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 안녕하셨나요? 저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의도와는 다르게 건강을 잃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아침마다 다리가 부서질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계속하다 보면 멋진 운동인이 되어 육체미를 자랑할 수 있겠죠? (이 질문엔 ‘아니오’라는 답변을 하실 수 없습니다.) 이번엔 어떤 여름의 단상을 가져와 볼까 고민하다가 캠퍼스의 낭만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대학생활의 꽃 ‘엠티(MT)’ 이야기를 준비해보았습니다.
별것 아닌 것에 크게 신나고 제법 알딸딸했던
그 시절 여름으로 엠티를 떠나볼까요?
🚩Membership Training : MT의 역사
엠티를 떠나려고 보니 엠티는 왜 엠티일까요? 엠티는 왜 엠티라고 불리는 것이며 언제부터 엠티를 가게 되었을까요? 1차원적인 궁금증에 발목이 잡혀 잠시 짚어보고 갑니다.
MT는 멤버십 트레이닝(membership training)의 약자입니다. 어떤 단체의 회원들이 친목을 다지기 위해 함께 수련회를 떠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요. 영어 약자를 쓰고 있지만, 정작 이런 단어를 쓰는 나라는 우리뿐이라고 합니다. 80년대 초부터 많은 것들이 급격하게 영어로 바뀌면서 이전엔 야유회, 단합대회 등으로 불리던 표현이 대체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MT의 역사를 찾자고 보면, 어원이 생겨난 80년대 초에서 그 시작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MT라는 단어를 만들어준 것이 유행처럼 번지던 영어표현이었다면 MT 자체의 활력을 불어넣어 준 사건은 1983년 12월의 학원 자율화 조치였습니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며 대학생들의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이 인원들이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만드는 다양한 동아리들도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되었는데요. 독재정권의 서슬퍼런 감시 아래 이 동아리들은 언더서클로 음지에서만 활동을 해야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3년 학원자율화 조치가 시행되면서 숨어서 활동하던 동아리들은 공개서클로 전환을 할 수가 있었고 숨김없이 단체활동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친목 도모와 소속감을 다지는 다양한 활동들이 자연스럽게 학교마다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당신의 MT 장소는 어디였나요?
많은 대학생들에게 사랑받았던 MT 장소는 단연 경춘선 라인에 있는 청평, 가평과 남이섬, 대성리 일대였습니다. 경춘선은 ‘기차여행’의 낭만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1시간 반 ~ 2시간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떠날 수 있는 코스였기 때문에 주말을 맞아 엠티를 떠나는 대학생들에게 많은 선택을 받았습니다.
경춘선 라인 외의 지역 중 인기가 있던 MT장소는 경의선 라인에 있는 백마와 장흥이었습니다. 이곳으로 엠티를 떠나는 청춘들은 신촌역으로 헤쳐 모였습니다. 특히 백마에 있는 화사랑이라는 통기타 라이브 카페는 그 시절 좋아하는 연인과 꼭 한번 방문해야 하는 핫플레이스였다고 합니다. MT 장소 하면 또 강촌을 빼놓을 수 없을 텐데요. 강촌에서 역시 통기타를 메고 모닥불 앞에 모여앉아 노래를 부르는 낭만적인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장소는 조금씩 다르지만, 그 안에서 목격되는 풍경은 비슷비슷했습니다.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의 청량리역과 신촌역엔 엠티를 가기 위해 몰려든 대학생들이 북새통을 이뤘다고 합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1988년 이전까지는 기차의 입석 티켓을 무제한으로 팔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발 디딜 틈 없는 청춘들이 한 기차에 몸을 싣고 엠티 장소로 이동하는 모습은 익숙한 주말의 풍경이었습니다. 이 피 끓는 청춘들을 수용하기 위해 대성리와 청평, 가평, 강촌 일대에는 숱한 민박집들이 촌을 이루어 운영되곤 했습니다.
2021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그 시절 청춘열차를 재현한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지금은 갈 수 없어 아쉽지만, 당시에 제작한 영상이 그 시절 분위기를 잘 품고 있어 가져왔어요.
함께 보면 좋겠습니다.
엠티의 레퍼토리, 통기타와 모닥불🔥
오늘날 엠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술 게임이라면 그 시절 엠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레퍼토리는 통기타와 모닥불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콩나물시루처럼 꽉 찬 기차 안에서도 대학생들 (특히 남학생들은) 통기타의 낭만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모든 학생이 기타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이 한두 개쯤은 있었던, 낭만의 스킬이 대단들 했던 시기가 이맘때였습니다.
그 당시 모두를 떼창하게 만들었던 몇 곡의 레퍼토리를 소개합니다.
양희은 - 아침이슬
비장미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아침이슬을 부르지 않은 사람은 그 시절 청춘이라고 불릴 수 없었습니다. 서슬 퍼런 시기였던 만큼, 함께 목소리를 부를 때 역시 빠지지 않고 불리던 것이 민중가요였습니다.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 -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민중가요의 대중화를 일으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노찾사의 노래들 역시, 당시 모두가 목이 터져라 함께 부르던 떼창 레퍼토리에 꼭 들어갔다고 합니다.
등대지기
가열차게 비장미를 발산하고 나면, 2부는 밤이 주는 낭만에 몸을 맡기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잔잔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연주하고 따라불렀다고 합니다.
김인희 - 모닥불
모닥불 앞에서 모닥불을 안 듣는 건 죄입니다. 엠티의 밤이 무르익을 때면 기어코 반복되던 노래였다고 합니다.
🍃그 시절의 싱그러움을 간직한 닫는 음악
김현철 – 춘천 가는 기차
안타깝게도 그 시절 청춘들을 싣고 달리던 열차들은 몇 년 전 달리기를 멈추고 휴식에 들어갔습니다. 경춘선은 2010년 12월 20일 마지막 무궁화 열차를 끝으로 운행을 종료했습니다. 한동안 멈춰 있더니 열차가 달리지 않는 길 위에 청춘들의 데일리 낭만을 책임지는 문화공간을 조성하기도 했지요. 경춘선 철길은 그래도 좀 아름다운 결말이지만, 경의선을 탈 수 있었던 신촌역과 정신없는 모습으로 기차를 기다리던 대성리역 등은 시큼털털한 작별을 고했습니다. 다시는 그 방식으로 갈 수 없는 그 엠티의 원형을 음악은 아직 간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는 고등학생이던 뮤지션이 대학에 가면 꼭 엠티에 가겠노라는 부푼 꿈에 젖어 만든 노래라고 합니다. 고등학생의 눈에 비친 그 시절의 낭만이 아름답게 적혀 언제 열어봐도 계속해서 청춘인 노래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월의 내 사랑은 수십 년째 같은 모습으로 그곳에 숨쉬고 있네요.
오늘은 낭만적인 밤을 선사했던 그 시절의 엠티 풍경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며 열차에 올라보는 건 어떠신가요?로 끝맺음 하고 싶은데, 남아있는 것들이 없어 아쉬울 따름입니다. 기억을 간직한 장소들이 오래오래 특색을 간직한 채로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청춘들이 어울리는 낭만의 밤을 달콤하고 신선한 맛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며칠 전 들려온 가슴 아픈 소식으로 끝끝내 쓴맛이네요. 모두가 온전히 안전한 청춘이기를 바랍니다.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에 떨며 끝끝내 죽어가는 학우가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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