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보건교사 이명옥 인터뷰

2024.11.30 | 조회 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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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는 '세상의 모든 문화' 필진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직업을 가진 직업인들을 인터뷰하는 주말 코너이자 공저(클릭)의 이름입니다.

 

1. 본인의 직업(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22년차 보건교사 입니다.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보건교사로 3년 일하다 임용시험을 보고 중학교에 발령 받았습니다. 3년 후 지역을 이동하면서 지금은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근무 기간 중간에 제 아이들을 키우느라 육아 휴직을 5년 정도 했습니다. 초등 3학년, 중 2학년, 고2학년 딸 셋을 키우고 있습니다. 내 아이를 돌보는 경험 덕분에 학부모와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 더 세심하게 돌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보호하고 지킬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건 선생님들과 함께 연구회를 운영하고 선생님들을 위해 보건 교육 사례를 나누는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2. 일을 하며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어떤 때인가요?

  학교를 옮기고 나서 처음 보건실에 온 학생이 눈도 안마주치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말도 잘 하지 않았습니다.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다며 자주 보건실에 들렀는데 검은 패딩을 절대 벗지 않더라구요. 다문화에 한부모 가정으로 취약한 가정 환경에 심한 비만으로 건강도 좋지 않은 학생이었습니다. 1학기 신체발달 검사를 하자마자 신청을 받아 학생들과 비만 프로그램을 하면서 그 학생에게 꼭 같이 하자고  권했습니다. 의외로 흔쾌히 수락하더군요. 

  비만학생들과 매일 아침 운동장 걷기를 했는데 그 학생은 두 달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습니다.  언제나 제 옆에서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했습니다. 보건실에서 주관하는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선물도 받아갔습니다. 그림도 잘 그리고 성격도 섬세한 아이더군요.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아침걷기에 꾸준히 참여하여 체지방도 많이 빠졌습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처음 봤던 그 아이가 맞나 싶게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2학기 걷기 프로그램에도 제일 먼저 신청을 했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변하고 자라는 것을 볼 때 가장 행복합니다. 

 학생들을 치료해주고 나면 늘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듣는 감사 부자가 보건교사입니다. 아이들이 고이 접어 건네주는 카드나 쪽지에 '선생님 사랑해요. 감사해요. 오래오래 우리 학교 있어주세요.'같은 말을 적어서 줄 때, 운동장을 걸으며 내 손을 잡아 올 때 내가 참 사랑받는 사람이구나 느껴져 감사합니다.

 

3. 일을 하며 가장 어렵고 힘든 때는 언제였나요?

 내가 잘못해서 학생의 건강이 악화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긴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그래서 늘 긴장되고 일어나지 않은 상황들을 수없이 시뮬레이션 해봅니다. 뉴스에 보면 보건교사가 초동응급처치를 제대로 했느냐가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합니다. 저도 학생이 크게 다쳤을 경우 대처에 대한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묻는 민원전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감기기운으로 열이 나서 보건실에 왔던 아이가 그 다음날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날 내가 뭔가 대처를 잘못한 것이 없나 되짚어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학생들이 다치는 모든 일들이 나와 관련이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은 그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건강지킴이부 동아리 학생들과
건강지킴이부 동아리 학생들과

4. 본인의 직업에 관심 있는 분들께 해줄 말씀이 있을까요?

  꿈은 명사형이 아니라 동사형이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보건교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졌다면 내가 이루고 싶은 동사형의 꿈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가르치다, 배우다, 돌보다 등 수많은 동사가 떠오를 겁니다. 그 동사형의 꿈에 걸맞는 일이 보건교사라고 생각될 때 그 길을 선택하고 몰입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꾸었던 동사형의 꿈은 보건교사가 되고 나서도 계속 될 테고, 혹시 보건교가 되지 않더라도 또 다른 모양으로 이루어 갈 수 있을 겁니다. 

 

5. 이번에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를 출간하게 되었는데, 집필하면서 느꼈던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내 직업에 대해 글을 쓰면서 내 일이 더 좋아졌습니다. 글을 쓰니까 내가 쓴 글보다 잘 해야겠다는 책임감도 들더군요. 인쇄된 책이 나오면 그런 생각이 더 커질 것 같습니다. 어딘가에 내 삶의 흔적이 남는 것이니까요. 

 책을 쓰는 일은 노동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만큼 힘들기도 했습니다. 공저라 쓰는 분량이 많지 않았는데도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수정하고 퇴고하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다양한한 직업을 가진 작가님들의 생생한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재미도 느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렇게 빛나게 일하는 작가님들을 알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작가님들 덕분에 내 삶이라는 캔버스는 더 확장되었고 다양한 색으로 삶이라는 그림을 채색했습니다.

 

6.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를 추천하는 말씀을 해주신다면요? 

 진로를 선택하고자 하는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작가님들이 그 일과 함께 살아내고 있는 생생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직업 선택에 대한 실제적인 이야기 뿐 아니라 그 직업을 대하는 태도와 전망까지 썼으니 유용하리라 생각됩니다.

 직업인으로 살아가며 내 직업에 대한 열정이 조금 식어 회의가 느껴지는 분들이 읽어도 좋겠습니다. 내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관점을 새롭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6명의 저자와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 관심이 있는 분들,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께도 좋은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7. 마지막으로 어떤 직업을 가져야할지,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할지 고민하는 청춘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중학생이었던 큰 딸이 고등학교를 정할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예술 고등학교 문예창작과에 시험을 치려고 하는데 음악쪽으로 갈까 싶기도 하고 마음이 혼란스럽다고 했습니다. 지금 하는 선택으로 인해 자기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선택에 대한 부담이 컸을 겁니다. 그 때 제가 해 준 말이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면 되는 거고, 만약 문예창작과를 가서 그 길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그 때 다른 길을 선택해도 된다고. 늦게 진로를 바꾸어도 네가 공부했던 경험들은 어딜 가지 않는다고요. 글을 쓰는 일을 하는데 음악이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다시 늦게 음악을 시작하면 글을 썼던 경험이 더해져서 더 풍부한 음악을 할 수 있지 않겠냐며 어떤 결정이든 응원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이 아이 마음에 많이 남았는지 뒤에도 고마웠다는 말을 여러번 하더라구요. 

 저는 조금 멀리 돌아서 보건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간호학과에 들어가서 도무지 간호학이라는 학문과 간호사라는 직업이 저랑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많이 방황했습니다. 졸업하고 나서는 아예 엉뚱한 길로 진로를 정했다가 또 실패를 했어요. 어쩔 수 없이 가진 자격증을 가지고 취직을 위해 보건교사가 되었는데 의외로 아이들과 만나고 가르치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돌아서 왔지만 그 돌아오는 과정에서의 경험이 제 삶에 남았습니다. 쉽게 이 일을 얻었다면 누구나 다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쉽지 않은 길을 돌아서 왔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멀리 돌아오는 길에 했던 경험은 다양한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어떤 길을 가겠다고 선택하는 일에 너무 큰 부담을 갖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은 내가 원해서 했던 것이고, 그 선택으로 인한 경험은 내 삶에 의미가 있으니까요.

 

* 보건교사 이명옥 SNS 행복상상충전소 : 네이버 블로그

* 2024. 11. 출간 -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클릭시 책정보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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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고도 특별한 세상의 어떤 직업들 그리고 일하는 마음들

국회의원 보좌관, 변호사, 사회복지사, 보건교사, 책방지기, 말 수의사, 보드게임 개발자, 비디오게임 개발자, 메디컬라이터, 인공지능 리서치 엔지니어, 유튜브 크리에이터, 미술대학 입시 컨설턴트, 전시 기획자, 투자 상담가, 인사 담당자 등 이 책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은 다채로우며 경력도, 일하는 현장이나 일의 성격도 모두 다르다. 다만 그 일이 무엇이든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나름대로의 가치를 찾고 있다는 점만은 같다.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만이 느끼고 알 수 있는 일의 기쁨과 슬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그 일의 의미를 진솔하게 펼쳐 보인 글들을 통해 우리의 하루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하는 마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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