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가을이 왔다.
이건 정신없이 살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아, 가을이 왔구나 싶어 하는 그런 시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야말로 하루 만에 섭씨 10도를 강하하며 가을이 왔다. 세차게 비가 내리고 공기가 달라졌다. 원래 가을은 ‘깊어간다’는 표현을 쓰는데 전날까지 열대야였다가 갑자기 반팔이 추워지는 날씨를 맞았다. 여름이 역대급으로 더웠기 때문에 꺼내놓은 옷은 온통 짧은 팔에 반바지뿐이었는데 새벽은 이제 긴 팔을 입지 않으면 춥다.
그전에도 가을의 조짐은 있었다. 하늘이 높고 파래지고 새벽에는 조금씩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낮은 한여름 날씨였고 밤에는 자다가도 땀을 흘리며 깨어 물을 끼얹어야 했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길었다. 오늘이 입추래, 가을의 문턱이야, 처서래, 이제 시원해져야 할 텐데, 나이 든 사람들은 이렇게 희망에 차서 이야기했지만 젊은 아이들은 어떻게든 가을의 표식을 찾아보려 애쓰는 어른들을 보며 그거 처서라이팅이에요 하고 응수했다. (가스라이팅같이 말이다.) 결국 사람들은 ‘내 평생 이렇게 더운 추석은 처음이야!’라고 탄식하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가을은 올 것이다. 더위는 물러갈 것이다. 더워 죽겠다고 하던 사람들은 몇 달 안 가서 추워 죽겠다고 투덜댈 것이다.
계절이 바뀐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것도 이렇게 뚜렷한 계절의 변화를 온 국민이 다 겪는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일이다. 한동안 안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면 그가 누구이든지 할 수 있는 인사가 있는 것이다. “아유 그 더운 여름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 인사말에 자신이 겪는 더위와 주위에서 겪은 여러 여름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참으로 공동체적인 민족이다. 벌써 사람들은 여름이 덥다고 겨울이 안 춥다는 것은 아니라는 예보를 나눈다. 올해 여름이 남아있는 여름 중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무시무시한 소리도 한다. 우리는 함께 여름을 이겨냈다. 이제 독서의 계절이니 천고마비니 하면서 함께 또 가을을 겪어갈 것이다.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에서 인생을 배우고자 했다. 파릇한 봄과 뜨거운 여름을 지나 오는 서늘한 가을은 인생의 중년을 의미한다. 결실하고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시기이고 또 겨울을 대비하고 한 해를 정리하도록 준비하는 시기이다. 더불어 더위가 가면 하자고 미루어 놓았던 일들을 마무리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추석이 지나고야 맞이하게 되는 가을 날씨에 또 이렇게 일 년이 가는구나 싶다, 중년의 때 역시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들을 보면서 막연했던 자신의 노후를 성큼 가까이하게 된다.
이제 곧 우리는 가을의 길목을 넘어 겨울을 맞고 봄을 기다릴 것이다. 우리는 함께 또 추위를 견뎌내고 성탄을 축하하고 새해를 맞을 것이다. 그리고 도대체 봄은 언제 올지 서로 물어볼 것이다. 겨울이 깊었으니 봄도 머지않다고 노래했던 푸시킨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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