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쓸고 닦는 것이 무색하게 송화가루가 집안 곳곳을 노랗게 물들이는 요즘. 그래도 마냥 창문을 닫아두고 살 수 없기에, 송화가루가 그래도 덜 날린다는 저녁시간 창을 열어 묵은 공기를 환기시키곤 한다. 그런데 다들 <흑백요리사> 출전이라도 준비하는 걸까? 9시가 넘은 시간, 이웃집에서는 다채로운 요리들을 선보인다. 오늘은 오징어를 굽나보다 싶었는데, 조금 뒤에는 두부김치의 알싸한 볶음 향이 집안을 가득 채운다. 환기하려고 창을 열었을 뿐인데, 초대하지 않은 음식 냄새로 온 집안이 코팅된 초여름의 밤이다.
이런 집안 사정?과는 다르게 요즘 집 밖은 은은한 향이 감돈다. 종종 이팝인지, 조팝인지 헷갈리는 이팝나무. 사람 키보다 훨씬 큰, 딱 이맘때 흰꽃이 피는 나무는 이팝나무다. 조팝나무는 사람 키보다 작은 관목이며, 꽃도 지난달에 피고 이미 져 버렸다. 이팝나무는 꽃이 쌀밥(이밥)처럼 보인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데, 내가 보기엔 쌀치고는 너무 긴 것 아닌가 싶다. 이 얇고 가는 꽃잎 때문인지, 하얗게 부풀어 오른 풍성함 때문인지 꽃가루가 날린다고 오해 받는 이팝나무는 사실 공기 중 날리는 꽃가루가 양도 많지 않고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성분도 적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작은 솜처럼 날리는 버드나무 씨앗 때문에 오해 받는 억울한 나무다.

사실 제대로 이팝나무를 관찰해봤다면 이런 오해는 없었을텐데. 키가 너무 커 꽃을 제대로 관찰하기도, 향을 맡기도 어렵지만 바람 부는 날 꽃이 잔뜩 핀 이팝나무 아래 서 본다면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전달되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맘때 강렬한 달콤함으로 발을 붙잡는 아까시나무 보다 세련됐다고 할까? 은근한 향으로 다시 한번 나무 위를 올려다 보게 된다.

이맘때 피는 꽃들은 대게 색이 하얗고, 인상적인 향을 가진 경우가 많다. 지난해 이맘때쯤 발행했던 레터도 소개한 아까시나무와 때죽나무, 쪽동백나무의 꽃이 그러하다. 또 치자나무와 쥐똥나무, 찔레꽃도 강한 향을 가지고 있다. 이것도 모두 생존을 위한 전략이 숨어 있다고 한다. 흰색은 초록색이 짙은 숲속 또는 어둠 속에서도 눈에 잘 띤다고 한다. 또 강한 향은 밤에 활동하는 곤충을 유인하는데 효과적이다. 초여름은 일교차가 크고 저녁 기온이 선선해 야간 곤충의 활동이 늘어나는데 이런 꽃들의 전략은 수분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역시 식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경이롭다!

더불어 초여름은 잎과 줄기도 성장해야 하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시기다. 그래서 꽃잎을 크고 다채롭게 만들기 보다는 가성비 좋은 향을 택해 수분을 돕는 곤충들을 불러모으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한여름에 비해 곤충이 적은 초여름에도 진한 향이 넓게 퍼지면 멀리 있는 곤충들까지도 유혹 가능하다. 게다가 야행성 곤충들을 위해 저녁 무렵 향을 더 진하게 만들기도 하는 전략가들이다. 이팝나무 역시 저녁이면 향이 더 그윽해진다. 물론 이웃집 요리사들을 뚫을 수는 없었지만 ㅠ 생존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무서울만큼 집요한 것이 식물인데, 그 단순하면서도 단단한 모습이 마음에 든다.
아무튼, 아직은 선선해 밤 산책이 맛있을 요즘, 후각에 집중해보면서 잎이 하얀 입하의 꽃들을 즐겨보시길 강력 추천한다!

✅이번 주 일류여성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만족스럽거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더 깊고 나아진 일류여성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