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사랑하니까

우리가 함께 할 때_우나별

feat. 옥토버페스트 & 페리아 데 아브릴

2024.09.24 | 조회 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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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뮌헨 시내는 지금 뜨겁다.

며칠 전 독일 맥주축제로 널리 알려져 있는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거대한 영화 세트장처럼 느껴지는 뮌헨의 거리를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진정한 ‘사람 구경’은 이런 것인가? 싶다. 나는 나를 스쳐가는 이 수많은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며 매 순간 감탄한다. 저 옷을 입고 내 앞을 지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날들을 고민했을까? 나라는 사람이 말없이 눈빛으로 쌍따봉을 날리고 있는데, 그들은 알아챘을까? 모르겠다. 가끔 혼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저렇게 입고 다닐 옛날 옛적의 바바리안 마을을 상상해 본다. 여기저기 각자의 스타일로 뽐내며 거리로 나온 사람들을 바라보며 복에 겨운 눈 호강을 하는 중이다. 이럴 때 가끔 뮌헨에 살고 있음이 감사하다.

옥토버페스트가 시작되는 기간을 기점으로 뮌헨 거리에서는 바바리아 (독일어로 바이에른) 지방의 전통의상 (Lerderhosen 과 Dirndle)을 갖춰 입은 사람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게 된다.

 

레더호센과 디른들을 입은 가족  [출처: 구글] 
레더호센과 디른들을 입은 가족  [출처: 구글] 

 

지난 주말 아이들과 함께 하이킹을 하러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집을 나섰다.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중앙역으로 향하는 열차를 올라타는데 아이들의 감탄사가 끊이질 않는다. 지하철은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매일 우리가 타던 열차 칸이 퍼레이드에 사용할 대형 아치와 악기들을 준비해서 시내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혹여나 우리를 보지 못한 열차 기관사가 문을 닫아버릴까, 아이들과 나는 호들갑을 떨며 저 멀리 떨어진 열차 칸으로 달려가 간신이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지하철 안의 열기는 뜨거웠다. 저마다 다른 디자인과 색상으로 한껏 멋을 내고 차려입었다. 그들의 전통의상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신기함을 넘어선다. 세월이 머리와 얼굴에 잔뜩 내려앉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부터 아장아장 걷는 꼬마들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멋들어지게 전통의상을 잘 차려입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축제를 가진 그들이 가끔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뮌헨은 작은 시골 마을이 아니다. 독일의 3대 도시 중 하나이며, 바이에른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유명 대학뿐만 아니라 BMW를 비롯한 많은 기업체들을 보유한 도시답게 인구가 150만 명이 넘는 큰 도시이다. 게다가 다른 독일의 도시들에 비해 치안도 월등히 좋고, 경제 상황 또한 압도적으로 좋으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만족도 무척 높은 도시이기도 하다. 어쩌면 현대적인 것의 상징인 대도시에서, 전통적인 것의 상징인 레더호센과 디른들을 마치 편안한 일상복인 것 마냥 입고 다니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다.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현대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들의 향연이다. 비단 독일인 뿐만 아니고, 외국인들도 그들의 전통의상을 예쁘게 차려입고 나와 이 분위기를 함께 즐긴다.

젊은이들이 주축을 이루는 축제는 주로 지나친 음주와 각종 사건 사고들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어렵다. 그런데 옥토버페스트는 젊은이들만을 위한 맥주축제가 아님은 확실하다. 그야말로 모두의 축제인 것이다. 저녁시간이 되면 비어 텐트와 그 부근에서 술독에 빠졌다 나온 사람들을 종종 만나기도 하지만 나는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는 사람이라, 8시 이후 상황은 잘 모른다. 그래서 옥토버페스트에 대한 나의 생각들은 저녁 8시 이전에 내가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나는 스페인 세비아에서 열리는 페리아 데 아브릴( Feria de Abril)를 떠올렸다. 세비아에서 부활절 (Semana Santa)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4월의 축제인, 페리아 데 아브릴이 시작된다. 이때 세비아에 가면 수많은 스페인 사람들이 플라멩코 드레스와 전통 의상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만날 수 있다. 이곳 또한 다른 색깔, 다른 분위기로 아름답고 활기가 넘친다. 독일의 옥토버페스트랑은 좀 다른 결을 지니지만 여전히 스페인 안달루시아(Andalucia) 지역의 분위기에 심취할 수 있다.

 

플라멩코 드레스  [출처 : 구글] 
플라멩코 드레스  [출처 : 구글] 

 

이런 거대하고 화려한 축제들을 직관하고 있자면 내 뱃속 깊은 곳 저 어딘가에서부터 알 수 없는 부러움이 올라온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축제가 있었으면…(참 좋을 텐데...) 어떤 이에게는 이런 축제들이 그저 친구, 가족들과 신나게 즐기는 축제 문화로만 기억될 수 있다. 하지만 엄연히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런 지역축제들은 그들의 문화적 사회적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세비아에서도 그랬고 이곳 뮌헨에서도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현지인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전통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런 전통을 이어나간다는데 큰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독일과 연이 없는 나 같은 외국인들도 그들 문화 속으로 들어가 잠시 함께 하고 싶어진다. 스페인에서도 그랬고, 지금 이곳 뮌헨에서도 그렇다. 무척 함께 하고프다.

하지만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것 같다. 전통의상의 가격은 꽤나 비싼 편이다. 이럴 땐 우리나라처럼 전통의상을 대여해 주는 업체들이 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특별한 날 필요한 물품에 대해서 격식 차리는 걸 중시하지만 가성비 또한 챙기는 똘똘한 한국 사람들은 결혼식 드레스, 백일상, 한복, 돌상 등, 다양한 물품에 대한 대여 문화가 잘 자리 잡은 것 같은데 말이다. 아무튼 이런 대여 문화는 외국인들을 상대로도 성행 중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한복체험이다. 광화문, 서촌 등지에 가면 한복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국적을 알 수 없는 휘황찬란한 개량한복이 그 주를 이른다는 점에 있다. 뭘 잘 모르는 외국인들의 눈에는 예쁘고 신기한가 보다. 어찌 됐건 그 반짝반짝 화려한 한복을 겹겹이 껴입은 외국인들이 가끔 갓도 눌러쓰기도 한다. 그렇게 차려입고 푹푹 찌는 더위에도, 눅눅함의 끝을 볼 수 있는 장마철에도 광화문 등지를 걷고 있다.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의 마음을 요즘 들어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더 나아가 나는 우리나라에도 한복을 자주 꺼내 입고 함께 즐길 수 있는 한국적인 전통 축제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곱디고운 우리 한복을 말이다. 조상들이 이어온 전통에 나의 문화를 더해 다음 세대로 이어나가려는 노력이 어찌 보면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하고 한국의 문화를 더 매력적이게 해주는 강력한 무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나의 생각도 더해본다.

두루뭉술한 얘기 말고, 내가 느꼈던 것들을 내 삶으로 가져와 다시 생각해 보려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가족문화와 가족의 전통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이들 사이에서 한때 선풍적 인기를 얻었던 ‘겨울 왕국’의 후속, ‘올라프의 겨울 왕국 어드벤처’라는 짧은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서 가족의 크리스마스 전통이 없어 슬퍼하는 엘사와 아나를 위해 친구 올라프가 아룬델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가가호호 직접 방문하며 그들 가족의 전통을 조사한다. 그리고 쓸만한 전통들을 엘사와 아나를 위해 모으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참 사랑스러운 영화다.

아무리 성공한 삶을 산다 하더라도 특별한 날 함께 나눌 가족이 없고, 또 내 가족만의 전통이 없다면 참 메마르고 슬픈 삶이 될 것 같다. 내 가족만이 갖는 고유의 문화와 전통이 가족 구성원들을 하나로 단단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가족이라는 커뮤니티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공고히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주는 것 같다. 참 사소한 것 같지만 우리가 함께 나누는 일상들이 얼마나 우리를 튼튼하게 지탱해 주고 있는지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성탄절이 다가오는데 가족의 전통이 없어 슬퍼하는 엘사와 아나에게 가족의 전통을 만들어줄 선물들과 아이디어를 모으는 올라프의 따뜻한 마음도 너무 예쁘고 아름답지만, 영화의 OST 중, “When we are together (우리가 함께 할 때)”라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텅 빈 것 같은 마음속 찻잔에 따뜻한 위로의 차를 쪼르륵 따라 마시는 느낌이 든다. 마음이 허전할 때 이 노래를 들으면 따뜻해져 가끔 듣게 되는데.. 그 가운데 아래와 같은 가사가 맘에 닿아 한국어로 옮겨 보았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최고의 선물을 받았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 우리가 만든 가족이지.

..우리가 함께일 땐 세상 바랄 것이 없어.

..우리가 함께일 땐 매일이 축제야.

------When we are together 중에서..

 

가족의 전통이라는 것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 서로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되어 준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 영화라서 마냥 웃고만 있을 수 없었던 영화. 아이들과 아주 오래전에 봤던 영환데 최근에서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새삼 놀랍기도 하다. 결국 어떻게든 돌고 돌아 나에게 오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 오늘도 서로와의 관계를 돈독히 해줄 우리들만의 전통을 함께 만들어가면서 우리들만의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각기 다른 방면에서의 우리의 유연함이 서로의 삶 속에서 풍성하게 자라나길 바라보는 밤이다.

오늘도 두서없이 이어간 글. 끝까지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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