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마른 바람이 머릿결을 스치는 기분이 끝내주는 9월 편지를 씁니다. 사실 어제 편지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춘천에서 열린 국제 인형극제 자원봉사를 하고 난 뒤 집에서 밍기적거리다 정신 차리니 이미 월요일이 지나버렸지 뭐예요. 부랴부랴 집 근처 카페로 나와 편지를 씁니다.

여행 생각이 절로 나는 청명한 가을은 MT 철의 다른 이름일까요. 춘천 가는 경춘선 안에는 대학생이 많았습니다.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던 학생들은 일제히 대성리에서 내리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저도 ITX-청춘 열차를 타고 춘천 일대로 학회 MT를 갔던 적이 있네요. 그리하여 오늘의 편지는 생생한 낭만의 도시, 춘천 이야기를 적어볼까 해요.
가장 가까운 기차 여행지
![경춘선 열차 [출처 : 코레일]](https://cdn.maily.so/du/zizikzizik/202609/1789462805393401.png)
어디로 가느냐보다 중요한 건 누구와 가느냐라고들 얘기하시지요. 저는 요즘 어떻게 가느냐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빠르게 가는지, 느리게 가는지, 에둘러 가는지, 곧바로 가는지에 따라 펼쳐지는 풍경도 느끼는 감각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여행의 테마가 ‘낭만’일 때 빼놓을 수 없는 탈 것은 단연 기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넓은 차창을 스쳐 가는 나뭇가지와, 부서지는 햇볕에 눈가를 찡그리는 일까지도 아름다운 경험이지요. 서울에서 1시간 남짓, 기차를 타고 가닿을 수 있는 동네라는 점이 춘천이 사랑받는 중요한 이유였다고 생각합니다. 춘천기차여행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수 김현철이 작사, 작곡한 ‘춘천 가는 기차’입니다. 이 곡은 김현철의 실제 경험이 녹아있는 노래라고 하는데요. 재수생 시절 사귀던 여자 친구와 춘천에 가기 위해 경춘선에 올랐는데 생각보다 기차가 너무 느린 탓에 중간 강촌쯤에 내렸다고 합니다. 이를 반대로 얘기하면 최소한의 정보도 없이 훌쩍 기분 내러 탈 수 있는 기차 여행지가 춘천이었다는 말도 되겠지요.
군사시설과 호수가 지킨 자연경관

철길 끝에 도착한 목적지에 공장단지가 즐비하다거나 혼잡한 소음에 정신이 없다면 어떨까요. 도심을 떠나온 이들에게 낙원이 되기엔 영 시원찮을 거예요. 예부터 물과 안개가 유명했다는 춘천은 호반의 도시라는 별명에 걸맞게 조용한 호수의 고요함을 뽐내는 지역이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까닭은 춘천이 군사도시였기 때문도 한몫했습니다. 춘천은 한동안 군사시설과 각종 개발 규제의 영향을 크게 받은 도시였습니다. 캠프페이지 주변에는 건축물 고도 제한이 적용됐고, 한강 상류 수계라는 이유로 개발에도 여러 제약이 있었습니다. 그런 도시적 조건과 의암호·소양강 같은 수변 환경이 겹치며 춘천 특유의 낮고 느슨한 풍경이 오래 남을 수 있었습니다.
춘천 닭갈비의 다른 이름은 대학생 갈비

춘천은 예전부터 양계업이 발달한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돼지와 소를 구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닭고기를 양념에 재워 닭불고기라는 이름으로 팔았던 것이 닭갈비의 시작점이라고 하는데요.

춘천에 머무는 군인, 춘천 내 대학생들, 서울에서 놀러 온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성비 좋은 음식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명성에 걸맞게 당시 갈비 1대 값이 100원으로 저렴했기 때문에 대학생 갈비, 서민갈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네요.
노래로 만든 전설, 소양강 처녀

춘천역에서 명동 도심까지 들어가기 위해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정류장 이름 중 단연 눈에 띄었던 건 ‘소양강 처녀상’ 정류장이었어요. 이름에 걸맞게 소양강 어귀에 커다란 처녀상이 서 있었습니다. 대부분 지역의 도령 이야기, 시어머니 이야기, 처녀 이야기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전해온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소양강 처녀는 출처를 따라갈 수 있는 비교적 최신의 전설입니다. 노래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춘천 출신 윤기순입니다. 가수를 꿈꾸며 서울로 올라온 윤기순은 가요작가동지회에서 일을 거들며 노래를 배웠다고 합니다. 딸을 돌봐주던 음악가들에게 고마웠던 아버지가 반야월 일행을 춘천으로 초대했고, 함께 소양강으로 천렵을 나갔지요. 돌아오는 길에 비와 물안개가 뒤섞인 강 풍경을 마주했고, 그때의 인상이 훗날 ‘소양강 처녀’의 노랫말로 이어졌다고 전합니다.

‘춘천 가는 기차’와 더불어 음률 속에 춘천을 새긴 명곡이 탄생한 순간이지요.
춘천 예술가들이 만든 지역 축제
춘천에는 오래전부터 연극과 문학을 중심으로 한 예술가들의 활동이 활발했습니다. 그런 토양 위에서 1989년 춘천인형극제와 마임 축제가 시작됐습니다.

공연예술 분야에서도 생소하고 특수했던 인형극과 마임이 춘천 시민들의 일상에 제철 예술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어느덧 38년째라는 이야기인데요. 2000년대 초, 춘천 시민들에게 춘천을 대표하는 키워드를 물었을 때 인형극과 마임을 언급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유서 깊은 축제입니다. 이번 주말 국제 포럼 현장에서 만난 춘천 문화예술가들 역시 축제가 거듭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게 묻어났어요. 지역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우수한 자연경관인 호수를 이겨봤다는 경험이 지역 축제를 이어가는 큰 동력인 것 같았습니다.

춘천시의 축제를 돕는 인원 중엔 춘천 토박이로 어린 시절 인형극제와 마임 축제를 즐기며 자란 사람도 많았어요. 2시간 동안 도로를 통제하고 진행한 퍼레이드 행사에 굵직한 세계 인형극 아티스트와 어린이집에서 만든 인형을 든 아이들이 함께 걷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축제의 주인이라고 생각해야 따르는 불편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축제 진행을 돕든, 축제에 직접 참여하든, 다양한 방식으로 축제를 즐기는 춘천 시민들을 보면서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춘천의 또 다른 낭만을 엿본 기분이 들었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낭만 도시 춘천이라는 슬로건을 발견했어요. 축제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엔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소양강 막걸리를 마시고 ITX 청춘 열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 미리 찾아온 한가위처럼 마음이 넉넉해졌습니다. 그 감각을 전하고 싶어, 여운이 가시기 전에 춘천의 조각을 편지로 적어보았어요. 짧은 가을, 근교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춘천으로 가보셔도 좋겠습니다.

막걸리와 김광석을 좋아하신다면 추천해 드리고 싶은 민속주점이 있어요. ‘너와집’이라는 장소인데요. 영업시간 내내 김광석 노래만 나옵니다. 테이블에 쌓인 방명록 같은 낙서들이 시간의 더께를 추정하게 만드는, 낭만적인 장소예요.

제게 멋진 장소를 소개해 준 구미에서 온 춘천 감자 김기동과 가평에서 온 춘천 감자 김태희에게 심심한 감사인사를 전하며...오늘의 편지를 마칩니다. 완연한 가을 되세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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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은
당장이라도 춘천으로 떠나고싶어지는걸요
유실물보관소
너와집 끝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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