파 bgm으로 뚜아에무아가 나오지는 않고요. 몸과 마음이 느긋해지는 재즈가 흘러나옵니다. 블로그 소개글에는 90년대 노래가 나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시간대별로 다른 노래가 나오는 것인지 궁금해지네요.
하루종일 어디서도 가을의 조각을 붙잡지 못했는데요. 미도파에 앉아 창 밖을 보는 지금, 선풍기 바람이 자아내는 트릭이라 해도 멀리서 가을의 물결이 밀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더운데 입추라니 사실 부정하려 했거든요. 근데 열냈더니 결론적으로 더 덥더라고요. 해도 너무한 더위 탓에 더 이상 24절기는 조상님의 지혜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전 100년이 지나도 지혜라고 부를 예정이에요. 날씨를 귀신 같이 맞추는 지혜는 아니지만 매일 다를 바 없는 나날을 무려 24일이나 특별하게 지정해두는 지혜를 발휘하셨잖습니까. 그저 그런 하루, 여름과 다를바 없던 가을의 시작일 수 있었습니다. 그치만 가을이 시작되었다는 핑계로 기어이 <미도파>가 자아내는 특별한 파장을 만들었어요. 정신승리라고 해도 기분 째지네요.
여러분의 남은 올해, 가을, 하루, 어떤 시간도 기어코 행복하시길 이곳, 미도파에서 OB생맥주의 시원함과 치과냄새 나는 위스키의 감성을 담아 바랍니다. <낭만 장아찌 주문배송> 2막이 열렸네요. 애석하게도 유능함과 전문성을 찾아오기에 너무 짧은 여름이었습니다. 그저 열심히 적을게요. 종종 찾아와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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