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닿는 길

해피트리 해방일지_목담

2024.01.18 | 조회 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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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집 안에 해피트리 한 그루가 있다. 10여 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올 때 아주버님이 사주신 나무였다. 집 안에 나무 한 그루는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든다. 그래서 해피트리인가?^^ 다행히도 해피 트리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자라 주었다.

지난해 초 어느 날이었다. 해피트리 줄기와 이파리에서 끈끈한 액체 같은 것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을 발견했다. 끈끈한 액체가 생기는 것은 벌레가 생겼다는 뜻이라던데? 아니나 다를까. 솜깍지벌레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그런 이름의 벌레가 있는지도 몰랐다. 검은 점처럼 보이는 이 벌레들을 아마 나는 그 이전에도 봤을 터인데, 벌레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식물을 키워본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다들 “쯧쯧, 그거 골치 아픈데...” 하면서도 심하지 않으면 생길 때마다 닦아주고 관리하라고 주문한다. 살충제가 식물에게 좋지도 않을뿐더러 약을 뿌려도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느 한 날, 나는 시간을 내어 물수건으로 솜깍지벌레를 닦아 냈다. 생각보다 성가신 일이었다. 해피트리가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듯했다. 그리고 한동안은 괜찮은 듯 보였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면서 해피트리에 또 끈끈한 액체 방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해피트리가 아파서 견디느라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보다 솜깍지벌레들은 끈질겼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스며드는 곰팡이처럼, 하나씩 하나씩 있는 듯 없는 듯 시치미 떼고 붙어 있었다. 나는 매의 눈으로 나뭇잎 하나하나를 스캔하며, 솜깍지벌레들을 찾아냈다. 그러고는 가차 없이 ‘응징’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솜깍지벌레가 뭔 죄인가 싶기도 하다. 죄를 따질라치면 해피트리를 잘 보살피지 못한 내 탓이 제일 큰 데 말이다.

이런 과정이 서너 번 더 있은 후 나는 깨달았다. 이렇게 일일이 닦아내고 잡아내고 하는 것으로는 솜깍지벌레들을 박멸할 수가 없다는 것을! 좀 더 근본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인터넷을 찬찬히 살펴보니 천연살충제 ‘난황유’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난황유는 식용유와 달걀노른자를 섞어 유화시킨 친환경 농약인데, 식물의 표면에 코팅을 입혀 벌레들의 피해도 막고 식물도 보호한다는 것이다. 계란 노른자와 기름으로 만들기가 번거로우니 대신 마요네즈를 사용하는 팁도 친절히 안내해 주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물 100ml에 마요네즈 0.5그램을 잘 섞어 5~7일 간격으로 골고루 뿌려주면 된다.

나는 당장 ‘마요네즈 물’을 만들어 분무기로 뿌려주었다. 솜깍지벌레가 정말 소탕되기를 바라면서 한 잎 한 잎 정성스럽게 뿌렸다. 며칠 후 해피트리의 솜깍지벌레는 박멸된 듯 보였다. 이 정도면 괜찮을 것이라고 나는 안심했다. 그로부터 한 동안 해피트리에 대한 관심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게 웬일일까. 나은 듯 보였던 해피트리에 솜깍지벌레가 많이 퍼져 있었다. 해피트리는 너무 많이 아프다고 신음하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나도 그냥 포기할까 생각이 되었다. 나는 비상의 결단을 내렸다. 말하자면 수술 처방 같은 것인데, 남은 이파리와 가지들을 모조리 떼 버리는 방법이었다. 이번에도 안 되면 정말 이별을 준비해야 할 판이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러니 제발 잘 이겨내 줘...” 

해피트리가 이겨내 줄까 반신반의하면서 기다려봤다. 그런데 며칠 후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게 보였다. 신기했다. 해피트리가 기특했다. ‘그동안 솜깍지벌레들의 잦은 괴롭힘으로 체력이 바닥났을 텐데, 끝까지 힘내주었구나! 정말 고맙다! 이제 절대로 널 포기하지 않을게.’ 난 그렇게 약속했다. 

그런데, 새싹이 날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새싹이 여기저기에서 동시에 많이 돋았기에 곧 초록 초록한 나무가 될 거라 믿었다. 그런데 어린 새싹들이 자라면서 동시에 솜깍지벌레 알들도 같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아, 이를 어쩌나... 정말 안되는 거구나! 정말 지긋지긋하다. 솜깍지!!!

조만간 솜깍지벌레들은 해피트리를 점령할 것이다. 해피트리는 무력해지겠지. 해피트리야, 미안해. 이제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ㅠㅠ

나는 무기력해져서 그냥 해피트리를 방치하다시피 했다. 물론 물은 주었지만, 잎을 닦아주거나 난황유를 뿌려주는 행위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관심을 두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알아차리게 됐다. 해피트리에서 솜깍지벌레가 퍼져나가는 속도가 많이 더뎌졌다는 것을! 예전 같으면 벌써 잎들이 떨어지고, 가지마다 끈끈이 액과 솜깍지벌레들로 가득했을 것인데, 생각보다 많이 번져 있지는 않았고, 해피트리는 아직 건재했다. 

그렇구나! 해피트리가 그동안 솜깍지벌레와 여러 번 투쟁하면서 소위 ‘맷집’이 세진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해피트리를 방치하는 동안 해피트리는 혼자서 열심히 솜깍지벌레들과 투쟁하면서 때로는 공존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면서 한 번에 무너져 약속을 저버리다니. 나는 해피트리에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날 나는 다시 ‘마요네즈 물’을 준비했다. 솜깍지벌레들이 너무 많이 있는 나뭇가지들은 제거하고, 나머지는 정성스럽게 천연 살충제를 뿌렸다. 한 번에 소탕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접었다. 어쩌면 이 나무가 살아 있는 동안은 계속 이 작업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며칠이 지났다. 나는 다시 꼼꼼히 천연 살충제를 뿌려 주었다. 이미 솜깍지벌레들은 소탕된 듯 보였지만, 나는 이와 같은 작업을 이후로도 수차례 더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해피트리는 잘 버텨주었고, 함께 힘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다섯 번을 넘게 한 후, 또다시 생긴다면 그때 또 다시 뿌려줄게 하고 마무리를 했다. 사실 이제는 솜깍지벌레가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지금, 아직 솜깍지벌레는 보이지 않는다. 해피트리는 아주 오랜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10년 동안 우리 집에서 잘 자라준 해피트리가 새삼 고마웠다.

‘해피트리야, 새해에는 이름처럼 행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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