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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강박’과 수납장_목담

2024.01.11 | 조회 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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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새해가 되었으니 소원을 한번 빌어 볼까나.

소원을 빌 땐 뭔가를 ‘해주세요!’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하기 위해 ‘노력할게요!’ 하고 비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해 준 적이 있다. 신에게 빌지만 참으로 인간 중심적인 관점이다. 뭔가 동기부여를 하는 느낌이 들어 좋은 방식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올해 하고 싶은 목표를 정하고, 할 수 있는 실천을 생각해 봐야겠다.

그 첫 번째는 바꾸고 싶은 나의 습관 또는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평상시 늘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있는데, 집 안을 깨끗하게 정리정돈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다. 정리 '강박'까지는 아니어도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으니 그 비슷한 것일 수도 있겠다.

고백하건대 우리 집은 좀 정신없는 편이다. 구석구석 잡다한 물건들이 많고,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 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 모습들이 환경이 바뀐다고 변하지 않는 걸 보면 뭔가 가족들의 생활습관이나 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지 않나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 집 가족 구성원들은 정리정돈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딸아이는 그 정도가 심해서 방문을 열라치면 옷가지며 물건들이 문에 걸려 열기가 어려울 정도다. 책상 위에는 온갖 물건들이 나와 있고, 물건들의 카테고리가 엄청 다채롭다. 딸아이는 ‘카오스처럼 보여도 나름의 질서가 있다’며, ‘내 물건은 손대지 말라’고 주장하지만, 손대지 않았다간 쓰레기통이 아니라 쓰레기방이 될 것 같아 할 수 없이 가끔씩 청소기를 들이댄다. 

다른 가족 구성원은 어지르는 편은 아니지만 뭔가 이런저런 물건들을 자주 갖고 온다. 책이든, 서류든, 기념품이든, 선물이든, 먹거리든 끊임없이 뭔가를 갖고 오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생겨나는 부산물들이 많다. 그나마 나는 가장 많이 정리하고 치우는 사람인데, 이 치우고 정리하는 것이 임시방편이어서 며칠만 치우기를 하지 않으면 금방 원점으로 돌아간다.  

서로들 차이점이 있다면 다른 식구들은 정리정돈 안 된 상태에 대해 관대한 반면, 나는 이로 인해 늘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저걸 정리해야 하는데, 언제 하지? 왜 이렇게 정리 정돈이 안 되는 거지? 뭐가 문제인 걸까?’ 생각하며, 호텔처럼 깔끔한 공간을 동경하다가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무력감과 자괴감에 빠지는 것이다. 

한때 주방 인테리어나 가전제품 광고에서 주방도구 하나 없는 깔끔한 부엌과 전혀 주부 차림일 수 없는 옷을 입은 주부의 모습을 보면서 ‘현실 생활을 해봐라, 그게 가능하냐?’ ‘음식을 안 해먹는 새로 나온 부엌인가 봐’ 하며 비아냥거리며 마땅치 않아 했다. 하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미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맘 한쪽에는 그렇게 심플하고 간단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솟구치는 것이었다.  

자,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이 문제를 푸는 전문가들의 진단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바다. 정리정돈의 가장 우선 순위는 잘 버리는 것. 따라서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일단 못 버리는 습관이다.

한 정리정돈 컨설턴트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무언가를 버리려고 할 때 놀라울 정도로 아이디어가 반짝인다고 한다. 빈 쿠키 통을 버리려다가 “약 상자로 쓰면 어떨까?” 생각하고, 이번에 토트백은 꼭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여기에 종이봉투를 넣어두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예쁘긴 한데 쓸 데가 없으니 이 향수병은 버리자 했다가 “아니야! 시간 날 때 전선을 사서 이 병을 근사한 조명 등으로 리폼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결국은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옷은 또 어떤가? 지인이 그랬다. 버리기 아까워 다시 넣어둔 옷에 대해 “1년 동안 안 입었다면 입을 일 없으니 버려라!”. 그렇지만 버리기 직전, 한 번 입어본 그 옷의 핏이 왜 갑자기 괜찮아 보이는 건지. 오래된 비싸게 주고 구입한 옷에 대해 ‘복고가 다시 유행하고 있으니 입어도 괜찮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내놨던 옷들을 주섬주섬 거둬들이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아서 버릴 수가 없고, 의미 있는 물건이어서 버리기 어렵고, 너무 비싸게 주고 사서 버리기가 아깝고, 정리할 시간이 없어서 못 버리고, 꼭 다 버려야 하나 해서 안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명심하자. 이러다간 거지 꼴을 못 면한다. 다시 말하건대 ‘언젠가’ 다시 쓸 일 없으니 과감히 버려야 한다. 

 

두 번째 진단은 각각의 물건들은 다 제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식구들이 물건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두는 이유는 물론 생각 없이 아무 데나 두는 습관이 일차적인 이유겠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각각의 물건들이 자기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들은 자기 자리가 있어야 한다. 오죽했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들이 제 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고 했을까나. (썰렁했다면 죄송^^;)

물건들이 있어야 할 제 자리가 있다면, 그렇게 아무 데나 놓여 지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도 가방, 안경, 핸드폰, 지갑, 손수건 등 모든 물건들이 정해 놓은 자기 자리가 없다. 부잣집 명품 보관함처럼 하나하나 박스 케이스에 있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물건 하나하나 각자의 자리가 필요하며 쓰임새에 맞는 최적의 위치에 잘 놓이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서랍이나 수납장은 일상적으로 쓰는 물건들을 잘 두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집의 경우만 해도 보관용인 물건들이 훨씬 많다. 일 년에 한 번 쓰일 물건들이거나 어쩌면 몇 년 동안 한 번도 안 쓰일 물건들, 그리고 버리긴 아깝고 쓰지는 않는 여분의 물건들로 수납장과 서랍장들은 꽉꽉 차고, 자주 사용하는 물건들은 제대로 된 자리가 없기 때문에 책상 위로, 식탁 위로, 화장대 위로 돌고 도는 것이 아닐까. 

서랍과 수납장 등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을 위해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납장에 들어차 있는 물건들을 줄여야 한다. 즉 지금 당장 쓰지 않는 물건들은 버리거나 다른 곳으로 치워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마지막. 이것은 정말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인데, 이 두 가지의 분명한 원인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리정돈이 쉽지 않은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정리정돈의 모습이 너무나 이상적이어서다. 우리 집은 호텔이 아닌데, 호텔과 같은 이상적인 공간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이 커서 정리하는 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나 할까. 생각해 보면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정리하기 적당한 날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그토록 하고 싶은 정리하는 일은 차곡차곡 준비해서 완성시키는 어떤 프로젝트가 아니라 날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채워지고 비워지는, 흘러가는 일상 속에 잠시 머무르는 일일뿐이다. 어쩌면 내가 계속 정리정돈 하고 싶었던 것은 일상이 아니고, 다른 무언가가 아니었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복잡하게 말했지만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올해의 나는 정리정돈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겠다. 그러기 위해 물건들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수납장을 비워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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