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를 잘 쓰는데, 왜 뭔가 허전할까요?
내가 결정한 게 아닌 결과물은 아무리 매끄러워도 오래 남지 않습니다
AI에게 글을 맡기고, 기획을 맡기고, 이미지를 맡깁니다. 결과물은 빠르게 나옵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상하게 허전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저도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AI와 함께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감탄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데?"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속도도 빠르고, 구조도 깔끔하고, 문장도 매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글을 다시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건 내가 결정한 게 아니구나.
오늘 이 글은, 그 허전함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롱블랙에서 읽은 한 디자이너의 인터뷰에서 출발해, AI 시대에 우리가 진짜로 성장시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저의 생각으로 이어가 보겠습니다.
이상인 디자이너의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16년째 미국 테크 씬에서 활약하고 있는 디자이너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애저Azure 로고 리브랜딩을 이끌었고, 구글에서 유튜브 광고 디자인 시스템을 총괄했으며, 지금은 미국 틱톡 본사의 디자인 리더를 맡고 있습니다. 저서 『AI는 일하고 인간은 성장한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읽다 보니, 그의 생각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와 많이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디자인이라는 분야에서 출발한 이야기였지만, AI와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AI 시대, 진짜 질문은 무엇일까요?
대체 여부가 아니라 도달 범위를 묻는 사람이 방향을 바꿉니다
이상인 디자이너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인공지능이 디자이너를 대체할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인공지능을 통해 디자이너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AI는 일하고 인간은 성장한다』, p26)
질문의 방향이 달랐습니다. 우리는 보통 묻습니다. AI가 내 일을 빼앗을까. 내 자리가 사라질까. 그런데 그는 달리 물었습니다. AI를 통해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같은 기술을 앞에 두고도, 질문이 다르면 방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빼앗길까"라는 질문은 방어적입니다. 움츠러들게 만듭니다. 반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확장의 문을 엽니다. 기술을 위협이 아니라 지렛대로 보는 시선입니다.
흥미로운 점이 또 있었습니다. 빅테크 한가운데서 일해온 이 디자이너도 처음에는 불안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롱블랙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3년 전, 저는 AI를 보고 '별것 없다'고 했었어요. 솔직히 AI가 이렇게 발전할 줄도 몰랐습니다. 급변하는 기술을 보면서, 불안했어요."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을 거친 디자이너도 불안했다는 것. 이 솔직함이 오히려 신뢰가 되었습니다. 불안하지 않은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안함을 인정하고 직접 부딪혀본 사람의 말이었으니까요.
그는 또 이렇게 내다봤습니다. "Made by AI(인공지능이 만든 것)"보다 "Directed by Human(사람이 감독한 것)"이 더 주목받는 시대가 온다고. AI가 몇 초 만에 쏟아낸 이미지는 비주얼 공해가 될 수 있지만, 사람이 의도를 담아 만든 AI 결과물은 브랜드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AI가 만든 것은 넘쳐나지만, 인간이 감독한 것만 브랜드가 된다."
그는 AI를 잘 디렉팅하려면 "왜(Why)"를 파고드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기술이 산업을 이끌어가는 현재와 미래 세대에서의 디자인은 '무엇What'보다 '어떻게How'에 가깝고, '왜Why'가 중요하다." (같은 책, p25) 이 대목에서 저는 완전히 동의했습니다. 왜 이 책을 쓰는가. 왜 이 브랜드를 만드는가. 왜 이 콘텐츠가 필요한가. 이 질문 없이 만들어진 결과물은, 아무리 정교해도 오래 남지 않습니다.

저는 그래서 원칙을 세웠습니다
판단은 내가, 확장은 AI가 — 이것이 제가 AI와 일하는 방식입니다
이상인 디자이너의 말을 읽으면서, 저 자신의 경험이 겹쳐 보였습니다.
저는 AI와 함께 책을 쓰고, 뉴스레터를 만들고, 교육 콘텐츠를 설계합니다. 매일 AI와 대화합니다. 처음에는 결과물에 감탄했습니다. AI가 만들어주는 문장은 매끄러웠고, 구조는 논리적이었고, 속도는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 완성된 글을 다시 읽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분명 나의 이름으로 나가는 글인데, 나의 결단이 담기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문장은 깔끔했지만,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가 흐릿해져 있었습니다.
이상인 디자이너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메리프라이스라는 금융 서비스 앱을 디자인할 때, 화려한 스포츠카 같은 디자인을 만들어 갔다가 돌아온 피드백은 냉혹했습니다. 고객이 원한 것은 안전한 SUV였던 것입니다. "왜"를 모르고 시작하면 아무리 멋진 결과물도 헛수고가 된다는 걸 몸으로 배운 이야기였습니다.
저도 같은 깨달음을 얻은 뒤, 원칙을 세웠습니다.
판단은 내가. 확장은 AI가.
무엇을 쓸 것인지, 어떤 메시지를 남길 것인지, 어디서 멈출 것인지는 제가 결정합니다. AI는 그 결정을 더 넓고, 더 깊고, 더 빠르게 실현해주는 파트너입니다. 방향을 정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고, 그 방향 위에서 달리는 것은 AI의 몫입니다.
AI는 문장을 만듭니다. 인간은 결단을 담습니다.
이상인 디자이너도 비슷한 실패를 통해 배웠다고 했습니다. 그는 생성형 AI가 뜨자 글쓰기 AI 추천 앱을 만들려 했지만, 접었습니다. 챗GPT보다 나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간과 돈은 썼지만 배움은 남았어요. 회사에 돌아가 실패 경험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실패한 사이드 프로젝트가 본업에 도움을 준 것입니다. 중요한 건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쌓인 판단력이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서경대학교에서 AI퍼스널브랜딩 비학위과정 주임교수로 'AI IP STUDIO'라는 과정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IP 자산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3월 말 한 학기 과정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과정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AI와 부딪히고, 실패하고, 다시 설계하면서 쌓인 판단이 교육 과정이 된 것입니다. 화려한 결과물이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왜 이 과정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먼저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커리큘럼이 되었습니다.
"AI는 문장을 만든다. 인간은 결단을 담는다."
요즘 계속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그만큼 중요하기에 또 말씀드립니다. 저는 일부러 AI 없이 생각하는 시간을 만듭니다. 독서를 하고, 바로 질문을 던지지 않고, 혼자 사색합니다. AI가 대신 사고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함께 사고를 확장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상인 디자이너의 표현을 빌리자면, 번뜩이는 창의성보다 문제에 반응하는 "센스"를 기르는 시간입니다.

AI와 일할 땐, IQA하라
ntention · Question · Approving —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는 세 가지 실천입니다
AI가 일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인간은 감독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만들지, 어디까지 밀어붙일지, 어디서 멈출지를 정하는 사람.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입니다.
이상인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 잡고 하루 이틀만 하는 건 해프닝에 불과합니다." 센스는 순간의 번뜩임이 아니라 꾸준함에서 나옵니다.
저는 그동안 AI와 일하는 원칙을 "대질원"이라고 불러왔습니다. 대화하고, 질문하라, 원하는 것을. 수업에서도, 뉴스레터에서도 여러 번 말씀드렸던 표현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이 이름이 늘 마음에 충분히 들지는 않았습니다. 말하고 싶은 것의 절반만 담긴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딱 정리합니다.
AI와 일할 땐, IQA하라.
I — Intention. 의도를 먼저 세우세요.
AI에게 무엇을 시키기 전에, 노트 한 장에 "왜 이걸 만드는가"를 세 줄로 적어보세요. 5분이면 됩니다. 이 세 줄이 AI의 결과물 품격을 완전히 바꿉니다. 왜를 모르는 채 시작하면, 결과물이 아무리 멋져도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이상인 디자이너가 스포츠카 대신 SUV를 만들어야 했던 것처럼, 의도 없이 시작하면 방향 자체가 틀어집니다.
Q — Question. 본질을 묻는 시간을 확보하세요.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꼭 만들어 보시길 권합니다. 많다고 느끼실 수 있지만, AI에게 맡기면서 아낀 시간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그냥 멍하니 앉아 있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AI에게 바로 답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스스로 질문하는 근육이 약해지면, 감독이 아니라 전달자가 됩니다. 이상인 디자이너의 말처럼,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설득이고, 자기 안에서 길어 올린 질문입니다.
A — Approving. 최종 승인은 반드시 자신 하세요.
AI가 만든 글, 기획, 이미지를 받았을 때, 그대로 내보내지 마세요. "이건 내가 승인할 수 있는가?"라고 한 번만 물어보세요. 빼야 할 문장을 빼고, 남겨야 할 메시지를 남기는 것. 그 승인의 순간에 여러분의 서명이 새겨집니다. 이상인 디자이너는 불안할 때마다 관심 가는 변화를 글로, 사이드 프로젝트로 남겼다고 했습니다. 기록으로 남기는 것 자체가, 자기 이름으로 승인하는 훈련입니다.
AI가 일할 때, 우리가 성장시켜야 할 것은 속도가 아닙니다. 기술도 아닙니다. Intention, Question, Approving. 이 세 가지입니다.

당신은 AI를 쓰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AI를 감독하는 사람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앞으로 당신의 브랜드를 결정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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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는 문장을 만든다. 인간은 결단을 담는다."

동아일보에서 '고대 사상가, AI를 만나다'라는 칼럼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한비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고대 사상가들의 눈으로 AI 시대를 바라보는 이야기를 매주 목요일 동아일보에서 이어갑니다.
재미있습니다. 함께 해요)
👉 지난 칼럼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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