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이킹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왕 걷게 된다면 곧은 직선의 길 보다 꼬불꼬불 굽은 길을 선호한다. 가능하면 평지보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가진 리듬감 있는 길이라면 더 좋겠다.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목에 설 때마다 나는 쉬지 않고 바쁘게 뛰는 나의 심장과 마주한다. 가만히 숨을 고르고 걸을 준비를 하다 보면 새삼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서 각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내 팔다리와 몸뚱이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그럴 땐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지막하게 파이팅을 외쳐준다. (나의 몸아! 듣고 있니?)
숨을 고르고 나서 내딛는 그 첫 발걸음에는 많은 감정들이 실려있다. 예측할 수 없는 그 길 위에서 마주치는 각양각색의 순간들이 내 안에 자리 잡은 작은 감정의 샌드백을 툭툭 건드리고 지나간다. 그래서 더없이 행복하고 벅찬 순간을 만나기도, 건드려진 감정이 부정적일 때는 따갑고 아픈 마음이 더 불편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걸어나가다 보면 불편한 감정들도 훌훌 날아가 버린다.
그러다 가만히 들판 한가운데에서나, 깊은 숲속에서 발길을 멈추어 숨을 고를 때가 있다. 이때 느껴지는 고요와 적막은 내가 정말 이 넒은 곳에 혼자라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이라는 녀석을 소환시키게 한다. 하지만 고요하고 아득한 공간은 금세 바람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으로 채워진다. 바람에 일렁이는 숲속의 나뭇잎들은 가만히 귀 기울이면 바다의 파도 소리와 비슷하게 들리기도 한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이 텅 빈 시간 속에서 나는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나와 내 얼굴을 간지럽히는 햇살과 송골송골 콧등에 맺힌 땀방울 위를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을 만난다. 가만히 서서 홀로 고요해져야만 느낄 수 있는 감사한 것들이다. 매일 우리 곁에 있지만 존재를 느낄 수 없었던 그 작고 소중한 것들처럼 말이다.
내가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그 해 초부터 나는 참 많이도 걸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주말마다 영국 남부의 Jurassic coast와 북부의 Peak District를 걸었고, 영국령 섬인 Jersey 해안가를 걷기도, 노르웨이의 피오르드를 걷기도 했다. 퇴사를 하고 6개월 가까이 떠난 남미 여행에서도 나는 수많은 길들을 걷고 또 걸었다. 주로 혼자 걷던 길이었지만. 단 한 번도 완전히 혼자인 적은 없었다. 자연 속으로 불쑥 들어가면 나의 존재가 그토록 가볍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인데 마치 집에 온 듯 편안하다. 이것저것 잴 필요도 없고, 걱정도 없다. 이렇게 7-8시간 걷다 보면 시끄럽던 머릿속이 조용해지고, 마음 깊은 곳의 웅성거림도 좀 잦아든다. 어쩌면 귓등을 타고 쿵쾅대며 나에게 소리치는 일상의 소음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곳이라서 자꾸만 그곳을 찾아 기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주로 혼자 걸으러 다녀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대부분 내가 걷다가 찍는 사진은 나의 두 발과 내가 바라보는 풍경이었다. 참 감사하게도, 이 작은 몸뚱이 아래로 달린 이 두 다리와 두 발은 내가 원하는 곳이 어디든 불평 한 마디 없이 데려다주었다.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내 의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몸뚱이를 갖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이 작지만 열심히 움직여주는 두 발을 갖고 있다는 것이.
에콰도르 수도 키토 근교를 여행할 때였다. 하루 종일 걷다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눈에 보이는 작은 식당에 들어섰다. 식사를 주문하고 식당 안을 가만히 둘러보는 그때 나의 마음을 자석처럼 잡아당기는 그림 한 점을 보았다. 아이처럼 보이는 작은 사람을 앙상한 두 팔로 따뜻하게 감싸 안고 앉아 있는 한 여인을 그린 그림이다. 두 눈을 감고 그 작은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자태가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그 그림의 제목도 그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이름도 알지 못한 채. 식사를 마친 뒤에도 한참을 그렇게 그 그림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나는 힘들다는 말을 잘 뱉어내지 않는 편이다. 꽤 씩씩하고 혼자서도 잘 지낸다. 그래서 단 한 번도 외롭다 말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무척 외로웠었나 보다. 누군가 아무 말 없이 잠깐이라도 나를 안아주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그림을 바라보며 나도 그 품에 안겨 잠시나마 온기를 느끼려 했나 보다. 나는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 식당 주인에게 물었다. 그 작품은 에콰도르의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화가 오스왈도 과야 사민(Oswaldo Guayasamín, 1919-1999)의 것이었다. 이 작품의 제목도 La Maternidad (1986). 한국어로는 ‘모성’이라고 표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태어나 그렇게 그림 한 점에 이끌려 작가를 찾아 나선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튿날 방문한 과야사민 미술관은 나에게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그의 주도하에 건립된 La Capilla del Hombre 안을 관람하던 중 나는 벽에 붙은 글자 조각들을 읽게 되었다. 무척 흥미로운 문구였고, 나는 12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글을 기억한다.
“Yo llore porque no tenia zapatos hasta que vi un niño que no tenia pies”
“발이 없는 소년을 보기 전까지 나는 신발이 없다고 울었다.”
그저 식당에서 만난 그림 한 점에 이끌려간 미술관이었는데, 이 문구가 쓰인 벽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갑자기 밀려 올라오는 말로는 설명 못 할 감정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세상엔 절대적 기쁨, 슬픔, 행복과 불행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깨달음이었다.
내가 느끼는 이 상실과 불행이 어쩌면 나를 무너지게 할 만큼 무거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느낌.
글을 쓰면서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다 보면 문득 내가 예상치 못한 어느 한 지점에서 계속 맴도는 나를 만난다. 나는 지금 딱 그 지점에 있는 것 같다. 이것을 제대로 풀어 내야 내가 다시 여기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가끔 행복과 불행은 무엇을 기준으로 나누고 어떻게 가늠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일단 나에겐 이것부터가 난제이다. 행복과 불행. 한 끗 차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불행하다 느끼는 그 순간에도 내 삶에 한 귀퉁이에 아직 내가 알아채지 못한 행복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있을 수 있다. 단지 내가 아직 잠시, 완전히 고요해지지 못했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몇 년 전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라는 노래를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듣다가 후렴구에서 왈칵 눈물이 나오려 했다. 살짝 힘을 뺀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내 귓바퀴 타고 나에게 들어와 자꾸만 내 입가에서 맴돌았다. 굳이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필요도 없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만큼은 내 곁에서 아프지 말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그렇게 그의 목소리를 빌어 하고 있었다.
‘행복하자아... 우리 행복하자아...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
걷다 보면 삶이 왜 소풍에 비유되는지 알 것 같다. 우리 삶이 항상 예측 가능하고 순탄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지루할까? 글을 시작하며 하이킹을 할 때 내가 선호하는 길을 나열하며 내가 다시 깨달은 것이다. 우리 삶의 오르막도 오르다 보면 만나는 새로운 풍경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엔 끝없는 오르막도, 끝없는 내리막도 없다. 언젠가 끝일 있을 이 소풍에 만나는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길에서 우리 각자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적절한 힘 조절과 속도 조절이 아닐까?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지방을 여행할 때였다. 그날도 7시간을 걷고 들어온 터라 무척 고단했다. 호스텔로 돌아와 간단한 저녁과 함께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일찍 잠이 들었다. 새벽녘 우리방으로 누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 잠이 깼지만 너무 고단해서 그랬는지 이내 다시 잠이 들었다. 이튿날 조금 늦게 일어나 아침을 먹고 책을 읽으며 햇빛이 잘 내리쬐는 소파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 한 남자 여행객이 벌겋게 부운 맨발로 걸어와 내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발이 너무 아파 보여서 똥그란 두 눈에 물음표를 달아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어제 오후 산에서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매다 새벽이 되어서야 간신히 마을 쪽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가 지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물웅덩이에 발이 빠졌는데 그 때문에 몇 시간을 젖은 신발을 신고 산을 헤매야 했다고 한다. 오늘 새벽에 겨우 숙소에 왔는데 신발이 다 마를 때까지 여기 있어야 한단다. 아, 그제야 이 사람이 오늘 새벽에 우리 방에 들어온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어서 그는 냇가 근처에서 오리 가족을 만났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그 오리 가족을 따라서 길이 없는 수풀 쪽으로 들어갔다가 결국 나오는 길을 못 찾고 헤맸다고 한다. 무슨 영화에나 소설에서 나올법한 그런 일처럼 들렸다. 원래 국립공원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로 들어가면 안 된다. 혼자서 어떻게 그런 무모한 행동을 했을까? 나는 그 오리 가족이 어지간히도 귀여웠나 보다고 짧게 그의 말을 받고, 남은 여행 안전하게 마무리하라는 인사를 전한 후 다른 도시로 떠날 채비를 하러 방으로 왔다.
그때 문득 하루아침에 숲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숲이 만들어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 숲속 길을 걷는다는 것은 내가 살았던 세상과 다른 시간 속에 만들어진 또 다른 세상을 걷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을 걷고 있긴 하지만 숲 전체가 우리에게 허락되진 않는다. 그 숲이 우리에게 허락한 길들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작은 나무로 태어난 우리는 세월을 타고 각자의 숲을 만들어 나간다. 당신이라는 숲, 나의 아이라는 숲. 우리는 매일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각자의 숲은 서로 속도로 매일 달라지고, 매일 자란다. 누군가를 만나고 알아가며 또 연결된다는 것은 그들의 숲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9년 전,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의 숲에 발을 들였다. 어쩌다 걷게 된 당신이라는 울창한 숲속에서 나는 비바람을 피할 수도 있었고, 또치와 까치라는 예쁜 아이들도 만날 수 있었다. 당신이라는 숲에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걸어나가야 할지 며칠을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가졌던 지배적인 생각은 당신의 숲에선 당신이 허락한 길만 걷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좀 다르다. 어쩌면 내가 배려라고 생각하며 행한 행동들이 당신의 숲에선 무관심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었겠고, 나에겐 대단한 것이라 여겨졌던 친절이 당신의 숲에선 특별히 필요가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각자 가꿔가는 내 안의 숲들이 어떻게 우리 가족과 우리가 속한 커뮤니티 안에서 어떻게 아름답게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을 하게 된다. 이제 나는 홀로 어느 날 갑자기 훌쩍 떠날 수 없는 가족 공공의(?) 몸뚱이가 되었다. 그래서 가끔 나는 당신의 숲 그리고 또치와 까치의 숲속을 걸으며 당신들의 고요한 시간 속에 내가 놓치는 소중한 것들을 조금씩 알아가고 싶다.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