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사바 전망대에서 마주한 장관에 대한 감흥이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나사리 궁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우리는 또 다른 장관과 마주했습니다. 바로 만년설이 덮인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었는데요, 며칠 동안 흐리고 비가 와서 잘 보이지 않았다는데 우리가 간 날은 해가 화창하게 떠서 눈 덮인 은백색 산줄기가 선명하게 보이더군요. 가이드님이 삼대가 덕을 쌓아야지만 이 정도 선명한 뷰를 감상할 수 있다며 너스레를 떠시더라구요. 손이 저절로 모아졌어요. 뭔가 영험한 것을 본 것 같아서 소원을 빌고 싶더라구요. '800년 전 이 성을 지키던 나사리 왕조 사람들도 매일 아침 지금 내가 보는 것과 똑같은 광경을 봤겠다'라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들은 매일 아침 저 아름다운 산맥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우리는 알함브라 궁전 모든 곳을 통틀어 가장 핵심 장소라 할 수 있는 나사리 궁을 구경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가이드님이 그라나다의 뜻이 '석류'라고 알려주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알함브라 궁전 곳곳에서 석류나무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어요.
나사리 궁으로 입장하기 전 여권 검사가 있었는데요 알함브라를 구경하시려면 반드시 여권 원본을 지참하셔야 해요. 복사본을 가지고 가시면 입장하실 수 없어요. 투어하는 동안 총 3번 검사하더라구요. 여권의 바코드를 찍어서 티켓 예매 여부를 체크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실물 여권 가져가시는 것 절대 잊으시면 안 돼요.
그리고 개별 투어가 아니라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셔도 알함브라 궁전 입장권은 온라인으로 미리 예매하셔야 해요. 특히 나사리 궁은 하루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서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고 계시다면 다른 무엇보다 나사리 궁 입장권이 포함된 알함브라 궁전 입장권부터 예매하시길 추천드려요. 성수기에 가시는 분들은 최소한 한 달 전에는 예매하셔야 원하는 시간대에 안전하게 입장하실 수 있다고 합니다. 만약, 원하는 날짜의 티켓이 매진되었다면 그라나다 내에 있는 여러 명소들의 입장권과 버스 5회 탑승권이 포함된 '그라나다 카드'를 구매해서 입장권을 예약하는 옵션도 고려해 볼 만합니다. 비싸긴 하지만 최소 1박 이상 하시는 분들은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단, 그라나다 카드에 배정된 티켓도 한정되어 있으니 어떤 경우라도 빨리 예매하시는 것이 좋아요.
티켓 구매는 가이드님께 부탁해도 되지만 여권번호 같은 개인정보를 드려야 하니까 할 수 있으면 직접 예매하는 것이 좋겠더라구요. 홈페이지에서 영어 안내에 따라 티켓 구매하는 것이 힘든 분들은 클룩이나 마이리얼트립 같은 우리나라 여행 플랫폼 사이트에서 약간의 수수료를 물고 편하게 예매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나사리 궁의 여러 건물들 중 가장 먼저 입장한 곳은 술탄의 행정 집무실이었다는 맥수아르 궁입니다. 약간 어두운 방안으로 들어서니 벽과 천장에 아름답게 장식된 기하학적 무늬와 아랍어 캘리그래피 문양들이 먼저 눈에 띄더군요. 8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정교한 장식들이었죠. 오랫동안 도굴꾼들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도 하고 기독교 왕들에 의해 여러 번 개조되는 과정에서 덧붙여진 기독교적인 장식들이 원본 장식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 같지는 않아서 많이 안타까웠어요. 훼손되기 전의 모습은 어땠을지 정말 궁금하더군요.
맥수아르궁 끝에는 들어서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오는 기도의 방이 있었어요. 화려한 벽면 아래쪽에 정교하게 꾸며진 여러개의 창이 있었는데 그 창을 통해 내려다본 알바이신 지구의 모습은 알카사바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모습과는 또 다른 감동이 있었습니다. 마치 돌로 짠 레이스가 드리워진 것 같은 아치형 창틀 장식과 창문 밖 풍경의 조화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냥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싶더라구요.
도시에 살며 늘 네모 반듯한 창문들만 바라보고 살던 저는 알함브라 궁전을 도는 동안 아름다운 모양의 창문 틀이 주는 미적 효과에 대해 새삼 놀라게 되었습니다. 현란하게 장식된 창틀 안으로 아름다운 바깥 풍경들이 들어오니 그 풍경들이 마치 고가의 그림처럼 보였어요. 수백 년 동안 일조량과 계절에 따라 창문 밖 풍경이 바뀔 때마다 그 창문들 덕분에 궁전 곳곳은 그림을 새로 바꾼 듯한 인테리어 효과가 났겠지요.
알함브라 궁전의 하일라이트는 나사리 궁이고 나사리 궁의 하일라이트는 코마레스 궁이라고 하는데요 코마레스 궁 입구에는 빈틈없이 장식된 아름다운 파사드와 함께 큰 수반처럼 생긴 고급스러운 대리석 분수가 먼저 방문자들을 반기고 있었습니다.
알함브라 내부에는 정말 많은 형태의 분수와 연못들이 있었는데 단순히 종교적 의미나 미적 용도로만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하네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물을 끌어와 연못을 만들고 그 주변에 정원을 조성한 것은 건축물 내부의 온도를 조절하고 통풍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었고, 건물 사이사이에 설치한 수많은 분수들의 용도는 물이 고이지 않고 계속 흐르게 함으로써 궁 안의 모든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사시사철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거예요. 가이드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이슬람 건축문화의 유구한 역사와 위대성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더군요.
술탄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대사들이 대기하는 장소로 쓰였다는 황금의 방을 지나 복도를 따라 조금 걷다 보니 그 유명한 아라야네스 중정이 나타났어요. 그날 날씨가 좋아서 그랬는지 시원하게 뻗은 직사각형 연못 위로 파란 하늘과 화려한 궁이 대칭되어 비치는 모습이 너무 선명해서 마치 중정 한가운데 거대한 거울을 깔아놓은 것처럼 보이더군요.
이 중정의 모습을 보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유명한 건축물이 있죠? 인도의 타지마할인데요, 타지마할이 바로 이 아라야네스 중정을 모티브로 해서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라고 합니다.
연못 좌우로는 물이 썩는 것을 막아주는 두 개의 분수가 있고 연못 양옆으로는 아랍어로 '천국의 나무'라는 뜻을 가진 아라야네스가 연못을 따라 길게 심어져 있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의 정원수로 천국의 나무보다 더 적합한 나무가 있을까 싶었어요.
코마레스 궁은 나사르 왕조 제7대 술탄 유세프 1세 때 건설되기 시작해 유세프 1세의 아들 무하마드 5세 때 완성된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가이드님의 설명에 따르면 유세프 1세는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에 필적할 만한 성군이었다고 해요. 아라야네스 중정 연못에 아름답게 비치는 건물 중 코마레스탑 아래쪽에 위치한 대사의 방은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를 표현한 듯한 천장의 나무 장식과 아라베스크 양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벽면 장식으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교하게 치장되어 있는 방이었어요. 빛이 들어오는 위치까지 계산해 대사들이 술탄을 접견할 때 최대한의 위엄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방을 둘러보니 이 방에 들어와 처음 술탄을 마주했을 때 대사들이 느꼈을 위압감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되더군요.
대사의 방 안팎으로는 가이드님이 설명에 20분을 할애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기하학적 비밀과 종교적 상징들이 숨겨져있었습니다. 전문적인 설명을 곁들여 감상하다 보니 그 방의 신비로운 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공학을 전공하는 막내가 특히나 흥미를 가지고 들을 만한 내용이 많아서 더 좋았네요.
자리를 옮겨 사자의 궁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124개의 대리석 기둥들과 12개의 사자 조각상이 떠받들고 있는 중앙 분수대가 자리하고 있는 중정이 나타났어요. 사자의 궁 중정은 오아시스의 풍경을 형상화한 곳이라고 하는데요 사자의 궁은 술탄의 후궁들이 거처하던 할렘으로 술탄 이외의 어떤 남성도 출입할 수 없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사자의 샘이라고도 불리는 중앙 분수는 한 시간마다 돌아가며 각기 다른 사자 동상의 입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도록 설계되어 물시계로도 사용되었다고 해요. 현재는 12마리 사자상의 모든 입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우리가 본 분수대는 복사품이고 원래 분수대는 박물관에 있다더군요.
나사리 궁 안에 있는 세 개의 궁 중 사자의 궁이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고 하더니 여러 개의 방을 둘러보는 동안 막내와 저는 이슬람 건축양식의 환상적인 디테일들을 감상하느라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어요. 서로 감상평을 나눌 여유도 없었죠.
특히 그중에서도 아반세하라스의 방과 두 자매의 방의 천장 장식은 가히 압권이었습니다. 종유석이 가득한 동굴 모양 같기도 하고 벌집 모양 같기도 한 모카라베 양식의 8개의 꼭짓점을 가진 별 모양 돔 주변으로 16개의 창이 뚫려있고 그 창들을 통해 교차해서 들어오는 햇빛이 3차원적 천장 장식에 극적인 효과를 더해주고 있었어요. 누구라도 그 천장들을 올려다보는 순간에는 '와!'하고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을 거예요. 저도 그랬구요.
나사리 궁을 빠져나와 카를로스 5세 궁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중정들과 분수들도 시간만 많다면 하나 하나 다 천천히 음미해 보고 싶을 정도로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투어 시간이 5시간이나 되어도 볼 것이 워낙 많으니 그 정도는 그냥 훑고 지나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죠.
투어 처음 시작할 때 알함브라 궁전 입구에서 흘깃 보고 지나가면서 '관공서같이 생긴 웅장한 건물이 있네' 라고 생각했던 건물이 있었는데 그 건물이 바로 카를로스 5세 궁이더군요. 가이드님이 스페인의 대표적인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 중 하나라고 하시면서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시니까 아까는 보지 못했던 디테일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카를로스 5세가 그라나다로 신혼여행을 왔을 때 알함브라 궁전을 보고 한눈에 반해 이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궁을 짓기로 결심했다고 해요. 황제의 권위도 세우면서 가톨릭 문화가 이슬람문화보다 더 우월하다는 걸 과시할 수 있는 건축물을 세우고 싶었던 카를로스 5세는 미켈란젤로의 제자 페드로 마추카에게 설계를 맡겼는데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던 공사가 건축가의 죽음, 잦은 전쟁, 자금난 등의 이유로 지연과 중단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아들 펠리페 2세 때 다시 공사가 재개되어 2층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왕궁 1층(도리아식)과 2층(이오니아식)의 건축 양식이 마치 다른 건물인 것처럼 뚜렷하게 다른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그마저도 순탄치 않아서 결국 다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로 오랜 세월 방치되었다가 착공된 지 무려 400년 만인 1930년에야 비로소 완공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네모 반듯한 외관과는 달리 궁 내부는 원형구조라서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요, 가이드님이 중앙에 서서 손뼉을 치면 건물 전체에 소리가 울려 퍼진다고 해서 해봤더니 정말 소리가 잘 울려 퍼지더라구요. 공연장으로 사용하기 참 좋겠다 싶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실제로 매년 6월 이곳에서 그라나다 국제 무용 음악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하더군요. 한여름밤 알함브라 궁전에서 열리는 국제적인 공연이라니!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제 버킷리스트가 저절로 하나 더 늘어나더군요.
그런데 여러분 눈에는 이 건물이 어떻게 보이세요? 카를로스 5세 궁전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웅장하고 멋진 건물임에 틀림없지만 솔직히 제 눈에는 알함브라 궁전 전체의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갑툭튀 건물처럼 보였어요. 조화로움을 깨는 그 건물의 이질적인 외형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예전 경복궁 앞에 무척 권위적인 모습으로 서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갑자기 생각나면서 괜스레 맘이 불편했네요.
카를로스 5세 궁까지 구경하고 나니 제법 시간이 많이 지났더라구요. 다리도 아프고 배도 살짝 고팠어요. 잠시 휴식시간이 주어져서 막내와 저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자판기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나눠먹으며 간단히 고픈 배를 달랬네요. 여러분, 알함브라 궁전에 가실 때에는 간단한 간식 정도는 챙겨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사리 궁 근처에는 자판기 말고는 요기할 만한 곳이 딱히 없더라구요.
카를로스 5세 궁에서 헤네랄리페까지 가는 길에 기념품 가게들은 많이 있었어요. 주로 알함브라 궁전에 입장하지 못한 관광객들을 겨냥한 사설 가게들이어서 별로 추천할 만한 가게는 없었지만요. 대신 알함브라 궁전 내부에 있는 공식 기념품점은 꼭 들러보시길 추천드려요. 스페인을 여행하는 동안 가는 곳마다 기념품점을 다 들렀었는데 저는 그중에서 카사바트요와 알함브라 궁전 기념품점이 가장 좋았거든요. 디자인이 예쁘고 기념이 될만한 물건들이 많아서 고르느라 힘들었는데 그곳에서 산 막내 두상에 딱 어울리는 비니와 아라베스크 문양의 쿠션 커버는 지금도 볼 때마다 잘 사왔다는 생각을 한답니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왕가의 여름 별궁 헤네랄리페로 향하는 길에 바라본 시에라 네바다 산맥은 더 크고 웅장해 보였어요. 몇 시간째 걸으며 구경하느라 슬슬 지쳐가고 있었는데 멋진 풍경들을 보니 다시 정신이 번쩍 들더라구요.
왕의 정원과 왕비의 정원으로 가기 전 가이드님이 사진을 여러 장 찍어주셨는데 인생 샷 건질 수 있는 곳이 많았어요. 가끔 힘들다고 헤네랄리페를 건너뛰는 분들이 계시던데 예쁜 사진 많이 찍고 싶으신 분들은 꼭 가보셔야 할 곳인 것 같아요.
혹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기타 연주곡 들어보신 적 있나요? 왕의 정원에 들어가자마자 가이드님이 그 곡을 들려주셨어요. 우리 세대에게는 매우 익숙한 곡인데 막내에게 물어보니 어디선가 들어보긴 했는데 제목은 잘 몰랐다고 하더군요.
스페인을 대표하는 기타 연주자이자 작곡가 타레가가 알함브라 궁전으로 여행을 왔다가 왕의 정원 연못에 떨어지는 물소리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 바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고 합니다. 타레가가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얘기도 하시면서 잠시 눈을 감고 음악과 물소리를 함께 들어보라고 하셔서 눈을 감았는데 트레몰로 주법으로 연주하는 기타 소리가 진짜 연못 위로 떨어지는 물소리처럼 들려서 신기했어요.
애잔한 선율 때문인지 타레가가 유부녀였던 콘차 부인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했다는 설이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타레가의 진짜 의도가 무엇이었든 제 귀에는 지상 낙원 같은 알함브라 궁전을 두고 떠나야만 했던 무어인들의 절절한 심정을 표현한 곡으로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이 곡을 듣는 동안 슬픈 감상에 젖게 되더라구요. 나사리 왕조의 마지막 술탄 보합딜이 전쟁에서 패하고 쫓겨나면서 '그라나다를 뺏긴 것보다 알함브라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슬프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들은 뒤라 더 그랬나봐요. 물론 막내의 무덤덤한 표정을 보고 금방 정신을 차렸지만요.
아들과 저는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경험했던 가이드 투어들 중 알함브라 궁전 투어가 가장 좋았다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어요. 아름다운 궁전의 자태를 구경한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현대사회에서 서양 언론에 의해 끊임없이 폄훼되고 있는 이슬람 문화에 대해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느끼는 바가 많았거든요. 여행을 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내가 가진 편견과 고정관념들이 깨지는 경험을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헤네랄리페를 끝으로 짧지 않았던 투어가 끝나고 가이드님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눈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파라도르 데 그라나다>로 향했어요. 휴식시간에 가이드님이 '점심 식사는 어디서 할 거냐'고 물어보셔서 아직 못 정했다고 하니 이 호텔의 레스토랑을 추천해 주셨거든요. 예약도 도와주시구요. 호텔 레스토랑이지만 가격이 많이 비싸지 않고 미쉐린 1스타를 받은 유명한 식당이라서 예약하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비수기라서 그런지 운이 좋게도 한자리가 남아있더라구요.
'파라도르'란 스페인의 국영호텔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하는데요 <파라도르 데 그라나다>는 특이하게도 알함브라 궁전 내부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호텔의 투숙객들에게는 알함브라 궁전이 문을 열기 전 이른 아침이나 문을 닫고 난 다음 늦은 저녁에 궁전 내부를 산책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고 하더군요.
너무나도 배가 고팠던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점심 코스 요리 하나와 파스타와 안심 스테이크까지 총 세 가지 메뉴를 주문해버렸답니다. '많이 시켰는데 입맛에 안맞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음식 간도 딱 좋고 메뉴 하나하나가 다 정성스러워서 아들과 저는 먹는 동안 서로 엄지 척을 여러 번 했네요. 식전빵과 맥주와 샹그리아까지 다 포함해 총 결제금액이 95.9 유로밖에 나오지 않아서 가성비도 좋다고 느꼈답니다.
마지막까지 좋은 기억만 안겨준 알함브라 궁전 여행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엔 그라나다 야경투어 이야기로 돌아오려구요. 여러분~우리 수요일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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