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삶

H군 이야기_월요

2024.06.03 | 조회 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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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H군이 오랜만에 수업에 참여했다. 오늘 하루의 보람이다. 늘 엎드려 있거나 엎드려 있지 않아도 눈을 감고 있었던 학생이다. 교회 예배 중에 "묵도하시겠습니다" 라는 사회자의 인도에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는데 딱 그 자세로 내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교사인 내 말이 아니라 누군가의 묵도 지시를 받은 것처럼 말이다. 그랬던 H군이 오늘 대답도 하고 문장도 읽었다. 할렐루야!

새 단원은 수동태 문법에 내용도 환경에 관한 것이라 단어를 잘 익혀 두어야 했다. 환경에 대한 주제가 아니면 쓰지 않는 여러 단어들이 나왔다. 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이 단어들을 가지고 오랜만에 게임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분필로 칠판을 반으로 나누고 두 팀으로 나누어 배운 단어를 돌아가며 빨리 칠판에 써 보기로 했다. 1분 동안 더 많은 단어를 쓴 팀이 이기는 것으로 하자고 했다. 아이들은 무척 신나했다. 자리에서 들썩들썩하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어느 선 이상으로는 나오지 말 것, 교재를 가지고 나오지 말 것을 주지시키고 분필을 하나씩 첫 주자에게 쥐어주고 시합을 막 시작하려는데 H군이 갑자기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학생 수가 적어서 한 명이라도 안하겠다고 하면 게임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그냥 게임은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학생들의 실망한 눈빛들이 지금도 마음에 남는다.

쉬는 시간에 교실에 혼자 남은 H군과 대화를 했다. 어떻게 대화가 시작이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수업에 참여한 것에 대해서 나의 기쁨을 표현했던 것 같다. 오늘 특별히 수업에 참여한 이유가 딱히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또 왜 게임을 안 하겠다고 했는지를 물었다. 추궁하는 분위기는 아니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나는 그저 궁금했다.

“분필이요.”

“분필?”

H군의 말에 한 여학생이 자기는 이 분필로 하겠다며 분필 홀더에 끼워져 있는 분필을 집었던 것이 떠올랐다. 작은 조각 분필을 준 다른 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다른 팀 분필도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고 게임을 막 시작하려 했었다. H군은 다른 팀에 속해 있었다. 나는 이 해프닝으로 인해 H군이 마음이 상했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분필이 왜?”

“그냥 분필은 손에 묻쟎아요.”

“그게 싫어?”

“싫어요.”

나는 수업을 마치면 손이 온통 분필 자국투성이가 되는데 손을 씻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에 일부러 분필 홀더를 사용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선생님이 H군의 예민한 성격을 알아차렸을 리가 없다. 생각해 보면 H군은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말을 안 하던 때 조차도 마스크 안쪽에 내 립스틱이 묻은 것에 대해서 한 마디 했던 적이 있다. 그에게는 그것이 작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H군의 말에 따르면 단순히 분필이 손에 묻어서 싫은 것이 문제는 아니었다. 다른 팀을 배려하지 않고 분필 홀더를 차지한 여학생이 얄밉기도 했고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교사에 대한 섭섭한 마음도 있었다. 이 모든 것에 마음이 상했고 그것을 표현하기보다는 마음을 닫아버리고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택한 것이다. H군은 오랜만에 자기 마음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그래서 반이 게임을 못하게 되고 말이지.”

“녜.”

나는 한숨을 쉬었다. 늘 한 번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예민한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 타고난 예민함은 예술적인 감성이 될 수도 있고 멋진 작품을 만들 수도 있어. 또 다른 사람을 더 잘 배려해 줄 수가 있기도 하고. 잘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지. 그런데 그 예민함에 대해 소통을 해야 해. 말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어. 내가 몰랐던 것처럼 말이야. 분필 하나 가지고 말하는 것이 유치하게 느껴지더라도 너에게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해야 해. 그래야 관계를 건강하게 할 수 있지.”

그러나 H군은 주변 관계에 대하여 미련이 없는 것 같았다. 관계를 유지하고 또 풍성히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 일인지 알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고 또 독특했다. 그 부분은 시간이 필요할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나로서는 이렇게 H군과 이야기하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하여튼 H군은 연구 대상이야. 내가 좀 더 연구를 해 볼게.”

H군은 싱긋 웃음으로 연구를 승인했다.

“H군 이야기를 글로 써도 될까? 어디에 발표할 수도 있어.”

“앗, 안돼요. 누군지 다 알게요?”

“음, 특정되지 않게 쓸 거야.”

나는 최대한 특정되지 않게 이 글을 썼다. 그래도 이 글은 제일 먼저 H군에게 보여줘야겠다. 만일 이 글이 실릴 수 있다면 H군이 게재를 허락했다는 뜻이다. 고마워요 H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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