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자자족

[산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더위를 피하는 방법

아이처럼 놀아본 적이 언제였나요?

2025.07.11 | 조회 150 |
0
|
일류여성의 프로필 이미지

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구독자님, 무더위 속에 무사히 아침을 맞이하셨나요? 곰자자족입니다. 부디 이 더위에 지치지 마시고, 잘 지내시기를 바라며 오늘의 레터를 시작해봅니다. 지난주 부유하는 유부가 말씀드렸듯, 당분간 저는 한달에 한번 '공간'을 주제로 쓸 계획입니다. 얼마 전 누군가 물었습니다. "지금 당장 어디론가 떠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디 가고 싶냐"고요. 그때 제 대답은 1초 만에 "등산🏞️"이었습니다. "여름에 초록잎 색깔 보셨나요? 지금 OO산, OO산 가면 얼마나 예쁜데요." 그 말을 하면서 너무 신나하는 제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산타면서 저는 많은 걸 얻었어요.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온전한 저를 찾았고, 평생 등산이라는 취미를 함께 할 산전우 친구들과 배우자를 찾았다는 것이겠죠. 그래서 저를 바꾸어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등산 다니는 동안 '산이 싫어' 친구들로부터 수없이 들었던 질문 '산에 대체 뭐가 있는데'에 답하는 이야기를. 가볍고 편안하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토록 숨 막히는 무더위를 피할 방법이 있을까? 집에서 에어컨 틀어두고,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가만히 있는 것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다. 그렇지만 여름은 이제 시작인 것 같은데... 어떻게 이 여름을 보내야 할까 생각하다가 떠올랐다. 그래, 더위를 피할 순 없어도 잊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안다. 더워야만 가능한 세계, 더울수록 더 재미있어지는 세계로 나를 데려가는 것. 오늘은 구독자 님과 강원도 삼척 덕풍계곡으로 가볼 참이다.

첨부 이미지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등산에 막 재미를 붙여 가던 차에 등산동호회 카페에서 글을 하나 읽었다. 12계곡 트레킹멤버를 모집한다는 글이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데, 어쩐 일인지 마음이 당겼다. 산악인이라면 계곡도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더구나 아직 휴가 계획을 세우지도 못했으니까.

등산동호회는 동호회 회원들의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인 참여로 산행이 이뤄진다. 등산을 리딩하겠다고 운영진에게 승인을 받고 산행 공지 글을 올리는 회원(해당 산행 팀장)과 그 글을 읽고 등산을 신청하는 회원(해당 산행 팀원)들의 참여 말이다. 나는 강원도로 급조된 여름휴가를 간다는 마음으로 산행을 신청했다.

산행인원 16명은 금방 꾸려졌다. 넷씩 팀을 이뤄 서울을 출발한 차 네 대의 최종 목적지는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덕풍마을 주차장. 같은 차를 탄 이상, 이동하는 서너 시간동안 나눌 이야기가 필요했다. 다행히 내가 탄 차에는 아는 친구가 있었다. 이전 산행에서 몇 번 마주쳤는데, 사는 지역이 같아서였는지 나를 호감으로 느끼고는 언니라 부르며 잘 따르던 동생이었다. 그 친구는 MBTI 대문자 ‘E' 답게 차안 공기를 아주 유쾌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자기 이야기를 서슴없이 털어놓는 사람에게 마음이 잘 열리는 편이다. 아마도 내가 잘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 친구는 내가 못하는 걸 잘하는 유형이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멕시코에 있는 현지 회사에 취업해 3년 동안 살았던 친구의 이야기는 스펙터클 영화 같았다. 영화 스토리 중에는 일하러 갔다가 목숨을 위협받는 내용도 있었다. 정말 어디서도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런 엄청난 이야기를 들었으니 나의 마음은 열릴 수밖에. 그건 아마도 보이진 않지만 그 친구가 가진 보물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평범한 내게는 없는 비범함, 열정, 용기, 자신감 같은 것들. 회사에만 틀어박혀 있었다면 절대 듣지 못했을 이야기 덕분에 나는 본격 트레킹을 하기도 전에 벌써 그 친구 삶의 어느 한 시기를 트레킹하고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트레킹 예행연습(?)으로도, 어색함을 없애기에도 충분했다.

우리의 트레킹은 덕풍마을 주차장을 출발하여 제1용소를 지나 제2용소까지 갔다가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8.8km. 8km를 평지에서 걷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니까, 또 트레킹이니까, 라면서 좀 만만하게 봤던 것 같다. 하지만 덕풍계곡은 달랐다. 꽤 길고 기괴한 암벽 사이를 긴장하고 걸어야 했다. 미끄러질 것 같은 아찔한 곳도 더러 있었다.

어떠세요? 웅장하고 기괴한 장관 앞에 점이 된 우리의 모습. 시원한 계곡물을 가로질러 열심히 걸었습니다.
어떠세요? 웅장하고 기괴한 장관 앞에 점이 된 우리의 모습. 시원한 계곡물을 가로질러 열심히 걸었습니다.
첨부 이미지

스케일도 남달랐다. 모진 비바람이 불어도, 천둥번개가 쳐도 끄떡없을 것 같은 웅장한 포스와 기운. 그렇지만 나는 규모덕분에 사람이 작아지는 게 마음에 들었다. 사람이 자연의 일부로, 작은 구성원의 하나로 점처럼 보이는 게 좋았다. 걸으면서 나타나는 기괴한 암석과 울창한 산림 덕분에 일상과 완벽히 차단되는 분위기도 그저 좋았다.

날씨는 무척 더웠다. 우리가 트레킹을 하는 날은 폭염 경보가 내린 날.(그래도 지금보다는 덜 더웠을 것 같기도😅) 회사였다면 땀이 날까봐, 옷이 땀에 젖을까봐 걱정했겠지만 산에서는 문제될 게 없었다. 어차피 땀난 옷은 물에도 흠뻑 젖을 테니까. 계곡물을 가로질러 걷느라 이미 등산화까지 다 젖어버린 상태였다. 더 이상 못할 건 없었다.

다른 사람의 모습이지만, 물속에 뛰어들어 수영하는 모습이 시원해보여 물보라치는 폭포까지 마음에 들어 함께 전해봅니다. 
다른 사람의 모습이지만, 물속에 뛰어들어 수영하는 모습이 시원해보여 물보라치는 폭포까지 마음에 들어 함께 전해봅니다. 

1용소에 도착하자마자 물놀이를 했다. 더위를 피할 방법은 없어도 더위를 식힐 방법, 잊을 방법은 안다고 했는데 그건 그냥 물에 뛰어드는 거다. 풍덩! (에이, 너무 식상했나요, 그치만 사실인 걸요) 이렇게 깊은 산속에 있는 물은 졸다가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차갑기 때문이다. 더위를 날려버리기에 이만한 것 이상이 있을까?

다 큰 어른들이 정말 아이처럼 놀았다. 물위에서 첨벙첨벙 쉴 새 없이 뛰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게 좋았던 것 같다. 눈치 안보고 아이처럼 마냥 해맑게 놀았던 순간들이. 서로를 잘 모르지만, 잘 몰라도 물 앞에서 무장해제돼 물싸움했던 때. 싸우면서도 좋다고 웃던 때.

그런 즐겁고 신나는 분위기에 취해 나는 평소에 나 혼자였다면 하지 못했을 다이빙도 해봤다. 절벽 위에 서서 기세 좋게 뛰어든 트레킹 멤버들이 물밑으로 가라앉았다가 올라와서는 모두 똑같이 말했다. “너무 짜릿하고 시원해!”

그 말에 혹해 팔랑귀인 나도 절벽 위에 일단 섰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그 자리에서 할까 하지 말까 고민했을까. 그 지루하고도 긴 시간동안 어느 누구하나 재촉하지 않았다. 할 수 있다고, 눈 딱 감고 한번만 뛰어보면 다음에 또 할 수 있겠구나 용기가 생길 거라는 말을 한명이 아니고, 여럿이 계속 해주었다. 그 말에 길고도 긴 내적 싸움을 끝낸 나는 끝내 뛰었다.

첨부 이미지

그 순간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친구도 생기고, 애인도 생기고, 가족도 생겼겠지 싶다. 지금 가장 친한 육아 동지들도 모두 산에서 만난 산전우들일 만큼 내게는 산타며 얻게 된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까 이 글을 쓰면서도 정말 잘한 것 중 하나가 등산동호회를 가입하고, 계속 산에 다닌 것이라는 생각이 들 테고.

내가 등산을 막 시작했던 7~8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MZ들의 등산열풍 같은 게 없었다. 주말에 뭐하냐고 묻는 회사 사람들에게 등산 간다고 하면 도리어 이상하게 보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등산동호회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막 불륜하는 그런 곳 아니야?” 라든가 남자 만나러 가는 거야?” 라든가. 그런 이야기를 멋대로 하는 회사 사람들로부터 지고 싶지 않아서, 회사를 계속 다니기 위해서 등산을 가는 것이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내 발로 걸은 시간들 덕분에 나를 지킬 수 있었다.

오랜만에 여름 계곡 트레킹의 추억을 꺼내고 나니, 이번 여름에는 깨끗하고 편리하게 누릴 수 있는 워터파크 말고 뻥 뚫린 계곡 물놀이를 가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물놀이 후 먹을 라면까지 배낭 가득 챙겨서.

첨부 이미지
첨부 이미지

 

 

✅이번 주 일류여성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만족스럽거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더 깊고 나아진 일류여성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일류여성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5 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