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보복 관광이라는 말이 실감 나게 로마는 사람들이 넘쳐나게 많았다. 바티칸 뮤지엄은 여행사에 투어를 잡아 오후에 간신히 볼 수 있었지만 그전에 바티칸 성당을 보는 것은 포기할 정도의 인파였다. 그 큰 바티칸 광장이 줄로 뺑뺑 둘러져 있었고 4시간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단다. 바티칸 성당은 예전에 들어간 경험을 회상하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성당은 못 갔지만 바티칸 뮤지엄 투어는 무척 재미있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명작들은 새것처럼 복원이 되어 선명한 색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지난번에는 복원 중이라고 볼 수 없었던 <천지창조>도 드디어 관람할 수 있었다. <천지창조>를 보기 위해서는 먼저 박물관 정원에서 사진을 보며 가이드의 자세하고 맛깔난 설명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시스티나 성당 경내로 들어가야 하고, 고개를 젖히고 좀 전에 들었던 설명을 기억하며 맞춰보아야 한다, 그리고 홀에 가득찬 고개를 젖히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끝없는 감탄, 또 감탄, 하루의 감동으로는 충분한 양이었다.
한국에서 잘 볼 수 없는 우동면 같이 두꺼운 파스타로 저녁을 먹고 밤까지도 여전한 인파 때문에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숙소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다음날 버릇대로 일찍 깨고 말았다. 나는 원래 가족 중에서 가장 일찍 일어나 새벽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곤 하는데 어디 블로그에서 보니까 새벽에 로마 투어를 했는데 사람도 없고 야경도 너무 멋지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바티칸 바로 옆에 숙소를 잡았는데 이렇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주섬주섬 나갈 차비를 했다.
조심스럽게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기는데 잠귀 밝은 남편이 깼다. 이역만리에서 혼자 나가겠다고 설치는 아내를 못본체할 수 없었는지 할 수 없이 투덜거리며 나와 함께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혼자 갈 수 있으니 자라고 계속 권했지만 미안한 맘 반, 든든한 맘 반이었다.
새벽 다섯시의 로마는 어둠에 잠겨 있었고 길은 텅 비어 있었다. 그래도 바티칸 경비병들이 있는 곳은 불이 동그랗게 밝혀져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앞에 나타난 성 베드로 성당. 정말 멋진 야경이었다.
성 베드로 성당에서 큰 길을 걸어 천사의 성 야경을 보러 갔다. 가는 길 양측 가게들은 아직 문을 열기 전이었는데 건물 문 앞마다 노숙자들이 띄엄띄엄 앉아있었다. 옷을 겹쳐 입고 큰 가방이나 담요 텐트 같은 것들을 가지고 조용히 웅크리고 잠을 청하는 사람들. 이렇게 노숙자들이 많다고? 싶을 정도로 많았다. 이 광경을 보고 남편이 한 마디 했다. 아니, 혼자 왔으면 무서워서 어쩔 뻔 했어, 그러게요. 혼자 나가게 두지 않아 고맙습니다.
천사의 성 야경도 정말 근사했다. 야경을 좀 더 잘 보기 위해 천사의 성 앞에 있는 아름다운 산탄젤로 다리를 건너는데… 무언가가 돌다리를 가로질러 쪼르르 움직였다. 으아아아악! 너무 놀라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쥐였다! 아니 쥐들이었다! 돌다리 양측에 물이 빠지는 구멍들이 뚫려 있는데 여여나믄 머리의 쥐들이 쪼르르륵 쪼르르륵 그 구멍으로 나왔다가 들어왔다가 하고 있었다. 쥐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남편은 햄스터도 쥐라며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이다. 쥐가 지나간 자리를 최대한 피하고 닿는 면적을 줄이자며 까치발을 들고 다리를 건너 후다다닥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찾아보니 역시 바티칸과 노숙자들은 관계가 있었다. 노숙인들은 집 대신에 바티칸 부근 어딘가에 저마다 ‘보금자리’를 하나씩 갖고 있다고 한다. 바티칸이 노숙자들을 따뜻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기사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전 세계 가톨릭의 본산인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이 수많은 노숙인의 보금자리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의지할 가족도, 집도 없는 이들은 낮에는 어디론가 흩어져 구걸하고 밤에는 성 베드로 광장 한쪽에서 잠을 청한다…
[친절한 쿡기자] 바티칸 주교 “노숙인이 씻을 곳이 없답니다”… 교황 “광장에 샤워장 만들어주세요”-국민일보
국경 없는 사랑…바티칸 노숙인들의 '동반자' 박야고보 수녀 | 연합뉴스
쥐는… 이태리 어디에든 있었을 것이다 특히 새벽 시간에 산탄젤로 다리 위를 잘 돌아다닌다. 이것도 기사를 찾아보니 쉽게 비슷한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모든 '쥐'는 로마로 통하나…콜로세움 쥐떼 골머리 - 아시아경제
로마 여행을 한다면 새벽 시간을 놓치지 말기를! 새벽에는 한적함과 함께 화려한 야경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낮에는 보지 못했던 광경을 볼 수 있다. 노숙자들도 쥐도 어쩌면 바티칸의 인간적인 모습이기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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