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삶

시금치 한 단_월요

2024.03.18 | 조회 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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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시금치 한 단을 샀다.

미국 아이들이 시금치를 싫어하여 뽀빠이가 나왔다는 말도 있던데, 나도 어릴 때는 시금치를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유일하게 채소 중에 오이만 먹는 남동생 때문에 어머니는 김밥에 시금치 대신 오이를 넣어 말아주셔서 시금치는 나물로만 만났다. 우리 집에서 그리 인기가 없던 반찬이었다. 새댁이 되어 시금치 된장국을 성공적으로 끓여보기도 했지만(재료만 있으면 실패하기 쉽지 않다^^) 시금치는 그닥 나와 친한 식재료는 아니었다.

명절에 시댁에 가면 시금치를 그야말로 한 포대는 씻어야 했는데 흙이 나온다고 찬물에 몇 번을 헹궈야 했다. (고무장갑 안에 끼라고 면장갑을 챙겨주신 시어머니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나쁜 며느리일 것이다) 이제 내가 집에서 음식을 해가게 되자 가장 편한 부분 중 하나가 시금치를 너무 찬물에 씻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혼자 요리하다 보면 찬물에 씻다가 손을 좀 녹을 여유도 부담 없이 가질 수 있고… 어쨌든 그 시금치는 간장과 파 마늘에 버무려져 삼색 나물 중 하나인 시금치 나물이 되기도 하고 잡채에 들어가 색을 내기도 했다.

시금치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은 한국이 아니라 서양 요리에서였다. 미국 마트에 가면 시금치가 큰 봉지로 하나씩 있어서 누가 이걸 사나 싶었다. 아마 샐러드로 먹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포트럭 파티에 가져온 파이의 속 재료가 시금치였다. 너무 맛이 있었다! 독일 할머니가 바자회에 내놓은 키쉬 안에 세 종류의 치즈와 함께 버무려져 들어있는 시금치는 또 어떻고! 그야말로 시금치의 재발견이었다. 리소토 안의 시금치, 시금치 양송이 수프, 샌드위치 사이의 야채로 끼워진 시금치…. 시금치가 이런 맛이었구나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시금치는 치즈나 생크림과 잘 어울려서 서양식 만두인 라비올리라든지 기타 서양 요리의 속 재료로 많이 쓰이는 매력적인 재료였다. 집에 오븐이 없어서 이러한 서양식 요리를 하기는 쉽지 않지만 시금치의 맛에 눈을 뜨게 되니 여러 요리에 응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무얼 먹을까 하다가 시금치 한 단을 정성스레 씻었다. 뿌리를 딴 후 흙이 나오지 않게 여러 번 헹군다. 일본에서 원전 사고가 있었을 때 방사능 비가 내린다고 난리가 났던 적이 있었다. 쑥갓이나 시금치와 같이 땅 위에서 넓게 펼쳐 자라는 잎채소는 방사능 물질이 축적될 확률이 더 높다는 소식에 한동안 이러한 야채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방사능을 걱정해서 안 먹기에는 시금치의 영양가와 효능이 크고 또 방사능 물질이 겉에 묻더라도 흐르는 물에 씻으면 어느 정도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시든 잎을 떼고 자잘한 애들과 큰 애들을 구분해서 큰 줄기들은 소금물에 데쳐 맛을 보았다. 달다. 겨울철 시금치는 단 맛이 더 올라온다고 한다. 바닷가 시금치가 더 달다고 섬초나 포항초 시금치로 팔기도 한다. 냉장고에서 나온 시금치 나물만 먹었을 때는 이렇게 막 데친 시금치가 달디단 줄은 모르고 있었다.

파와 당근을 볶다가 어린 시금치를 섞어 볶음밥을 만든다 아주 든든하고 기분 좋은 한 끼다. 그래도 남은 시금치는 잡채를 만들 때 쓰려고 물기를 빼서 통에 담았다. 시금치 덕분에 예정에 없던 잡채 만들기다.^^ 지난 추석에는 시금치 한 단에 8천 원을 해서 잡채에 부추로 대체했었는데 영 흡족하지 않았다. 잡채에 고기는 없어도 시금치는 없으면 섭섭하다.

 며칠 후 주말에 당근과 양파를 볶고 시금치를 데쳐서 고기가 안 들어간 잡채를 올렸다. 식구가 적고 집밥을 많이 안 먹다 보니 시금치 한 단으로 한 주 든든하다.

최근 시금치가 식욕을 억제해 체중 감량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고 한다. 건강에 좋은 시금치 많이 먹어야겠다. 시금치에 대한 수다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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