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계속 된다

Story. ⟪버마 시절⟫ 조지오웰

2023.08.27 | 조회 1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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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보관소 알렉산드리아

이야기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이야기 보관소 【알렉산드리아】

가끔, 필요할 때가 있다. 

하루의 끝.

시계마저 지친 그 자리에 설 때.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봐도, 

마음 속을 아무리 헤쳐봐도, 찾고 싶은 것을 손에 잡지 못할 때. 

아니, 무엇을 찾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렸을 때.

 

그럴때.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다. 

놓쳐버린.

혹은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기 위해.

이곳의 문을 연다. 

 

이야기를 찾으러.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찾으러. 이곳에 온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 그런 것들을 까먹어 버릴 때가 있다. 아기 때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헤엄을 칠 줄 알았지만, 나이가 들면 학원에 다니면서도 쉽게 되지 않는 수영이랄지... 놀이터에서 쉽게 해내던, 균형 잡기, 마음껏 흔들리기, 넘어지기 또 일어서기... 그런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잊어버리고 만다. 그럴때마다 우리는 두려워진다. 넘어지면 어쩌나. 일어서지 못하면 어쩌나. 이렇게 흔들리며 살다간 큰일 날텐데? 너무 기우뚱...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겁쟁이가 되고 만다.

겁쟁이가 된다는 것. 그것은 그리 슬픈 소식만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겁쟁이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에 앞서 살았던 이들은 모두가 겁쟁이였을 것이다. 물을 보면 뛰어들지 않고, 신기한 버섯을 봐도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버섯을 먹고 죽은 이와 물에 빠져 죽은 이를 책 삼아, 배우고 또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우리가 겁이 많은 것을 특별히 슬퍼하거나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겁쟁이 유전자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다.


거대해지고 싶었다. 은유나 비유가 아닌, 정말로 거대해지고 싶었던 적이 많다. 2미터까지는 좀 과할 것 같고... 한 190? 몸무게도 90에서 100 사이? 그렇게 거대해지고 싶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작아서 좋은 것이라곤 별로 없었다. 지하철이나 버스, 비행기를 탈 때, 덜 불편하다는 것 정도? 나머지는 죄다 불편하다. 그렇잖는가. 전등을 갈때도 작으면 어찌나 불편한지... 그래서 거대해지고 싶었던 적이 많다.

과거, 작다는 것은 불편함을 넘어 생존의 문제였을 때가 있었다. 작고 힘이 센 경우보다는 크고 힘이 센 경우가 훨씬 많았고, 체급의 차이는 작은 결투에서부터 큰 전투에서까지 불리하게 작용하곤 했다. 그래서 작은 이들은 더 많이, 더 빨리 죽었고, 큰 사람들은 살아남아 후손을 남겼다. 그런 상황이 역전... 까지는 아니지만. 균형을 맞추게 된 것은 어떤 이가. 작았던 어떤 이가. 총을 만든 그 순간이었다. 총은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쏠려 있는 시소를 다시금 일자로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작고 겁많은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이 겁많은 작은 이들의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다.


 

"무슨 생각해요?"

"아무 생각도 안하는데요."

"왜 만날 아무 생각도 안해요?"

"이건 본능이에요. 에너지를 아끼는 거죠.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 모르고, 또 언제 도망치거나 싸워야 하는 일이 생길지 모르니. 에너지를 아껴두는 거예요."

"지금이 무슨 선사시대라도 되는 줄 알아요?"

"그떄보다 나을 건 또 뭐예요?"

그런가?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D의 말처럼 하루를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말 그대로 고군분투한다. 때로는 맞서 싸우고, 대부분은 도망치며 그렇게 살아 남으려 애쓴다.

"그래서 이야기가 필요한 거 아닐까요?"

"갑자기 무슨?"

"들어봐봐요. 우리는 모두 겁이 많잖아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고, 또 어떤 상황을 맞닥뜨릴지도 모르고. 일종의 예행연습이 필요한 거죠. 게임이 아니니까. 목숨이 여러 개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때 이야기가 필요한 거죠.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D의 말처럼 우리에게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생존. 그 자체일지 모른다. 과거, 글도 말도. 언어도 없던 시절. "우우."나 "우아." "아우우." 같은 소리만 낼 수 있던 시절. 그때도 벽에 그림을 그려 자신의 경험,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려 했던 것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그 그림을 보고 자신의 아이들이, 그 아이의 아이들이.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야기를 남겼을 것이다.

혹은 그냥. 유희를 위해서였을 수도 있지만.

"그런데 Y.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어떤?"

"시작은 뭘까요?"

"뜬금없이 무슨 시작?"

"이야기의 시작 말이에요. 그렇잖아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처럼. 이야기는 짓고 싶은 사람의 마음이 먼저였을까요, 이야기를 찾는 사람의 마음이 먼저였을까요. 그러니까 공급이 필요해서 수요가 생긴건지... 수요가 있어서 공급을 한 건지. 이런 거 안 궁금해요?"

당연히 궁금하다. 그럴 땐, 책을 펼쳐야겠지.


 

“대체 나는 무엇을 쏜 것인가?”

오웰은 물었다. 이번에도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보고서를 마저 써야 하는데 낭패였다. 오웰은 보고서의 남은 칸을 그대로 둔 채 보고를 마쳤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오웰을 제외한 다른 유럽인들은 오웰이 무엇을 쏘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대화를 했다. 늙은 유럽인은 “그 코끼리를 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네.”라며 칭찬을 했고, 젊은 유럽인들은 코끼리의 값이 얼만데 그것을 쏘았냐며 가볍게 질타를 했다. 그들은 자신이 쏘지도 않았으면서 무엇이 죽었는지 정확히 안다는 듯 말했다. 아니, 이미 그 이상의 논리를 펼치고 있었다. 오웰은 그것이 몹시 이상했다. 방아쇠를 당긴 자신은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데 그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니. 그제야 오웰은 알 수 있었다. 모든 유럽인들. 그들 역시 이 연극에 오른 소품들이라는 것을.

집으로 돌아온 오웰은 생각했다. 시프리언스 사립학교 시절의 자신과 제국 경찰의 옷을 입은 지금의 자신을.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자 허리춤에 찬 권총이 답했다. ‘죄의식.’ 정답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저 차갑고 기름때가 잔뜩 낀 권총 한 자루 만큼의 죄의식. 그것이 전부였다. 그때까지 오웰은 총이 있음은 알고 있었지만 왜 있어야 하는지 물어본 적은 없었다. 총을 차고 있는 자 중에서 가장 사악한 자는 자신이 총을 왜 차고 있는지 모르는 자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총을 휘두르는 자와 그 총에 당하는 자. 둘 사이의 흑백을 나누는 것만으로 의식 있는 백인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분명한 죄였고, 오웰은 오랜 시간 죄를 짓고 있었다. 위험했다. 죄를 깨닫는 자에게만 내리는 형벌이 찾아올 차례였다. 이제 곧 누군가 방문을 걷어차고 들어와 자신을 잡아갈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죄를 지은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대가 역시 혹독할 것이었다. 오웰은 서둘러 형벌을 준비해야 했다.

오웰은 지금껏 쌓인 죄에 대한 복역을 결심했다. 다행히 복역의 방법은 스스로 정할 수 있었고 오웰은 펜을 들었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오웰에게 있어 복역에 따르는 노동이었다. 물론 글로써 자신의 형량을 줄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것은 그저 죄인이 보내야 할 일과 중 하나였으니까. 다만 바람이 있다면 자신의 글이 누군가에게 질문으로 남는 것. 질문이 그들을 죄의식이라는 답으로 안내해주는 것. 그것이면 노동의 대가로 충분했다.

이제 무엇을 써야 할까. 책상에 앉은 오웰은 생각했다. 사형수와 코끼리. 오웰의 펜은 그들의 생명을 적기 시작했다. 길고 길 속죄의 시작으로는 더없이 좋은 이야기였다.


 

"어때요?"

"뭐가요?"

"이 글을 보고도 뭐가요라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그대는?"

"요즘은 짧은 기사에도 세 줄 요약이 베댓인 거 몰라요? 요약좀 해줘봐요."

"거저 먹으려고 하는 건 여전하네. 들어봐요. 조지 오웰은 원래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었어요. 그런데 공부를 잘해서 겨우겨우 장학생으로 비싼 사립학교에 다닐 수 있었죠. 그리고 제국 경찰이 되어 버마, 지금으로 말하면 미얀마에 발령을 받죠. 그리고 거기서 보고 말죠.. 권위와 권력. 부패와 부조리. 자신이 가장 증오하던 것이 자신의 총과 제복에 씌워져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 역시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것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그거랑 이야기랑 뭔 상관이에요?"

"우리 D는 진짜 다 떠먹여줘야 되는구나? 그쵸?"

"맞아요. 아- "

"못산다 진짜... 이게 시작이라고요. 조지 오웰이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 말이에요. 오웰은 자신을 위한 속죄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말하자면 오웰은 독자를 위한 글이 아닌, 수요를 위한 공급이 아닌, 스스로를 위한 글쓰기를 했던 거예요"

"그런데 신기하게...?"

"신기하게 그 글에 대한 수요가 어마어마했던 거죠."

"그럼 Y 생각에는 수요보다는 공급이 먼저다?"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지."

"왜요...?"

"이걸 한 번 봐봐요."


 

헤세는 펜을 들었다. 자신이 써야 하는 글이 여태껏 자신 안에 있었다는 것, 그것도 매일 아침 쳐다보던 거울 속에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늦은 만큼 빨리 쓰고 싶었다.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은 아마도 한 인간에 관한, 그래서 모든 인간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었다. 그 이야기의 끝을 맺는 데는 몇 주의 시간도 길었다. 무엇을 써야 할 지 깨달은 천재 작가에게 필요한 시간은 단 몇 주면 충분했다. 헤세는 꿈속에 등장했던 괴한의 이름을 소설로 가져와 주인공을 창조해냈다. 그리고 데미안의 이름을 가진 그 인물로 하여금 창조주와 악의 모습을 동시에 투영해 냈다. 그러자 데미안은 스스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선과 악은 동시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개인 안에 잠재한 그것을 발견해 내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이건 또 왜...?"

"또 떠먹여 줘?"

"네, 배고프네요."

"지금 이야기는 수요를 위한 공급의 아주 좋은 예죠. 헤세는 질풍노도의 1인자였을 정도로 심한 풍파의 어린시절을 보냈죠. 그러다 성공할 무렵이 되자 전쟁은 전쟁대로 나지, 나라에서는 배신자라고 손가락질 하지, 가족들은 아프기 시작하지... 도무지 발 붙일 땅이 없다는 생각만 잔뜩 들었어요. 그러니 어쩌겠어. 또 마구 흔들릴 수밖에.

그러다가 겨우 마음을 다잡자 보인 것이 뭐였게요?"

"뭐였는데요?"

"자신처럼 흔들리는 사람들이었죠.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공통의 경험과 감정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잖아요. 그 시대에는 헤세처럼 전쟁과 끝없이 변화하는 세상의 모습에 혼돈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던 거예요. 그래서 헤세는 자신을 위한, 그러면서도 모두를 위한 이야기. <데미안>을 쓰게 된거죠." 게다가 여기 봐봐요.

<데미안>의 집필을 마친 헤세는 자신의 이름을 감추었다. 왜냐하면, 헤세는 이 이야기를 읽을 젊은이들에게 이 글이 어느 늙은 작가의 작품이 아닌 그들과 같은 청년의 글이자 메시지로 전달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헤세는 그런 의도를 살리기 위해 <데미안>의 작가 이름에 소설 속 주인공인 에밀 싱클레어의 이름을 빌려왔다. 헤세의 의도대로 <데미안>은 젊은 신인 작가가 쓴 작품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이름 없는 작가의 등장에 유럽의 문학계가 시끌벅적해졌다. 특히 토마스 만은 "대체 <데미안>을 쓴 싱클레어라는 신인이 어떤 인물인가?"라며 출판사를 찾아가 직접 물어볼 정도였다. 하지만 헤세는 절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데미안>은 그렇게 젊은이가 쓴 젊은이들의 소설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이 얼마나 이타적인 마음이자, 수요를 위한 적절한 공급이에요?"

"진짜 그러네요. 그럼 Y생각에 이야기는 수요가 공급에 앞선다?"

"아 거참. 답 정하는 거 좋아하네?"

"정확한 게 좋잖아요."

"내 생각엔 둘 다에요.

"에이, 그런 황희 정승식 답안지 말고. 좀 더 화끈한 대답 없어요?"

"뭐 굳이 고르라면 당연히..."

"당연히?"

"아 참! 이 이야기도 내가 들려줬나?"


 

킹은 미완의 소설 원고를 구긴 채 쓰레기통에 버렸다. 버려진 원고 위로 담뱃재가 수북이 쌓였다.

다음 날은 일상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시작한 첫 원고를 우체통이 아닌 쓰레기통에 넣어야 했던 킹은 실패자의 모습으로 영어 수업을 했다. 물론 아무도 그가 무언가에 실패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가 성공한 모습을 본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으니까.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킹을 맞아준 것은 태비사 였다. 구겨진 원고 뭉치를 들고 있는 태비사. 킹은 태비사의 손에 들려진 구겨진 원고 뭉치를 보고는 놀란 표정으로 태비사를 바라보았다. 원고 위로 수북이 쌓였을 담뱃재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구김 역시 모두 펴진 상태였다. 태비사가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었다. 킹은 원고를 가리키며 실패한 이야기라고 말했지만 태비사는 손에서 원고를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 킹이 노트를 품에 끌어안은 것처럼 원고를 양손으로 꼭 쥐며 말했다.

“이 소설에는 무언가 있어요.”

태비사는 미완의 원고 속 이야기를 단순히 재미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원고에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고 말했다.

"어때요?"

"뭐가요..."

"이 걸 보고 느껴지는 게 없어요?"

"그냥 설명해주면 안돼요?"

"그래, 알았어. 알았어. 봐봐요. 스티븐 킹은 무명 시절이 엄청 길었어요. 자신은 재밌다고 생각한 이야기도 어쩐 일인지 사람들은 별반 좋아해주질 않았죠. 데뷔작이었던 <캐리>도 그랬어요. 처음엔 재밌을 것 같아서 시작했지만, 이번에도 독자들의 선택을받진 못할 거라는 생각에 집필을 포기하고 말죠.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이야? 쓰레기통에 버린 원고를 아내 태비사가 보고 저렇게 말했던 거예요. 이 작품엔 뭔가가 있다고. 그걸 꼭 보고 싶다고."

"말하자면 첫 번재 독자가 생긴 거다?"

"그렇지! 이제야 말이 통하네. 작가에게 있어 첫 번째 독자. 그것만큼 중요한 존재가 또 있을까요? 내 이야기를 읽어주고 좋아해주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의 마음은 엄청난 동력이 돼요. 이야기라는 거대한 성을 짓는 일의 동력이.

"그런데 Y."

"응?"

"그러면 위험한 거 아니에요?"

"뭐가요?"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 점점 사라지고 있잖아요. 그럼 이야기도 점점 더 죽어가는 건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른다. 종말론은 어느 시대, 어느 사람들에게나 인기 있는 장르다. 그래서 이야기도, 소설도, 책도 지금껏 수없는 종말을 당하곤 했다. 그럴 땐 이런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

멀리서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박수 소리는 집 앞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킹의 바로 옆에서는 태비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때로는 질문을 했고 때로는 결정을 했다. 또 때로는 아무 의미 없이 그저 목소리만을 전했다. 따뜻한 믿음과 함께 말이다.

킹은 가장 가까운 곳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북적이는 집 밖이 아닌, 새로운 이야기의 문이 있는 곳으로 몸을 틀었다. 필요한 모든 것은 태비사가 챙겨준 배낭에 담겨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완벽했다. 킹은 가벼운 마음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생전 보지 못한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바람이 불어왔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킹은 크게 휘청였다. 그러자 박수 소리가 사라졌다. 또 한 번 바람이 불었다. 이번엔 환호가 멀어졌다. 세 번째 바람이 불어와 다리가 꺾이자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킹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에도 킹은 땅을 짚고 일어섰다. 킹은 아직 걸을 수 있었다.

“당신을 믿어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리던 믿음의 목소리가 여전히 킹의 귀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새로운 문을 여는 주문, 믿음을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킹은 여전히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었다.

당신을 믿는다는 말에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세상에 내놓을 것이다. 그것은 흐르고 흘러 그 이야기가 필요한 이에게 닿을 것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은 세상. 그런 세상이라면 종말과 딱히 다를 것도 없다. 그러니 일단은 믿어 보는 거다. 서로가 서로를. 이야기를 짓는 이와 이야기를 즐기는 이들. 그 느슨한 연결을 믿어보는 것이다.

지금도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으러 알렉산드리아의 문을 연, 저 소리를 믿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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