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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밀린 잠을 여태 자다가 일어나 장아찌를 담그고 있습니다.
갑자기 진짜 겨울이 되어서 적잖이 당황스러워요. 날씨가 너무 춥네요 진짜
추운 겨울이 와서, 겨울이니까 뭘 주제로 보내볼까 하다가요.
<김장>이 첫 번째로 떠올랐는데, 우리 집은 김장에 대한 추억이 사실 많이 없거든요. 그래서 제 인생 첫 번째 강매의 역사가 담긴 <크리스마스 씰>을 주제로 정했습니다.
그럼, 시작해볼게요!
크리스마스 씰,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인류 최초의 씰은 1904년 덴마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결핵환자를 돕기 위해 시작했던 씰 제작은 큰 인기를 끌면서 유럽은 물론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대요. 한국에는 일제강점기 때 캐나다 출신의 의사 '셔우드 홀'에 의해 도입되었어요. 셔우드 홀은 대학에서 '결핵'을 전공했고 다른 나라에 비해 결핵으로 죽는 사람이 훨씬 많았던 우리나라의 결핵을 퇴치하기 위해 애쓰던 의인이라고 합니다. 처음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엔 '숭례문'이 그려져 있었다고 해요.
본래 최초의 씰 도안은 거북선으로 만들 계획이었으나, 일본의 간섭으로 무산되었다고 하네요.
당시 씰의 가격은 2전이었는데 판매 금액으로 총 850원을 모았대요. 오늘날의 수치로 환산해본다면 약 4만 2,500명이 씰을 구매했던 거라고 하니 큰 인기를 누렸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셔우드 홀은 이 숭례문을 시작으로 1940년까지 크리스마스 씰을 매년 제작합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이유로 씰은 돌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캐나다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적성국이었기 때문에 캐나다인이었던 셔우드 홀이 조선 땅에서 퇴출당했거든요.
그가 떠나고 한동안 사라진 씰은 해방과 전쟁이 지나고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세워지면서 그 역사를 다시 이어가게 됩니다.
결핵협회가 만든 첫 번째 씰은 한국의 전통 의상인 색동저고리를 입고 있는 소녀가 그려진 도안이었습니다. 남존여비 사상에서 벗어나려고 남자아이가 아닌 여자아이를 세웠다고 하는데 70년 전에 했던 생각임을 고려하면 도안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는 걸 가늠해볼 수 있겠네요. 1932년과 1953년 그리고 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크리스마스 씰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면, 크리스마스 씰은 모름지기 '한국'하면 번뜩 떠오르는 것들이 도안의 소재가 될 때가 많았네요.
"엄마 씰 사게 돈 좀 주세요!"
크리스마스씰과 관련된 자료를 찾던 중 재밌는 영상을 한 편 발견했습니다. 1960년대 크리스마스씰 판매를 독려하기 위해 만든 광고라고 하는데요. 돈 달라고 하니 냉소적인 부모님의 반응은 오늘날 우리 부모님의 그것과 비슷하고요. 새침한 말투는 왜 서울깍쟁이라는 말이 생긴 건지 알 것만 같네요. 혼자 보기 아쉬워서 링크를 공유합니다. 그 시절 감성의 공익광고를 살펴보세요. 제법 웃겨요.
"반장, 부반장은 한 판 다 사자. 3,000원!"
물론 압니다. 크리스마스 씰은 참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지요. 그런데 제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건 제 인생에서 첫 강매를 했던 물건이 크리스마스 씰이라는 사실이에요. 둘리였던가... 팽이치기였던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담임 선생님은 반장과 부반장에게 300원짜리 낱개 씰 10개가 붙어있는, 한 판에 3,000원 하는 씰을 강매하게 하셨더랬지요...
생각해보면 우표도 아니잖아요? 다시 말하자면 어디 쓸데가 없다는 말 같았어요. 편지도 잘 안 썼고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야후꾸러기로 컴퓨터를 배웠단 말이죠. 우표값도 안 들고 우체통을 찾을 필요도 없는 이메일이 있는데 붙여 넣을 수도 없는 크리스마스 씰이 대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아주 오랜 시절부터 일기장을 꾸미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씰은 참, 탐나는 스티커는 아니었어요. 제가 외국인이면 모르겠지만, 팽이 그려진 크리스마스 씰을 선호하는 한국인 어린이가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요. 그것도 당시 유행하는 탑블레이드 팽이도 아닌 정말 맞은 만큼 돌아가는 나무로 깎아 만든 그 팽이인 걸요... 또 크리스마스 씰이 전부가 아니었답니다. 자매품 사랑의 열매, 사랑의 빵도 강매당하는 날이 잦았어요. (사랑이 희생과 헌신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시려던 거라면 제법 성공하신 것도 같습니다.)
제 기억에 선명한 축구하는 둘리! (아기 공룡 둘리가 저렇게 못생기기도 쉽지 않다 이거예요)
대체 왜 그랬던 건가 싶어 찾아보니, 학교와 반에는 할당량이 있었다네요. 그만큼을 채워야 하다 보니까 반에 총대 매는 사람들이 필요했던 건가 봐요. 요즘은 판매되지 않으면 다시 돌려보낼 수 있어서 강매 문화는 많이 사라졌다고 해요.
크리스마스 씰, 여전히 살 수 있나요?
답부터 말씀드리자면 '네! 살 수 있습니다.' 심지어 더 쉽게 살 수 있대요. 예전엔 학교에서 사지 못하면 우체국에서 개별적으로 구매해야 했는데요. 요즘 씰은 대한결핵협회 소속이 되면서 대한결핵협회가 운영하는 온라인스토어에서 구매가 가능하다고 해요. (크리스마스 씰을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 있다니, 새삼 2022년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과거에 팔았던 씰도 구매할 수 있다고 하니, 수집을 원하는 분들은 과거의 크리스마스 씰을 구매할 수도 있겠네요!
얼핏 살펴보니 올해는 2022 카타르 월드컵과 관련된 굿즈들을 판매하고 있더라고요! 덧붙여, 요즘은 예전보다 편지를 더욱 안 쓰는 상황이다 보니, 씰을 제작할 때 이모티콘 등을 같이 만드는 방향도 논의되고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학교를 졸업하며 크리스마스 씰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었는데 세상의 발전과 함께 크리스마스 씰도 계속 발전하고 있었네요!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씰을 되짚어보니 반갑네요! 초등학교 저학년 땐 특히나 이 씰을 많이 샀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때 당시 제가 제일 좋아하던 만화책이 짱뚱이 시리즈였습니다.
( 이 책 아시는 분들 계신가요? 학급문고에서 인기 제일 많았는데)
크리스마스 씰을 사라 그래서 사긴 샀는데 막상 붙일 곳이 없어서, 학급문고 책으로 바자회를 할 때 저렴하게 구매해서 여기다가 덕지덕지 씰을 붙여두었던 기억이 나요.
어쩌면 추억은 갈고리 모양을 하고 있어서 하나를 떠올리면 그 주변의 다른 추억까지 같이 건져 올려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고작 추억의 노래 한 곡, 추억의 영화 한 편, 추억의 물건 하나가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이 일렁이게 하는 것 같아요.
생긴 건 좀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후진국 병으로 불리던 과거부터 오늘까지, 사람에게 치명적인 질병 '결핵'을 묵묵히 돕고 있는 크리스마스 씰!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
다음 주에는 또 다른 낡은 이야기를 잘 담아서 가져올게요!
돌아오는 한 주도 힘내시고요.
곳곳의 낭만을 잃지 않는 겨울 되세요!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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