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어지는 삶

이탈리아 여행 이야기(5)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_월요

2024.03.11 | 조회 273 |
0
|

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자석은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샀다. 미술적인 안목이나 실력이 있었다면, 베니스와 어쩌면 그렇게 어울릴 수가 싶은 이 박물관에 대하여 멋진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참 아쉽다. 페기 구겐하임이 누군지를 미술관을 다녀오고 난 뒤에야 찾아보았으니. 정말 대단한 여성이었다. ( 나치를 두려워하지 않은 여성- 페기 구겐하임 참조)

미술관 페기가 살던 저택을 개조한 것이다. 작은 입구로 들어가면 베니스에서는 보기 드문 큰 나무가 서 있는 마당이 있다. 몇 채의 크지 않은 건물이 이어져 있는 모양인데 건물 안 역시 좁은 복도와 계단이 다소 크고 다소 작은 방을 연결하고 있다. 살던 구조 그대로다. 자연광을 잘 활용한 작고 따뜻한 느낌의 전시실-아마도 침실이었을까-에 유리 공예를 전시해 놓았는가 하면 식당에는 식탁이 그대로 놓여 있고 손님을 맞는 거실로 쓰였을 법한 넓은 방에는 낙서인가 싶은 커다란 추상 개념 미술 작품들이 걸려있다. 미술관의 컬렉션은 페기가 놀라운 안목으로 수집한 현대 미술품들이다. 미술관 한쪽은 넓은 운하에 맞닿아 있는데 운하 쪽으로 난 발코니 역시 야외 조각 전시장 역할을 하면서 작품의 배경으로 멋진 경치를 선물한다. 처음에는 미술관 후문인줄만 알았는데 운하에 막혀 외부와 연결되지 않는 사적인 멋진 공간이었다.

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크지는 않은 전시장에 베니스 관광 인파와 현장 체험 학습을 온 시무룩한 표정의 고등학생들까지 정말 인파가 가득했다. 특히 보행기를 짚고 다니시는 노인분들이 눈에 띄었다. 그림을 잘 아는 딸이야 이런 그림을 실물로 본다며 감격해서 돌아다녔지만 우리 부부는 피카소구나… 칸딘스키구나….잭슨 폴록이란 말이지… 음 몬드리안이란 말이지… 하며 고등학교 미술시간에나 배웠을 작가 이름을 기억 너머에서 소환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문외한인 부부도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앞에서는 한동안 머물러 있었다. 다소 큰 방 한쪽에 걸려 있던 “빛의 제국”이라는 그림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름만 보고 여성 화가인 줄로만 알았으니 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그저 작품부터 접한 셈이다. 작품은 따뜻하고 고요했으며 동화의 한 장면같이 신비롭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렵지 않아 좋았다. 딸의 설명으로는 하늘은 뭉게구름이 떠 있는 한낮인데 아래쪽은 한밤중이라며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장면을 그리는 초현실주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여름날이 되면, 아직 하늘은 밝은데 나무와 건물들이 실루엣만 보이는 시간들이 존재하는데…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어스름한 그 시간,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건물의 불이 켜지고 사물의 그림자가 또렷해지는 시간들을 참 좋아하는데… 내게는 초현실주의 그림이 아니라 하루 중 신비로운 그 찰나의 시간을 그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베니스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베니스

별채에서는 뒤샹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서 변기를 전시하고 <샘>이라고 이름 붙인 화가라고만 알고 있었던 뒤샹의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특별히 자기 작품들을 한곳에 모아 보여주기 위해 직접 제작한 <여행용 가방>은 제작 과정까지 비디오로 상영해 주었다. 이게 무엇인지 묻는 무식한 관람객(물론 나다)도 친절한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떻게 베니스와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있지!” 이렇게 감탄했지만, 사실 잘 어울린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현대 거장의 작품들을 가장 어울리게 전시한 이 작은 미술관은 베니스 그 자체였다. 반나절의 관람으로는 그 매력을 다 알 수 없는 곳임은 물론이다.

냉장고에서 자석을 떼어 손에 들어본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초현실적인 시간이 아니라 꿈과도 같았던 베니스 여행 그리고 운하 옆에 있던 미술관의 기억이 소환되어 온다.

여행을 마친 후에는 모든 사람에게 그렇듯이 여간해서 다시 들여다보지 않게 되는 수많은 사진들이 남았고 일기장에 끄적인 글들이 남았다. 그리고 르네 마그리트 그림의 자석이 냉장고에 붙여져 있다.

 

* '이상한 요일들(240days)'은 건강한 삶을 짓고 나누는 커뮤니티 꼼(comme)안에 있는 글 쓰는 작은 공동체입니다.

카페: https://cafe.naver.com/societyofcomme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comme_verse/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ommejirak

 

 

* '이상한 요일들(240days)'은 자율 구독료로 운영됩니다. 혹 저희를 응원하시고픈 분이 계신다면 아래 '댓글 보러가기'를 통해 본문링크에 접속하셔서 '커피 보내기'를 클릭해 주시면 된답니다. 보내주신 구독료는 뉴스레터를 운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감사드립니다. 

 

* '이상한 요일들'은 어떤 형태의 제안도 열려 있습니다. 관련 문의는 reboot.keem20@gmail.com 통해 문의 주세요.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이상한 요일들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자주 묻는 질문 서비스 소개서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