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를 지나치다 보면 가끔 이웃인 듯 이웃 아닌 이웃 같은 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나에게는 그렇게 여겨지는 할머니가 한 분 있다. 물론 이 생각은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사실 우리는 말 한마디 나눈 적이 없다. 아니, 솔직히 눈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묘하게도 우리는 서로 아는 사이다.
어떤 때는 매일, 어떤 때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나는 내 집을 나서서 골목길을 돌아나갈 때 할머니를 본다. 할머니와 나는 눈이 마주치고 서로 1~2초 정도는 얼굴을 뚫어져라 보기도 한다. 할머니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아는 체를 하고, 인사를 하고,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매번 무슨 오지랖이냐 하며 마음을 접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를 마주치고 갈 때면 늘 뒤통수에 여운이 남는다. 그렇다고 내가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있거나 그 할머니가 누구를 생각나게 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오래 보고, 자주 보고, 항상 그곳에 있어 보니 ‘정’ 같은 것이 들었다고나 할까.
할머니를 처음 봤을 때의 내 느낌은 삶의 내공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굳게 다문 입 모양이 강단 있는 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잘 생기셨다. 몸은 늙었지만, 구차하거나 초라하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허리도 비교적 꼿꼿했다. 그런데 마지막엔 늘 외로움이 드리웠다.
할머니를 수도 없이 많이 만났지만, 한 번도 말하는 것을 들어보지는 못했다. 웃지도 화나지도 않은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보며, 골목 한 쪽 자신이 늘 앉던 의자에 앉아 있곤 했다. 따뜻한 양지에 앉아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시간이 되면 퇴근하듯 가버렸다.
어느 순간 할머니가 골목길에 등장하는 시간이 줄었다. 내가 할머니를 보아 온 것도 수년이 되니 사실 그 사이에 많이 늙으셨다. 이제는 지팡이도 짚고 다니신다. 너무 오랜 시간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어디가 아프신 건 아닌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며칠 전에 밖을 나가다가 오랜만에 골목길을 나온 할머니를 봤다. 나는 괜히 반가운 마음에 할머니를 한참을 쳐다봤다. 할머니도 나를 한참이나 뚫어지게 쳐다봤다. 나는 그날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스쳐 지나면서 나는 약간의 눈웃음에 살짝 머리를 기울여 인사인 듯, 인사 아닌, 인사 같은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날 뚫어지게 쳐다보던 할머니가 드디어 한 마디를 했다.
“저기... 야쿠르트 아줌마 아녀?..”
나는 순간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에요, 할머니! 하하하”
드디어 우리는 말문을 텄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우렁찼다. 그래서 안심이 되었다. 할머니는 내가 마스크를 써서 나를 몰라봤을 것이다. 나를 알아봤다면 어쩌면 말을 안 건넸을지도 모른다. 마스크 덕분에 우리는 말문을 튼 사이가 됐다. 다음에 만나면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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