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의 사생활

아들과 단둘이 스페인 여행 2_자날이모

2024.01.17 | 조회 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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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여행 이튿날 본격적인 첫 여행 일정은 바르셀로나를 둘러보기에 앞서 대형버스를 타고 몬세라트 수도원과 시체스를 둘러보는 투어였습니다.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가이드 투어는 꼭 해야 할 것 같은데 여행 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급하게 투어 예약을 잡으려다 보니 인기 있는 투어들은 선택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컨디션에 좀 무리가 가더라도 몬세라트 투어부터 갔다 오는 것으로 일정을 잡을 수밖에 없었죠. 

아침 일찍 따뜻하게 배를 채울 수 있게 해주어 고마웠던 Frankfurt Pau Claris
아침 일찍 따뜻하게 배를 채울 수 있게 해주어 고마웠던 Frankfurt Pau Claris

집합 시간이 아침 이른 시간이라 호텔 조식을 먹기에는 시간이 빠듯했어요. 대신 집결지가 호텔에서 도보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어서 새벽에 문을 여는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가기로 했습니다. 아들이 열심히 찾아보더니 집결지 근처에 리뷰가 좋은 가게가 있대요. 새벽 공기를 맡으며 가보니 작지만 맛있는 빵 냄새가 나는 가게였습니다. 저는 크로아상 샌드위치와 카푸치노를 시켰고 아들은 핫도그를 시켰는데 꽤 맛있었어요. 스페인 가시면 크로아상에 햄이나 하몽 그리고 치즈를 넣어서 납작하게 눌러 구워주는 샌드위치를 꼭 한번 드셔보세요. 많은 가이드분들이 한국인들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샌드위치라고 추천 하시더라구요. 

 

우리가 탄 버스는 59인승이었는데 시간 맞춰 집결지로 가니 어디서 다 모인 사람들인지 그 아침에 버스가 꽉 차더라구요. 와이파이도 되고 핸드폰 충전도 되는 깔끔하고 큰 버스라서 이동하는 내내 편안했는데 다만 몬세라트 수도원까지 올라가는 길이 제법 구불구불해서 멀미를 심하게 하시는 분들은 버스 투어 하시려면 미리 멀미약을 준비해 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가이드님은 젊고! 잘생긴! 남자분이셨는데 친절하시고 여행에 필요한 정보도 많이 주셔서 좋았어요. 사진도 잘 찍어주시구요. 몬세라트는 가우디의 작품세계와 관련이 깊은 곳이어서 가우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가보셔야 할 곳인데 개별적으로 대중교통으로 가기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니까 저처럼 시간을 아끼고 싶으신 분들은 버스투어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덥거나 추운 날씨엔 더욱 강추고요.

저는 자유여행을 가면 꼭 여행 첫날 가이드 투어를 하거든요. 가이드분들이 투어 전부터 투어 후까지 그 지역에 관한 날씨나 옷차림, 꼭 알아야 할 매너, 맛집같은 알찬 정보를 많이 주시기 때문에 시간 대비 얻어 가는 것이 많은 여행을 할 수 있더라구요. 비상상황이 생기거나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문의드리면 도와주시기도 하구요. 낯선 곳에 뭔가 든든한 지인이 생긴 듯한 느낌이라서 저처럼 프로여행러가 아닌 50대 이상 여성분들이 자유여행을 할 땐 특히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여행 팁인 것 같아요. 

그리고 스페인도 유럽의 다른 나라들처럼 11월부터는 우기에 접어들어요. 그래서 그런지 그날 아침 일기예보에는 비 소식이 없었는데 몬세라트에서는 잠깐 보슬비를 만났어요. 11월에서 3월 사이에 스페인을 여행하시는 분들은 숙소 밖으로 나가실 때 꼭 작고 가벼운 우산 하나씩 챙겨서 다니세요. 여행 와서 아프면 서럽잖아요.

 

몬세라트에 도착하니 흐리고 안개가 많이 껴 있어서 독특한 톱니 모양을 한 기암괴석의 웅장한 자태를 선명하게 감상할 순 없었지만 안개와 구름을 뚫고 울룩불룩 솟아있는 봉우리들을 보고 있자니 뭔가 꿈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 모습을 보고 아들은 신비스러운 느낌이 나서 좋다고 했는데 원래 막내가 흐리고 비 오는 날을 좋아해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어요.  

 

수도원 입구에서 광장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왼쪽에 산 조르디 조각상이 있어요. 산 조르디는 바르셀로나가 속한 까탈루냐 지방의 수호성인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바르셀로나에서 유명한 관광지 어디를 가도 반드시 그분을 상징하는 조각상이나 그림을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몬세라트의 산 조르디 조각상이 특별한 이유는 걸으면서 보면 조각상의 눈이 나를 따라오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조각 기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인데요 이 조각상을 만든 요셉 수비라츠라는 예술가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수난의 파사드를 만든 분이랍니다. 가이드 투어를 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방문하시는 분들 중에 이 조각상을 못 보고 가시는 분들이 많은데 여러분들은 절대 놓치지 마세요.

 

수도원 광장에서 가이드님의 설명을 마저 들은 후 제법 긴 자유시간이 주어졌어요. 우리는 가이드님을 통해 검은 성모상 투어 티켓을 미리 예매했기 때문에 검은 성모상부터 만나러 성당 입구로 향했습니다. 비수기에 흐린 날씨라 그런지 성당 안이 너무 붐비진 않아서 기다리는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검은 성모상 앞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기도를 잠시라도 드릴 수 있었어요. 손바닥 위에 올려진 구슬에 손을 얹고 여유 있게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었구요. 사진으로 볼 때는 뭔가 칙칙하게 보였는데 실제로 보니 조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인자한 인상에 얼굴이 매끄럽고 광채가 나는 것이 정말 소원을 잘 들어주실 것 같더라구요. 건강과 치유의 소원을 특별히 잘 들어주신다고 해서 기도도 열심히 했지만 나오는 길에 예쁜 촛불도 몇 개 사서 켜두고 왔어요. 우리 나이쯤 되면 인생에 있어 다른 무엇보다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잖아요.

 

성모님을 만나고 나오니 길이 성당 입구가 있는 광장으로 다시 연결되더군요. 일요일이라 미사 시간 때문에 성당 안으로 못 들어갈 뻔 했는데 마침 광장에 계시던 가이드님이 입구 경비원분들께 잠깐 양해를 구해주셔서 얼른 들어가서 구경하고 나왔어요. 작년에 이탈리아에 갔을 때 성당 구경을 지겹게 많이 했는데도 유럽의 성당들은 들어갈 때마다 새로이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포인트들이 있더라구요. 막내도 그런지 구석구석 사진도 많이 찍고 뒷목이 휠 정도로 올려다 보기도 하더군요. 그 모습을 보는데 어릴 때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데리고 가면 열심히 구경하던 모습이 겹쳐 보여서 기분이 묘했어요. 성당 구경도 좋았지만 그걸 구경하는 아들 모습을 감상하는 것도 즐거웠네요. 

 

성당 밖으로 나오니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님이 기념사진을 찍어주셨어요. 어릴 때는 사진 찍을 때마다 온갖 포즈로 즐거움을 주던 막내가 사춘기가 지나면서부터는 입을 굳게 다물고 경직된 포즈로만 사진을 찍으려 해서 저는 그게 늘 아쉬웠거든요.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만나는 가이드님들마다 사진이 잘 나오는 포즈를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코치해 주시니까 막내가 민망해도 잘 따라 하더라구요. 덕분에 이번 여행에서 아들과 기억에 남을 사진을 많이 남겼답니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우리 막내가 어디로 여행을 가든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고 멋진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봅니다.   

 

수도원 입구에는 카페테리아와 기념품 숍들이 있는데 검은 성모상 투어 티켓을 사면 꼬까빵 시식과 특산품 와인 4종류를 시음할 수 있는 티켓을 줍니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쿠키로 바꿔준다고 해서 저는 쿠키를 받았는데 우리 부부를 닮아 체질상 술을 잘 못 마시는 막내가 그날은 호기심이 나는지 용감하게 리꼴이라는 특산주를 받아 마시더라구요. 저도 꼽사리 껴서 찔끔 입에 대봤는데 복분자주처럼 달달한 맛이 났어요. 물론, 도수가 높은 술이라 우리 둘 다 금세 귀까지 빨개졌지만 마침 날이 추워서 홍조가 빨리 가라앉아 다행이었지요.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새빨개진 막내의 귀여운 얼굴이 떠올라 웃음이 나네요.  

 

시간이 맞지 않아 소문이 자자한 소년 성가대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감상할 수 없는 게 무척 아쉬웠는데 대신 우리는 가이드님이 권해주신 대로 산 미구엘 전망대까지 가벼운 트래킹을 했어요. 안개가 조금이라도 걷힌다 싶으면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느라 천천히 올라갔다 와서 그런지 걷는 게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요. 완만하게 포장된 길을 오르내리며 바라본 풍경은 신비롭고 장엄하더라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네요. 

 

트래킹 후에는 전망이 기가 막힌 뷔페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맛이 그렇게 좋진 않았어요. 근데 밥을 먹으면서 보니까 식당에 같이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아서 이상하다 했거든요? 나중에 보니까 다들 시체스에서 점심 식사를 하시더라구요. 우리는 몬세라트에서 시간이 워낙 넉넉하기도 했고 시체스에 가서 점심을 먹으면 관광할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미리 먹었던 건데 나중에 투어가 다 끝난 후에 깨달았어요. 성수기가 아니라서 시체스에서 점심 식사를 했어도 시간이 충분했을 것이라는 사실을요. 역시 먼저 앞서간 여행 선배들의 조언을 무시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많은 블로거들이 몬세라트에는 먹을 게 별로 없고 시체스에 맛집이 많다고 했는데 우리는 왜 그 말을 듣지 않았을까요? 웬만하면 시체스에 가서 점심을 드세요. 유명한 휴양지라 예쁘긴 하지만 가이드님의 추천 포토 스팟에서 빠짐없이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녀도 다 돌아보는데 그렇게 시간이 많이 필요하진 않아요. 

 

몬세라트에서 시체스로 가는 길에 드디어 해가 나기 시작했어요. 덕분에 시체스에서는 사진 찍기가 좋았어요.

시체스는 영화제로도 유명하고 전지현 이민호가 나왔던 <푸른 바다의 전설>이라는 드라마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죠. 인공해변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어서 날씨가 따뜻할 때는 물놀이하기도 좋다더라구요. 골목골목 작고 예쁜 상점들도 많아서 가볍게 쇼핑하기도 좋구요. 여름에 가시는 분들은 1박 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막내가 패션에 너무 관심이 없어서 편한 옷만 입으니 저는 여행 가기 전부터 스페인에 가면 잘 꼬셔서 옷을 몇 벌 사 입히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시체스에서 시간이 많이 남았을 때 바로 이때다 하면서 아들에게 옷 딱 한 벌만 사자고 애원했더랍니다. 그러나 결국 제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네요. 시간이 아깝다 돈이 아깝다 맘에 드는 게 없다 요리조리 핑계를 대면서 피하는 통에 다 큰 놈을 끌어다 강제로 입힐 수도 없고 해서 속상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대신 보세 가게 같은 곳에서 제 걸로 얇은 점퍼랑 털 모자를 하나씩 샀어요. 재킷은 37유로 모자는 18유로였는데 다행히 눈탱이 맞은 것 같지는 않아요. 

 

길었던 투어가 파하고 호텔로 돌아오니 벌써 저녁 6시가 다 됐더라구요. 잠깐 누워 쉬다가 너무 피곤하지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님이 소개해 준 크리스마스 라이트닝 쇼가 궁금해서 까사 바트요 앞으로 갔습니다. 역시나 사람이 많았어요. 러닝타임이 짦아서 좀 아쉬웠지만 멋있긴 하더라구요.

 

나간 김에 저녁도 먹을까 했지만 몬세라트에서 먹은 점심이 소화가 덜 됐는지 속도 더부룩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그냥 스페인에 가면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는 오렌지 환타와 레몬 환타나 사서 들어가자면서 큰 슈퍼마켓에 들렀답니다. 그런데 저는 막내가 슈퍼마켓 구경을 그렇게 좋아한다는 걸 처음 알았네요. 나갈 생각을 안 하더라구요. 그렇다고 뭘 사는 건 아닌데 어찌나 꼼꼼하게 둘러보는지 새삼 내가 아들을 너무 몰랐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막내의 슈퍼 투어는 그 후로도 방문하는 도시마다 빠지지 않고 계속되었지요.

여러분~~~ 스페인 가시면 오렌지 환타 꼭 드셔보세요. 이탈리아 오렌지 환타도 맛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스페인 게 조금 더 맛있더라구요. 그리고 레몬 환타도 한국에선 맛볼 수 없는 거니까 꼭 드셔보시구요. 아들은 레몬 환타가 더 취향에 맞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스페인에 있는 동안 오렌지 환타를 일일 일 캔 했어요. 올 때 두 캔씩 가방에 넣어오기도 했구요. 지금도 말하면서 또 마시고 싶네요.  

그날 밤 우리는 한국에서 들고 온 컵라면으로 늦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얼마나 꿀맛이던지요! 스페인 날씨가 따뜻한 편이라고 해도 초겨울이다 보니 새벽이나 늦은 밤에는 아무래도 으슬으슬한 기분이 느껴지더군요. 그러다 보니 뜨끈한 국물이 너무 땡겨서 우리 둘 다 아으~ 시원하다를 연발하며 맛있게 먹었네요. 그리고 라면 국물에 누룽지도 조금 부셔 넣어 말아 먹으니 든든해서 잠도 푹 잘 잤어요. 

우리의 둘째 날 여행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말재주가 없어서 다 전하지 못한 내용은 사진으로 대신할게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 주에는 가우디에서 시작해서 가우디로 끝나는 3일차 여행 이야기 들려드릴게요.

수요일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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