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단풍산행을 떠납니다. 달리는 산행이 아닌 함께 단풍을 찍고 벽소령 대피소에서 1박하며 좀 더 여유로운 종주입니다. 아직 한 달의 시간이 있으니 체력이 힘들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열심히 운동하면 충분히 가능한 시간이에요.”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등산동호회 카페에서 산행 공지 글을 하나 읽었다. 지리산 단풍산행에 여유로운 종주라니? 내겐 *엄마 품*처럼 따뜻했던 지리산 산행의 추억이 있었다. 마음이 동했지만 ‘종주’ 경험이 내겐 많지 않아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성삼재부터 중산리까지(*성중종주 코스*) 36km를 걷는 일정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자신 없었기 때문이다.
| *엄마품* 어찌 보면 최초의 등산 입문기와도 같다. 언론고시생이었던 2011년 9월, 더는 매달리지 않고 취업하겠다는 마음으로, 리프레시 겸 무작정 지리산 화대종주를 떠났다. 화대종주는 화엄사에서 출발해 노고단, 연하천 대피소, 벽소령 대피소, 세석 대피소, 장터목 대피소, 대원목 등을 거쳐 45km를 걷는 코스다. 보통 1박 2일 또는 2박 3일로 산행을 계획한다지만, 당시 나는 노고단 대피소(1박), 연하천 대피소(1박), 벽소령 대피소(1박), 장터목 대피소(1박)으로 총 4박 5일에 걸쳐 아주 느린 종주를 했다. 물론 끝내겠다는 마음과 달리 하산하자마자 석간신문 필기 시험 통과 연락을 받았다. 실무면접-현장평가는 통과했으나 최종면접에서 탈락했고, 그 전형을 마지막으로 정말 더는 언론사 시험을 보지 않고 취업했다. 어쨌든 내게는 이 사회에서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하던 시기에 지리산을 갔던 셈인데 산에서 많은 위로와 기운을 받았고 그것이 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엄마품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
| *성중종주 코스* 지리산 성삼재~노고단~연하천 대피소~벽소령 대피소(1박)~세석 대피소~장터목 대피소~천왕봉(정상)~중산리까지의 코스를 말한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못할 거라 했지만, 지리산을 꼭 한번 다시 가고 싶었기에 무리해서 신청을 했다. 매일 운동하고 연습하면 괜찮다 했지만 그때도 거의 자정 야근을 하던 때라 운동은커녕 짐도 겨우 쌌던 기억이다. 내가 취소하지 않았기에 그(지금의 짝꿍)도 취소하지 않았고. 당시는 우리가 남몰래 만나던 시절이었기에 각자 페이스대로 걷기로 했었다. (사전약속🤘)
자정 버스를 타고 구례를 지나 새벽 3시 산행이 시작되었다. 걷다 보니 점점 해가 떴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 어느새 파스텔톤 색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반야봉까진 어떻게든 따라갔는데 그 이후로는 점점 사람들과 간격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역시 빨랐고 반야봉 이후로 후미 원정대(약 7명)가 결성됐다. 나는 후미 원정대 중에서도 최후미를 담당했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최후미의 후미를 맡아주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때면 그는 계단을 오르거나 오르막길이 나올 때마다 내 배낭을 뒤에서 번쩍 들어주고 뒤에서 있는 힘껏 밀어주었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산악회 어르신들이 "아이고~ 남자친구가 아주 지극정성이네!" 라며 지나갔다. (누가 들을까봐 동공지진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연하천 대피소를 거쳐 벽소령 대피소까지 오니 오후 4시. 약 12시간의 산행 끝에 달디 단 휴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피소에서는 원래 배낭에 짊어지고 온 온갖 음식을 꺼내 굽고 튀기고 볶고 끊임없이 먹으면서 수다를 떠는 게 재미인데 이미 지쳐버린 체력 탓인지 그때는 모든 게 흥이 안 났다. 그러니 대피소 산행도, 종주도 처음이었던 그에게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주겠다는 내 계획도 자연히 틀어졌다.
그는 지리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충분히 못 보고 앞서 가는 사람들을 쫓아가기 급급한 내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대피소에서도 제대로 챙겨줄 수 없어 속상해했는데 그때는 왜인지 나는 미안하면서도 자꾸만 짜증을 냈다. 그래서 우리는 남몰래 수시로 다투고 화해했다. 그 때문인지 그는 등산 재미를 잃고 말았다.
우리는 잘 숨겼다 했지만 그 당시 함께 산행을 갔던 몇몇이 계속 우리 사이를 물었다했다. 의아해하며 당시 찍힌 사진을 뒤늦게 보니🥰 그는 내내 내 뒤를 지켜주었다.
그래서 그날의 산행은 어떻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제목처럼 우리의 성중종주는 실패로 끝났다. 체력이 바닥난 나는 다음날 세석 대피소에서 천왕봉으로 가는 대신 하산을 택했다. 내가 하산을 택한 이유로 그의 성중종주도 실패 확정. 하산 길은 정말 길고 고됐다. 다만 우리의 남몰래 연애를 알고 있는 사람과의 하산길이었기에 내려가는 마음은 다소 편했다.
다음해 가을에는 결혼 준비로, 그 다음해 가을에는 코로나로, 그리고 또 다음해 가을에는 임신에... 연이어 출산, 육아가 이어지면서 지리산 성중종주는 여전히 미완등인 채로 남아 있다. 나의 마음에는? 그에게 대피소 산행 노잼은 물론, 등산 노잼까지 줬다는 부채감과 죄책감이 가득하다. 10년쯤, 아니 한 5년쯤 뒤에는 우리 가족이 함께 대피소 산행을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에 먹구름 같은 기운이 싹 사라진다. 다시 간다면 이번엔 내가 그의 배낭을 번쩍 들어주고 뒤에서 밀어줄 수 있으려나.
종주는 실패했지만 1박 2일 그가 내게 보여줬던 한결같은 모습 덕분에(그 시기를 기점으로) 신뢰가 쌓여 결혼에도 성공했으니 이 산행의 더하고 빼기를 해본다면 서로에게 충분히 플러스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내맘대로 합리화를 해보며 이글을 마친다.😊
(다음 [산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에는 그래서 어떻게 산타다 썸타게 되었나 털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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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내 주변에 이 사람이 생각났다!’ 하는 분이 있다면 자유롭게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평생해야 할 일이라면 내 일을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또 본인의 일을 즐기는 사람이 더 많아질 수 있게 함께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회신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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