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8월은 내게 ‘해오라비난초’로 기억되겠다. 첫 문장이 유난스럽다 생각할 수 있지만 매일 아침 출근과 동시에 해오라비난초를 찾아 문안인사를 드렸다. 정확하게는 7월말부터 엊그제까지 매일 해오라비난초가 심겨진 숲으로 향해 상태를 살피고 사진을 찍었다. 8월 8일 대망의 첫 꽃망울이 열렸을 때 아쉽게 동료에게 1빠를 뺏기고 말아, 그 뒤로 더 심기일전해 방문했다. 좀 더 예쁜 모습을 제대로 담아야지 하면서. 지난 수요일(3일), 마지막 꽃대의 꽃이 지면서, 약 한 달 간의 해오라비난초와의 만남이 끝났다.
이 정도면 궁금하겠다. 도대체 해오라비난초가 무엇이길래 수목원에서 난리냐고. 난초과 여러해살이풀로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에 지정됐고, 국가 적색목록에 위급(CR)으로 분류됐다. 한 마디로 엄~청 희귀한 식물이다. 그래서인지 꽃말도 무려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다’다. 아무리 멸종위기종이라지만 수목원에서만 수선을 피우는 것 아니냐 반문할 수 있겠다. 나도 수목원에 근무하면서 알게 됐고, 난생 처음 보는 꽃이었다. 하지만 나만 몰랐지 알 사람은 모두 아는, 야생화 좀 키운다, 사진 찍는다 하는 사람은 모두 한번은 꼭 보고 싶다는 위시리스트에 넣는 그런 존재였다.


사실 꽃이 피기 전까지는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라는 여겼는데, 신비로운 모습을 대면하고 나니, 과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였다. 꽃을 본 첫날은 신기함과 드디어 피었다는 흥분감에 1시간은 오롯이 사진 찍는데 할애했다. 해오라기(백로)가 날개를 펼친 듯한 모양을 띄고 있어 ‘해오라비난초’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꽃을 보면 정말 새 아닌 다른 대상은 떠올리기 힘든 모습이다. 막 피기 시작하는 꽃의 경우는 날개짓을 하기 직전 웅크리고 있는 한 마리의 새 같고, 활짝 펼쳐진 꽃잎을 보면 날개 끝 갈퀴처럼 사방으로 뻗어있다. 꽃잎만 신기한 것이 아니다. 암술과 수술이 붙어 있는 꽃 안쪽 동그란 구멍은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처음 보는 구조에 계속 얼굴을 디밀게 된다.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우리나라 자생식물인 해오라비난초가 멸종위기종이 된 주된 이유는 무분별한 채취에 있다고 한다. 😞
해오라비난초의 인기는 개화 전부터 실감할 수 있었다. 꽃대가 올라왔다는 뉴스가 보도되자(꽃이 폈다는 뉴스가 아니다. 그냥 꽃대’만’ 올라왔다는 뉴스다!) 수목원에 하루에도 수십통의 문의전화가 왔다. 방문객이 현저히 적어지는 여름의 수목원을 고려하면 꽤나 놀라운 수치다. 마침내 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아이돌 홈마 부럽지 않은 장비를 갖춘 대포단이 등장했다. 몰랐다, 우리나라에 이토록 많은 야생화 사진작가가 있는 줄은. 이토록 사진에 열망하는 어르신이 많을 줄은. 배낭에 커다란 렌즈와 삼각대를 챙겨와서는 수목원 개장시간부터 마감시간까지 꽃 크기가 겨우 2cm 될까 한 자그만 꽃을 수 백 장 찍어 가곤 하셨다.

어느 날은 나란히 대포 카메라를 목에 건 노부부가 손을 잡고 정원을 거니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등산복을 입은 카메라 부대가 숲으로 우르르 직행하는 모습을 봤다. 한여름 꽃 하나가 바꿔 놓은 수목원의 방문 행렬이었다. 한 번은 60세는 훌쩍 넘으신 중년의 여성 세 분이 해오라비난초의 위치를 물으셨다. “일찍 오셨네요” 인사를 건네니 대전에서 올라오셨다 대답하셨다. 또 이 수목원 관람이 끝나면 오후에는 수원의 다른 수목원으로 이동해 관찰할 거라는 계획도 공유해 주셨다. 나중에 들으니 데스크에 맡겼던 도시락을 찾아 다른 수목원으로 택시를 불러 가셨다고 한다. 그야말로 만반의 준비를 해오셨다. 대전에서 수원수목원의 개장 시간 9시 반에 맞추려고 새벽부터 얼마나 바지런하게 움직이셨을까? 그런 열정의 순간을 목격한 것은 해오라비난초만큼이나 귀했다.

어느 새 모두를 열광시키던 꽃잎은 말라 볼품 없어지고, 꼿꼿하던 줄기마저 아래로 쳐지고 있다. 하지만 꽃받침 아래 줄기만큼은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있다. 꽃 아래 줄기에 씨가 맺히는 구조라 한다. 이렇게 한 계절이 또 지나간다. 올 여름 더위 만큼이나 수목원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던 해오라비난초는 내게도 여러 장면들을 선사했다. 그저 사진 몇 장 공유해드린 것 뿐인데, 아주 귀한 걸 받은 마냥 연신 고개 숙이며 감사하다고 인사하던 어르신. “뭐가 피었어요?”라고 물었다가 사진을 보여드리며 설명드리니 너무 신기하다며 본인도 대신 사진을 좀 찍어 달라며 휴대폰을 건네던 어머님. 무엇보다 노년의 나도 저렇게 열정적일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게 한 대전 언니들!까지.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순간의 행복은 어떻게 만들어 갈 지 또 하나의 힌트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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