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의 사생활

아들과 단둘이 스페인 여행 3_자날이모

2024.01.24 | 조회 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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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이번 스페인 여행 일정 총 10박 중 4박을 바르셀로나에서 지내기로 한 것은 순전히 가우디의 숨결을 여유 있게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 관광은 가우디에서 시작해 가우디로 끝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거예요. 스페인이라는 나라나 건축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안토니 가우디라는 이름은 한 번 쯤 들어봤을 정도로 그가 남긴 족적은 그야말로 거대하죠. 그래서 가우디 투어를 선택할 때도 가장 신중할 수밖에 없었죠.

저는 원래 건축기행을 특별히 좋아해서 혹시 가이드분들 중에 건축을 전공한 분이 계시면 그분의 투어는 꼭 참여해 봅니다. 건축물의 외형만 감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지역 역사와 문화와 예술 사조 같은 것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재미있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이번 여행의 투어들을 예약했다면 건축 전공 가이드분들을 주로 선택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는 막내가 스케줄을 짜기로 했으니까 저는 최소한의 의견만 내고 그냥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번 여행의 가이드 투어는 모두 '마이리얼트립'을 통해서 예약했는데 가우디 투어를 진행하는 가이드분들이 제법 많이 계셔서 아들이 무척 고심하더군요. 제가 워낙 가우디 투어를 기대하고 있는 걸 알기에 더 부담을 느꼈겠죠? 며칠을 고민하더니 그중에서 가장 투어 시간이 길면서도 드물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 투어까지 포함되어 있는 걸 골랐더군요. 

콘데스 데 바르셀로나 호텔 조식
콘데스 데 바르셀로나 호텔 조식

우리는 아침 일찍 호텔 조식을 먹고 카사 바트요 근처에 있는 <elFornet>이라는 프랜차이즈 카페로 향했어요.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함께 투어를 할 여행자분들과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을 가졌는데 좋더라구요.

그라시아 거리와 카페 elFornet
그라시아 거리와 카페 elFornet

자신을 에두라 불러달라고 하신 가이드분은 독특하게도 우리나라 말을 잘하시는 스페인 분이셨어요. 제가 자유여행을 좋아해서 이곳저곳 다니며 현지 가이드 투어를 많이 들어본 편인데 이번처럼 진정한 의미에서의 현지인이 진행하는 투어는 처음이었어요. 부인이 한국 분이시더라구요. 한국에서도 몇 년 사셨구요. 너무나 제 취향인 아재 개그 센스까지 겸비한 유쾌한 분이셨는데 역사를 전공하셔서 그런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설명이 알차고 재미있었어요. 또 스페인 사람이 생각하는 가우디는 어떤 사람인지, 스페인 사람들에게 그의 건축물은 어떤 의미인지도 엿들을 수 있어서 정말 흥미로웠구요. 그리고 부인이 한국 분이시라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현지인 맛집들도 알려주셔서 더 좋았죠.

카사 예오 모레라
카사 예오 모레라

카사 바트요가 서 있는 거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맞은편 인도에서 투어가 시작됐는데요 카사 바트요에 대한 설명을 듣기에 앞서 가우디의 스승이자 바르셀로나가 낳은 위대한 건축가 중 한 명인 몬타네르의 작품 '카사 예오 모레라'라는 건축물에 대한 설명을 먼저 들었어요. 까사 바트요의 명성에 가려 현재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꽃무늬 장식이 화려한 아름다운 건물이었죠. 

카사 아마트예르
카사 아마트예르

그리고 카사 바트요와 나란히 서 있는 초콜릿 회사 갑부의 집 '카사 아마트예르' 또한 존재감이 뚜렷한 건물이었는데요, 바트요가 바로 그 옆 건물을 사들인 다음 가우디에게 옆집보다 더 멋진 집으로 만들어달라고 해서 지금의 '카사 바트요'가 탄생했다는 뒷얘기가 전해져올만했습니다.

카사 바트요
카사 바트요

그리고 그런 집주인 바트요의 경쟁심을 충분히 만족시키고도 남았을 법한 카사 바트요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우리는 길을 건넜습니다. 가이드님으로부터 가우디의 인생 역정에 대해 듣고 그의 삶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과 카톨릭과 고향 까딸루냐를 상징하는 장식들로 즐비한 정면 파사드에 대해 재미있는 설명을 들으니 시간가는 줄을 모르겠더라구요.

연속 사흘 내내 오며가며 늘 보던 건물이지만 그래도 질리지 않는 마력을 지닌 그 건물은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독특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카사 바트요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이 건물을 한마디로 꿈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라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을 것 같아요. 아들과 저는 바르셀로나를 떠나던 날 아침에 카사 바트요 내부 관람을 추가로 했는데 용의 집이라고 불릴 정도로 독특한 외관 못지 않게 바닷속을 여행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내부도 사진이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창의적이고 조화로웠어요. 정말 꿈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답니다.

참! 가이드님 설명에 따르면 '카사'가 스페인어로 집이라는 뜻이고 카사 바트요는 '바트요의 집'이라는 뜻이라는군요.

카사 아마트예르 내부
카사 아마트예르 내부

카사 밀라로 가기 전 가이드를 따라 카사 아마트예르 건물 내부로 잠깐 들어가 1층을 구경하고 설명도 들었는데요 초콜릿 가게와 카페 그리고 선물가게가 있었지만 그날은 쇼핑할 시간이 없어서 설명만 듣고 그냥 나와야 했어요. 대신 우리는 그다음날 다시 가서 미리 찜해둔 알폰스 무하의 그림이 그려진 예쁜 틴케이스 초콜릿들을 선물용으로 사 왔지요. 너무 예뻐서 받는 분들이 좋아하시더라구요. 혹시 바르셀로나 여행 가서 선물 고민 하시는 분들 계신다면 아마트예르 초콜릿도 추천드려요. 

카사 밀라의 낮과 밤
카사 밀라의 낮과 밤

카사 밀라는 카사 바트요에 비해 외관이 화려하진 않지만 독창성과 예술성에 있어서는 가우디의 여느 작품에 뒤지지 않는 건물이었습니다. 채석장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이 건물은 외관을 모두 돌로 뒤덮어 만들었는데 마치 파도가 치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서 놀라움을 자아냈죠. 가우디가 몬세라트에서 받은 영감이 건물 곳곳에 반영되었다고 해요. 실제로 전날 몬세라트를 다녀온 뒤라 그런지 카사 밀라를 돌아보는 내내 오래전 바닷속에 잠겨있던 바위들이 지각변동으로 솟아오르면서 지금의 올록볼록한 몬세라트 산이 되었다는 얘기가 떠올라 감흥이 남달랐어요.

이 건물을 짓는 동안 여러 가지 송사가 끊이지 않았고 건물주였던 밀라와도 시공에 대한 의견 차이로 심각한 불화를 겪었던 탓이었는지 이 건물이 완성된 후 밀라는 파산을 하고 가우디는 더 이상 부자들의 집을 짓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슬픈 이야기지만 그래도 어찌 되었든 이 건물은 후세에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지요. 예를 들면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의 투구 모양을 카사 밀라의 굴뚝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막내와 저는 카사 밀라의 기둥을 만지며 정말 멋지지 않냐는 의미를 담은 눈빛을 서로 주고받았습니다. 다음에 또 바르셀로나에 갈 수 있다면 그땐 꼭 내부 관람도 해보자고 했어요.

백여 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내로라하던 부자들이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그라시아 거리의 집들을 앞다투어 사들이고 유명 건축가들에게 경쟁적으로 리모델링을 의뢰한 덕분에 우리가 지금의 아름답고도 독특한 건축물들이 즐비한 거리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지요?   

카사 밀러 근처 츄러스 맛집
카사 밀러 근처 츄러스 맛집

가이드님이 택시를 타고 구엘공원으로 가기 전 스페인의 국민 간식 추로스를 사주셨어요. 이탈리아에 가면 1일 1젤라또 해야 하듯이 스페인에 가면 1일 1추로스 해야 한다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다 보니 이날 먹은 추로스가 마지막 추로스가 되었네요. 아무튼 에두 가이드님이 알려주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그 추로스 집은 찐 맛집이었답니다. 

구엘 공원
구엘 공원

카사 바트요가 꿈속 세계 같았다면 구엘 공원은 동화와 환상의 세계 같았달까요? 원래 계획했던 대로 주택단지로서의 분양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덕분에 공원으로 재탄생되어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되었으니 그 운명이 참 얄궃긴 해도 우리에겐 고마운 일이다 싶더라구요.

공원 자체가 워낙 예쁘기도 했지만 언덕 위에 위치해 있어서 공원 안 곳곳에는 아름다운 바르셀로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좋은 포토 스폿이 많았어요. 하지만 관광객이 워낙 많아서 우리끼리 갔다면 사진 찍기가 어려울 뻔했지요. 우리는 에두 가이드님의 기가 막힌 전략 덕분에 웬만한 포토 스폿에서 다 무사히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요. 에두 짱!

공원 투어가 끝나고 다시 택시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가이드님 추천 맛집으로 향했는데 그 집이 알고 보니 몇 년 전 우리나라에 스페인 여행 붐을 일으킨 <꽃보다 할배>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맛집이라고 하더군요. 들어가면서 보니 이미 가게 밖으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어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근처 맛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근처 맛집

우리는 택시를 함께 탔던 모녀 팀과 넷이 한 테이블에 앉아 여러 가지 종류의 음식을 시켜서 나눠먹었답니다. 여행지에 가면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보고 싶은데 다 먹으면 너무 배가 부르니까 한두 가지만 먹어야 할 때 속상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이지만 같이 앉아 갖가지 음식을 조금씩 나눠먹으니 좋더라구요. 특히 막내가 맛집 투어에 진심인 편인데 그 집에서 맛있다고 추천받은 메뉴를 다 맛볼 수 있어서 그런지 무척 좋아하는 눈치였어요. 그걸 보는 저도 행복했구요. 그리고 늘 내향적이라고만 생각했던 아들이 낯선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매너 있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다 컸구나 싶고 안심이 됐달까요. 여행을 하면서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한 성장한 아들의 모습을 알아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더라구요. 

그런데 어떡하죠? 오늘도 얘기가 너무 길었군요. 가우디 투어의 하이라이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방문기는 아무래도 다음 주로 미뤄야 할 것 같아요. 우리 다음 주 수요일에 또 만나요! 요즘 감기가 극성이니 건강 잘 챙기시구요~ 

* '이상한 요일들(240days)'은 건강한 삶을 짓고 나누는 커뮤니티 꼼(comme)안에 있는 글 쓰는 작은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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