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에게 단체생활은 영원히 해결 불가능한 숙제 같은 걸까? 아무리 재미있는 모임이어도 서너 시간 넘어가면 기가 빨려 얼른 집에 가서 침대든 소파든 눕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 그렇지만 내향인 중에서 가장 외향인에 가까운 나는, 혼자 있는 하루가 지나면 또 다시 누구든 만나고 싶어지곤 했다.
그래서 완전히 고독 속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늘 어떤 무리와 공동체를 찾아 다녔다. 오랜 친구, 회사 동기나 선배 없이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고민하면서. 몇 번 나가다 그만둔 기타 동호회, 한번 가봤으나 집결지가 너무 멀어 포기한 러닝 동호회를 거쳐 내가 찾은 곳은 등산 동호회였다.
왜 하필 등산 동호회였을까? 그리고 그곳에서는 왜 정착이 가능했을까. 이번 글은 그 질문에 대한 긴 대답이다.
함께 있으면서 동시에 혼자 있을 수 있다는 점. 이것은 등산 동호회가 다른 동호회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이었다.
긴 산행 시간 동안 동반자들은 같은 목표를 향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그 과정의 최종 책임자는 결국 나다. 앞사람을 따라 무리하게 속도를 내다가는 금세 숨이 차오르고, 초반에 일찍 체력을 다 써버리면 끝까지 완등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산에서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페이스를 존중하게 된다.
짧게는 네 시간, 길게는 여덟아홉 시간을 함께 걸으면서도 계속 말을 이어갈 필요가 없다. 사실 산에서 계속 수다 떠는 건 엄청난 등산 고수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오를수록, 말을 많이 할수록 숨이 차니까. 오히려 아무 말 없이 걷는 시간이 더 길다. 침묵해도 어색하지 않고, 혼자만의 호흡에 집중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 그런데 신기하게 걷다 보면 어느 새 같은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생기는 공간이 바로 ‘산’인 것이다.
산 아래의 세계에서 유용했던, 과한 친밀감의 방식도 산 위에서는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그러니 억텐(과하게 흥을 띄우거나 분위기를 띄우려는 행동으로 ‘억지 텐션’의 줄임말)을 끌어올릴 필요 없이 내가 걷는 속도대로 천천히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었다. 흙을 내려다보고, 바위와 암벽을 넘고, 나무와 잎을 지나며. 그렇게 푸르고 광활한 자연 앞에서 아주 사소한 존재들이 되어 긴 시간 걷고 나면, 우리는 어느 새 비슷한 모양이 되었다.
그렇게 산이라는 거대한 울타리를 두고 하나가 되는 기분은 정말 좋았다. 생각하면 마음이 뜨끈해졌다. 그건 누군가를 기꺼이 돕겠다는 마음으로 가득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오르기 힘겨워 자꾸 멈춰 서면 배낭 짐을 가져가겠다는 사람이 있었고,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것을 손에 건네주고 또 다시 어슬렁어슬렁 제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초보자가 정보 부족 혹은 경험 부족으로 제대로 등산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을 때는 또 어떻고. 등산 고수들은 주저 없이 자신의 장비를 나눠줬다. 영하의 겨울산 위에서 아이젠이나 등산 스패츠를 준다는 건 이미 마음을 다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손해 보더라도 이 길을 같이 걷고, 함께 끝내겠다는 마음. 그것이 진정한 공동체 같아서 산 아래 현실 세계의 삶이 퍽퍽하고 고단하다 싶으면 그렇게 산을 찾았다. 정확하게는 산을 찾는 사람들을.
오로지 잘 걷고 무사히 내려가겠다는 마음으로 하산하면 녹초가 된 몸을 녹여줄 뜨끈한 보양식이 산 밑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메뉴판에 붙은 이름처럼 하산의 단골 메뉴는 ‘삼겹살’과 ‘백숙’이었지만 똑같은 삼겹살, 똑같은 백숙은 한 번도 없었다. 매번 산행이 달랐고,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달랐기 때문이다. 땀 흘리고, 몸으로 부대낀 시간으로 충분했기에 말하지 않아도 편하게 고기를 삼키고, 뜨끈한 국물을 마시면서 그날의 피로를 달랬다.
그렇게 그곳에서 나는 내 페이스대로 사람들과 연결되는 법을 배웠다. 함께한다는 감각, 서로 돕는다는 감각 또한 산 위에서 체득해갔다. 그래서 등산을,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등산 동호회를 권하고 싶다.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지만, 가끔은 누군가와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방향으로 걷고 싶어지는 사람에게.

<코너 속 코너> 책방산책📚

'숲이 된 책, 머무는 마음'이라고 책방 소개가 적힌 초록서림은 성신여대 역 7번 출구에서 도보 5분 정도 떨어진 곳, 한적한 주택가 안에 자리를 잡고 있어요. 그렇지만 책친자(책을 좋아하고 책에 미쳐있지만, 그만큼 읽는 동력은 다소 떨어지는 사람)라면 저 멀리서도 한 눈에 찾아볼 수 있을 테죠?
저는 제가 만든 책 [시도라 불러야 할 어떤 실패]를 직접 입고하고 싶어 초록서림을 찾게 됐어요. 서점 공식 오픈일은 3월 17일. 인스타의 알고리즘 덕분에 서점 오픈을 준비하는 과정을 우연히 알게 됐고요. 그때부터 올라오는 게시물을 관심있게 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서림지기(책방지기님이 이렇게 부르시더라고요)님이 독립출판물 입고 환영이라는 글을 올리신 걸 보고는 곧바로 메일을 보냈죠. 그렇게 제 책을 들고 책방 여행을 떠났습니다. (덕분에 책방산책 코너도 컴백하게 됐고요.)




초록서림의 메인 서가라고 할 수 있는 정면에는 책 표지를 모두 볼 수 있도록 진열이 돼 있었어요. 책에는 서림지기 님이 직접 달아놓은 손편지 코멘트를 읽어볼 수도 있고요.

책방에 들여오는 모든 책을 읽고 결정한다는 서림지기 님의 말에 부지런한 다독가라는 생각을 하며 둘러보고 있는 도중에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어요.


우주인증, 그리고 그 옆에 살짝 놓인 코스모스 보고 눈치 채셨겠죠? 그렇습니다. 서림지기는 공대생이었대요. 어렸을 때도, 지금도 우주여행을 정말로 꿈꾸고 있고요. 반려자와는 노벨상 수상자의 연구주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고 들었을 때는 그저 감탄만 나오더라고요. 저는 수포자 아니고 과포자라 아무래도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렵고 생소한 분야이기 때문이죠. 양자역학으로 나누는 대화도 재밌다고 하니 엄지척 할 수밖에요.
자연스레 초록서림 서가에도 서림지기 님이 좋아하는 과학 책을 비롯해 SF 소설도 진열돼 있었답니다. 저에게는 아직 친숙하지 않은 분야인데 덕분에 독서 위시리스트에 하나 더 추가를 해두었어요. 어렵겠지만 언젠가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이렇게 정말로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확고히 알고 있고, 그것을 호기심 갖고 깊이 파는 사람을 만날 때 저는 너무 설레요. 책에서 새로운 문장을 발견할 때처럼 놀랍고 신기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서림지기 님의 이야기도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방명록을 남길 수 있는 책상은 볕이 잘 드는 곳에 있었는데 솔직히 이 책상 너무 탐났어요. ㅎㅎㅎ 책상 앞 창에 리딩파티 공지 포스터가 보이시나요? 포스터를 잘 살펴보면 테이블 위에 책과 함께 하는 독서 짝꿍들이 놓여 있어요. 커피잔부터 메모지, 펜, 헤드셋 등. 귀엽게 잘 만들었다 싶은데 서림지기 님이 디자이너가 되어 제작한 거라고 설명을 해주었어요.(속으로 계속 감탄했고요)
참고로, 리딩파티는 다함께 모여 '각자 조용히 읽는 시간'을 즐기는 모임으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오직 독서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고 합니다.(초록서림 인스타그램 설명 참고)


저는 샘플북에 메모를 써서 초록서림에 두고 왔습니다. 어떤 사람이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까 생각하면 부끄러우면서도 설레요. 읽힌다는 건 이해받는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책방을 다정하게, 안온하게 꾸며가는 서림지기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부분들. 계속 반짝 반짝 빛나기를 빌어보게 됐어요. 동네에서 사랑받는 곳으로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고요.
서림 안에 있으면 내 자리를 찾은 기분이 든다. 내가 가진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이런 기분은 처음인데, 주체적으로 산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싶다. 내일은 손님이 한 분도 찾아오지 않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나는 내가 선택한 일을 하고 있고, 서림을 준비하는 과정과 첫 시작이 산뜻하고 재밌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블로그 '얼떨결에 성공하고 싶다' 초록서림 오픈 첫날 일기 중에서
또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자가 되기로 결심한 서림지기의 실행력을 보면서, 할 수 있다고 제게도 용기를 나눠주는 서림지기의 말을 들으면서, 저도 주저하지 말고 계속 해보기를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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