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아담하고 예쁜 옥상이 있다. 빌라들이 빼곡한 동네여서 ‘뷰(view)’가 좋지는 않지만, 가까이에 높은 건물이 없어 하늘을 맘껏 볼 수 있어 좋다. 하늘과 함께 근처 빌라들의 옥상 구경도 할 수 있다.
앞집 옥상에는 화분 여러 개에 오이, 고추, 상추, 토마토 등 다양한 채소를 키운다. 봄에는 새싹들이 보이고, 여름이면 초록 잎들이 화분을 가릴 정도로 무성하다가 가을이 되면 고추며, 오이며, 가지며 색색가지 수확물을 내놓는다. 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롭다.
옥상에서 내려다볼 때마다 이 기특한 텃밭 외에도 늘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 옆 건물 옥상에 가지런히 널어놓은 빨래들이다. 옥상에 빨래가 널려 있는 것이 무슨 대수일까 생각하겠지만, 옥상이 있다고 다 빨래를 내다 너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를 보는 일마저 흔한 일이 아니다.
볕이 좋고 바람이 상쾌하게 부는 날, 빨래 널면 잘 마르겠다 싶은 날엔 어김없이 아침부터 빨래들이 널려 있다. 해가 쨍쨍 내리쬐어 오래 묵은 이불 살균소독하면 좋겠다 싶은 날엔 이불 빨래들이 속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계절이 바뀔 때엔 지난 계절의 옷들이 세탁소 옷들처럼 걸려 있다. 도대체 얼마나 부지런한 사람인거야?
언젠가 한번 옥상에 빨래를 널고 있는 주인공을 본 일이 있다. 예상했던 대로 여성이었고, 40대 정도로 보이는 분이었다. 손놀림이 야무지다. 늘 한 번에 널려 있는 빨래의 양이 많았는데, 아마도 그 여성은 대야에 여러 번 빨래를 갖고 올라왔을 것이다. 일주일에 여러 번 그렇게 빨래를 해서 옥상에 너는 그 여성의 노동을, 그 집 식구들은 얼마나 알아줄까?
대부분의 가사 노동은 ‘현상 유지’ 노동이라 하루 종일 일하지만 티가 안 난다. 노동을 했지만 보수를 얻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일 뿐만 아니라, 누구로부터 칭찬조차 받지 못한다. “청소하느라 고생했어요!” “밥하느라 수고했어요!” “빨래하느라 애썼어요, 감사해요!” 이런 멘트는 평생 들어보지 못한다.
반면 청소하지 않으면 바로 티가 난다. ‘청소도 안 했냐’고 비난받는다. 빨래가 안 되어 있으면 ‘입을 것이 없다’고, 밥이 없으면 ‘먹을 게 없다’고 핀잔을 듣는다. 주부들의 공통된 토로이다.
널려진 빨래는 그나마 노동의 결과가 눈에 보여지는 ‘티가 나는’ 노동이다. 여성들이 하는 가사 노동에는 티도 안 나는 노동이 많다. 가사 노동 중에 가장 짜증 나는 노동은 싱크대 하수구나 화장실 하수구, 베란다 하수구 등을 청소하는 일이다. 또는 ‘청소도구’를 청소해야 하는 일이라거나, 청소기 필터를 닦는 일이라거나, 샤워 커튼을 닦는다든가, 화장실 발판을 닦거나 강아지 배변 판을 닦는 일 같은 것들이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심지어 청소가 되어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 영역들이다.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오물을 닦아야 하고, 정기적으로 청소해야 하는 일이지만, 청소했다고 해서 티가 나는 노동들도 아니다.
여러모로 더 많은 에너지가 드는 노동들인데, 그런 ‘유지 관리 및 위생 노동’들은 가사 노동이라는 범주에서도 이름 붙여지지 않고, 주부 이외의 가족 구성원들에게는 없는 노동처럼 여겨진다.
가족 구성원들이 가사 노동을 분담한다고 할 때 위와 같은 노동을 함께 하거나 대신 하거나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의문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주는’ 것이 가사노동 분담의 최대치인 것처럼 생각하는 남성들이 의외로 많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주는 노동보다 설거지 할 때마다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서 걸러서 봉투에 담는 노동이 훨씬 성가시고 ‘정서적’ 에너지가 많이 드는 노동이다. 노동은 결과보다 과정인데, 가사 노동에서 그런 과정은 늘 삭제된다.
가사 노동이라고 하는 것이 이미 ‘그림자 노동’이지만, 밥 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는 것 이외에, ‘집안’을 유지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동들이 제대로 책정되지 않은 채, 주부의 전유물로만 처리되고 있는 것이 늘 유감이었다.
‘가사’라는 것은 무엇일까. ‘가사 노동’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의 노동을 말하는 것인가. 몇 시부터 몇 시까지의 노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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