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옹이 왔다!”
수목원의 분갈이 행사를 진행하던 선생님이 외쳤다. 전방 200m에서 한 남성이 1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뱅갈고무나무를 한 손에 안고 힘겹게 걸어왔다. (영화 <레옹>의 남주인공과는 다소 괴리가 있었다.) “이것도 분갈이 되죠?” 화분 크기가 규정에 아슬아슬 (사실은 좀 컸지만ㅠ) 했지만 여기까지 들고 오셨으니 괜찮다했다. 키운 지 얼마나 됐냐는 질문에 1년 6개월 됐다며, 자녀가 태어날 무렵 사서 키운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 설명을 듣고 다시 보니 아이의 태명인 것으로 보이는 이름과 함께 ‘건강하게 자라’라는 리본이 붙어있었다. 크기가 커 애는 먹었지만 뱅갈고무나무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가지치기도 하고, 흙도 새로 갈면서 훤칠해져 돌아갔다. 물론 처음의 리본도 소중히 붙여서.
올해 내가 근무하는 수목원에서는 ‘찾아가는 정원상담실’라는 이름으로 아파트 단지나 공원을 찾아가며 동네 사람들의 분갈이를 도와주고, 화분 심기도 체험해볼 수 있는 행사를 하고 있다. 나무의사도 함께 해 식물을 기르며 궁금한 사항들까지 상담해준다. 참 좋은 행사가 아닐 수 없다. 다만 내가 행사 참여자가 아니라 주최 측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문제일 뿐. 행사 날이 되면 수목원이 아닌 행사장으로 (대체로)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몸을 쓴다.
요령이 없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장비빨. 주섬주섬 챙겨온 3M장갑을 끼고 응축했던 힘을 모아 트럭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나르고, 분갈이 매트마다 상토도 한 포대씩 뜯어 쏟아주면 대강 준비가 끝난다. 나는 분갈이존의 접수와 틈틈이 사진 찍는 역할을 맡아 알아서 눈치껏 움직인다. 멀리서부터 화분을 들고 오는 분들을 보면 “선생님, 분갈이 하러 오셨어요?’ 외치며 접수를 돕고 부스가 한적하다 싶으면 서성이는 사람들에게 행사에 대한 대략의 소개를 하며 모객을 해본다. 그러다가 알아서 잘 굴러간다 싶으면 각 부스들을 돌며 사진을 찍고, 때때로 분갈이존에 손을 보탠다. 그렇게 분주하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반경 10미터도 안되는 공간에서 만보에 가까운 걸음수를 채우게 된다. 맞다. 몸이 힘들다.
하지만, 다음날 사무실에서 전날 찍었던 사진들을 돌려보니 힘든 것만 있던 시간은 아니었다. 바쁘게 지나간 하루라 잊었던 찰나들이 사진을 통해 상기됐다. 앞서 이야기했던 레옹의 주인공은 큰 크기의 화분으로 우리를 긴장시켰지만, 사연을 듣고 나서는 다들 한마디씩 거들며 가지치기를 도왔다. 오전에는 어린이집 친구들도 있었다. 꼬물거리는 손으로 흙을 퍼 작은 화분 하나를 만들고, 또 선생님의 부름에 일렬로 서 익숙하게 포즈를 취하는 아이들을 다시 보며 자연스레 웃게 됐다. 귀찮다는 듯 내 손에만 오면 식물들이 크게 자란다며 은근한 자랑과 함께 화분 빽빽하게 자란 식물들을 가지고 오는 드루이드 같은 능력자들의 화분도 사진 속에 담겨 있었다.
가져오는 화분의 종류만큼이나 화분의 상태도 다르다. 분갈이를 해주고 싶어도 어떻게 하는지 몰라 몇 년 동안 한번도 분갈이 해주지 못한 화분도 있고, 원예용 상토가 아닌 정말 그냥 흙을 퍼서 심는 분도 있었고(식물을 심어 기르는 흙은 따로 있다), 물을 너무 열심히 줘서 뿌리가 다 녹아버린 경우도 있었다. 각기 다른 사연과 식물에 맞춰 흙 배합을 하고, 관리방법도 설명해 가며 분갈이를 마친다. 그러고나면 사연과 식물은 달라도 모두가 밝아진 표정으로 앞으로 잘 키워보겠다고 다짐한다. 나도 그 미소에 바람을 담아 배웅한다. “예쁘게 키우세요!”
그런데,… 정작 나는 우리집 식물들을 어떻게 키우고 있더라?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나무와 꽃을 관찰하는 한 해를 보내고 있지만, 정작 내 집의 식물들은 제대로 건사하고 있지 못했다. 한 때는 발아 인큐베이터도 만들며 파종을 해 싹을 틔우며 좁은 베란다에서 방울토마토도 상추는 물론, 스위트피 덩굴손이 천장까지 닿도록 키웠는데, 지금은 ‘살아남는 것만 키운다’는 마음이 되어 소수정예의 친구들만 남았다. 그마저도 생각날 때마다 물을 주는 정도라… 반성하게 된다. 누가 누구에게 이야기 하겠는가?


그런데 가을이 됐다. 열매를 맺는 나무들도 많고, 단풍도 드는데 날씨도 선선해지니 밖에 나가 산책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내가 단풍이 유명하다는 여기 저기를 알아보느라 분주해지는 시기기도 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분갈이를 해주고 식물을 잘 키우라고 인사를 하다보니 우리집 식물들을 떠올리다 보니, 밖에만 식물이 있는 건 아니라는 자각이 들었다. (물론 구독자님 집에는 식물이 없을 수도 있지만, 계절에 따라 자연 산책을 하는 분이라면 화분 하나쯤 집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ㅎㅎ)
비록 코너명은 [이 계절 이 식물]이라 이름을 붙였지만 가을을 맞아 다시금 식물들을 생기를 찾을 이때. 집에 화분이 있다면 다시 한번 살펴보길 바란다.(이미 눈치 채고 있으시겠지만 사실 이것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자, 선언입니다. 잘 키우고 계시다면... 존경합니다, 선생님🥹) 언젠가 받은 선인장 하나가 회사 책상 위에 혹은 절대 안 죽는다는 스투키 화분이 집안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면 정리를, 아직 생명이 살아있다면 남은 친구라도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가지치기를 혹은 흙갈이를 해주는 건 어떨까? 아니 이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 혹시 주인의 소홀함에도 아직 잘 살아내고 있다면 고맙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아 내 집에 있는 식물의 고향이 어디인지(어떤 기후에서 키우는 것이 좋은지) 한번 검색해본다면 각성이 될 수 있겠다. 밖에 있는 나무도 안에 있는 내 화분도 모두 건강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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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마치 퇴사를 결심한 후배가 꺼내는 클리셰 같은 문장. 후배를 둔 직장인이라면 뜨끔할 이 문장을 구독자 여러분께 던집니다. 어느덧 사회생활 10년이 훌쩍 넘은 경력자들이지만 여전히 머릿속에 물음표를 달고 때론 답답한 마음에 풀리지 않는 분노를 삭혀가며 고군분투 중인데요, 이런 저희에게 본인의 경험담과 생각을 들려주실 귀한 선배님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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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마주하고 인터뷰한다면 좋겠지만, zoom, 구글미트를 활용한 온라인 미팅, 서면으로 답변해주시는 것도 모두모두 환영입니다! 선배님의 소중한 경험담을 공유할 모든 통로를 활짝 열어놓을 테니 부담 없이 연락주세요! 함께 나눈 이야기는 세 에디터가 잘 갈무리해서 레터를 통해 구독자님들께 생생히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내 주변에 이 사람이 생각났다!’ 하는 분이 있다면 자유롭게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평생해야 할 일이라면 내 일을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또 본인의 일을 즐기는 사람이 더 많아질 수 있게 함께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회신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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