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자자족

[인생 방학] 여름은 나를 다음 계절로 데려다준다.

길 위에서 보낸 여름이 열어준 나의 수많은 여름들

2026.08.02 | 조회 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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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 안녕하세요. 곰자자족입니다. 8월의 첫 주말입니다. 작년 이맘때는 아이의 어린이집 방학으로 저도 함께 강제 방학기간을 보냈던 것 같은데요, 올해는 다행히도 아이의 유치원이 방학 없이 열려 있어 조금은 부담을 내려놓고 아이를 맡긴 채 부지런히 회사를 오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른에게도 여름방학이, 가을방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농담처럼 말한 적은 있지만, 사실 '인생 방학'은 막상 쓰려니 생소했어요. 그렇게 내 인생에 방학이었던 적이 언제였을까 파고 들다 보니 아주 먼 과거가 소환이 되었습니다. 꽤 오래 전 이야기를 풀어볼게요.  구독자님께도  구독자님만의 '인생 방학'이라는 시간이 충분히 마련돼 있기를 바랍니다. 

📍 메일리 발송 제한 오류로 인해 부득이 8월 2일(일) 오전에 발행됩니다. 사전에 공지해드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

여름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이다. 무덥고 습한 날씨에 온몸이 녹아버릴 것 같다가도, 정신 차려보면 여름의 기세에 장단 맞춰 들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사계절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일초의 망설임 없이 여름!”이라고 외칠 수 있을 정도다. 언제부터 이렇게 여름을 좋아하게 된 걸까 생각하다 보니 스무 살의 여름으로 돌아가게 된다.  

큰 야망과 포부를 품고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부적응자의 상태로 한 학기를 마쳤다. 기자가 되고 싶어 대학교 방송국에 들어간 게 같은 과 선배들에게 좋지 않게 비춰졌던 것이다. (학과와 방송국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애정과 관심을 회수한 선배들의 반응이 느껴졌다. 그러니 학교 방송국 활동에 올인하겠다고 다짐했으나 각오는 한 학기 만에 사라졌다. 방송국 생활이 힘들다는 핑계로 수업도 제대로 듣지 않아 성적도 바닥인데 방송국도, 학과 생활도 모든 게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이 학교를 계속 다니는 게 맞는 것일지 고민스러운 마음으로 첫 여름방학을 맞았다.  

그러나 학교를 그만둘 만큼 용기는 없었다. 뭐라도 해야지 싶어 학교 게시판을 살펴보다가 국토대장정 참가자 모집 글을 보게 됐다.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학교 서울캠퍼스까지 431km를 걷는 2021일의 여정이었다. ‘이거라면 무엇도 성취하지 못한 채 끝나버린 내 첫 학기를 조금은 다르게 의미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참가신청서를 썼지만 최종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이것도 할 수 없다고?  

친구들이 연애하고 이별에 아파하는 동안 나는 국토대장정 탈락 때문에 아팠다. 그런데 이거라도 해야지 싶어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했던 날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국토대장정 결원이 생겨 추가 합격자가 되었는데 참가 의사가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답했다. “무조건 갈래요!” 

그렇게 짐을 쌌다. ‘한반도를 적시는 희망의 땀방울이라는 슬로건 아래, 국토대장정은 23일의 금강산 관광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희망은 당연히 통일이었을 테지만, 우리는 통일보다는 관광에 더 많이 끌렸다. 그래서 금강산 앞에 자리 잡은 천막 텐트 안에서 쉴 새 없이 게임하느라 바빴다. 우리가 금강산을 눈앞에 두고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공공칠빵이나 공동묘지’, ‘마피아와 시민 같은 게임이었다. 정말 너무 재미있었다. 이런 게 대학생활이라면 계속 다녀야지 생각할 만큼 걱정 없이 웃고 떠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진짜 여정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고성 통일전망대로 돌아오는 3일차부터였다.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좌로 밀착’, ‘우로 밀착같은 군대용어를 따라 외치면서 하루 평균 20~30km를 걸었다. 덥고 숨 막히고 발바닥이 뜨거웠다. 잠깐 쉬었다 걸으면 나아질까 싶어 멈춰보기도 했지만, 쉬었다 다시 걸으면 발이 더 아팠다. 오히려 계속 걸어야 아프다는 통증을 잊을 수 있었다.  

숙영지에 도착하면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텐트 치고, 순서대로 밥 먹고, 5분 내에 찬 물 샤워를 마쳐야 했다. 이제야 국토대장정이라는 게 무엇인지 실감이 났다. 잘 씻지 못하고, 잘 자지 못하는 것을 견디면서 끝없이 걸어야 하는 고행 같은 것이라는 것을.  

다음날도 돌덩이 같은 배낭을 메고 걸었다. 그런데 걸을수록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10km는 짧고, 1km는 길었다. 얼굴이 시커멓게 타도 예뻤다. 며칠 머리 못 감고 세수 못해도 더러운 냄새가 안 났다. (물론 착각이겠지) 서로 꼬질꼬질한 모습을 내보일수록, 발바닥 물집이 더 클수록 크게 웃었다.  

한번은 산을 넘는 날이 있었다. 이미 체력은 바닥난 상태였으나 낙오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올라가다가 결국 눈앞이 핑 돌더니 넘어졌다. 그때 사람들이 몰려오더니 내 얼굴에 아낌없이 생수를 쏟아 부었다. 정신 차리라고, 크게 숨을 쉬라는 얘기가 멀게 들렸다.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은 이미 누군가 가져갔다. 다시 숨이 차 쪼그려 앉아 쉴 때면 언제나 누군가 곁에 서 있었다.  

함께 어려운 시기를 버티면서 나아가는 기쁨. 깊은 전우애 같은 것을 나는 여름 길 위에서 배웠다.  

첨부 이미지

종주 마지막 날, 학교 정문이 보이자 깃발을 흔들며 걷던 사람들이 포효하면서 본관까지 달려가 분수대에 뛰어들었다. 그때 내가 본 건 100명이 가진 100개의 색깔이 하나의 색깔이 되어 도착한 마음이었다. 하나로 똘똘 뭉쳐진 그날의 모습. 이것은 걷지 않고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여름의 에너지라고 확신한다.  

강렬했던 여름방학 덕분에 나는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지워버리고 2학기를 신나게 다녔다. 씻지 않은 몸에서 초콜릿 냄새가 난다며 크게 웃고, 오르기 힘든 길을 손잡고 오르다가 두 손에 흐른 검은 땟물을 보고도 웃었던 사람들. 그리고 500ml 페트병을 16명이 나눠 마시고도 아직 물이 꽤 많이 남아있던 페트병을 보면서 짜릿해하고 환호했던 여름을 함께 통과했던 사람들을 만나려고 나는 학교에 갔다.  

인생방학이라는 게 뭘까. 그건 단어를 품은 사람들이 각자 정의하는 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 첫 인생방학이란 큰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스무 살의 여름이 아닐까 싶다. 휴대폰과 컴퓨터 등 익숙한 편리함으로부터 멀어져 보낸 20일 덕분에 여름을 사랑하게 됐고, 매년 여름마다 나만의 이벤트를 만들게 됐으니까. 그 뿐 아니라 열심히 학교를 다녀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으니까. 그전까지와는 다른 마음을 먹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게 인생방학이 아닐지.  

그런 의미로 보자면,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에 집중했던 지난 4년도 긴 인생방학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20223월 여러 고민 끝에 회사를 나온 뒤 20267월 다시 직장인이 되기까지 만 4년 넘는 시간 동안 내가 가장 오래 품고 있던 질문은 다시 일할 수 있을까?’였다. 드문드문 알바처럼 하는 일 말고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시간을 걷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선배의 제안으로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게 됐을 때, 확실히 알게 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의 본질은 사람과 이야기를 연결하는 일이라는 것을. 친구들이 일 하는 건 어때?” 물으면 일은 재미있고 어렵지 않은데, 일 외에 모든 게 어렵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그건 불확실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을 오가며 육아에 전념한 4년 동안 나를 잘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무엇을 좋아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생각했던 시간 말이다.  

그러니까 방황 끝에 스물을 무사히 넘긴 것처럼, 지금의 혼란들도 흘려보내다 보면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긴 방학이 끝난 현재를, 이 여름을 충분히 마음껏 살아내고 싶다. 여름은 내게 언제나 다음 계절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금강산에도 발도장을 찍어보았던 2004년의 여름
금강산에도 발도장을 찍어보았던 2004년의 여름
숙영지에서 출발하기 직전의 모습. 배낭 커버를 씌운 걸 보니 비가 왔던 날이었던 것 같다.
숙영지에서 출발하기 직전의 모습. 배낭 커버를 씌운 걸 보니 비가 왔던 날이었던 것 같다.

 

📌 [휴재 안내] 여름휴가철을 맞아 일류여성 에디터 셋도 짧은 휴가를 다녀오려 합니다. 다음주 금요일(8/7)은 쉬고, 다다음주 금요일(8/14) 은둔자의 '인생 방학'으로 돌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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