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는 '세상의 모든 문화' 필진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직업을 가진 직업인들을 인터뷰하는 주말 코너이자 공저(클릭)의 이름입니다.
1. 본인의 직업(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던 정필입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던 중 대한민국 여성 정치학 박사 1호였던 은사님의 권유로 대통령 선거에서 자원 봉사 활동을 경험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99년도에 정당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2002년에 국회에 처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015년도 여름, 보좌관을 그만 두며 정치 현장에서 떠났고, 현재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보좌관이란 직업은 말 그대로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일이 전부인 직업입니다. 보좌관의 모든 일정과 계획은 국회의원에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보좌관에게 지시할 수 있는 사람, 보좌관이 보고해야할 사람도 오직 국회의원뿐입니다. 다만, 국회의원의 임무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데 있기 때문에 보좌관이 하는 업무의 방향과 내용은 전적으로 공익과 관련된 것입니다.
2. 일을 하며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어떤 때인가요?
보좌관이라는 직업이 한 사람의 목숨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입니다. 예전에 해외에서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수감되었던 한국인이 있었는데 그 분이 무죄를 선고받고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한 일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외교당국은 그분의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고, 저는 그분의 가족이 SNS에 올린 내용을 통해 처음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보좌하던 국회의원이 당시 외교통상위원회 소속이었기에 당장 외교통상부에 대책을 촉구했고, 전문가 5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 팀을 현지로 파견해 그 분이 무죄를 받도록 이끌었습니다. 그 때는 그분이 무사히 돌아온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 사건이 제게 가장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이 일로 제가 보좌했던 국회의원은 SNS에서 젊은 세대들로부터 꽤 많은 칭찬과 애정을 받았습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나 외면이 만연한 상황에서 국민들, 특히 청년층의 관심과 응원을 받기는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진정성이 국민에게 닿을 때 국민들은 평소에 싫어하고, 관심없던 국회의원이었다 할지라도 그의 노력을 인정해줍니다. 해외에서 무사히 돌아온 분과 SNS 속의 사람들, 그리고 언론은 저의 존재를 모르거나 잊었겠지만 보좌관의 노력으로 국회의원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일 또한 보좌관의 큰 보람입니다.
3. 일을 하며 가장 어렵고 힘든 때는 언제였나요?
보좌관마다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다릅니다만 제 경우에는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다른 보좌관들의 경우, 존경할 수 없는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것, 의원실 내 다른 보좌진들과 관계가 좋지 않은 것, 업무의 성격이 맞지 않는 것 등도 힘들어 하는 요소로 꼽힙니다. 제 경우는 완벽하지는 않아도 존경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보좌했고, 의원실 내 다른 식구들과도 끈끈한 의리가 있었고, 공익을 추구하는 일의 성격도 잘 맞았습니다. 다만, 저의 모든 일정이나 계획이 국회의원에게 맞춰져 있어야 하다 보니 개인적인 시간이나 여유를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예고 없는 야근이 많아 친구들과 한 저녁약속을 파투내기 일쑤였고, 휴일에도 출근하는 일이 비일비재해 가족들 생일에 근사한 식사를 함께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해외여행을 가는 일은 한동안 아예 꿈도 못 꿨습니다. 국회는 긴급한 사안이 벌어지면 신속하게 정부에 대응을 촉구해야하기 때문에 갑자기 잡히는 회의 일정이 많습니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의 일정도 수시로 바뀝니다. 그래서 보좌관은 중장기적인 여행 계획이나 취미생활을 위한 시간을 고정적으로 마련하기 어렵습니다. 계획은 세우지만 결국 취소하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이제 좀 나의 생활과 시간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마침내 국회를 나왔죠.
4. 본인의 직업에 관심 있는 분들께 해줄 말씀이 있을까요?
국회라는 공간과 보좌관이라는 직책이 일반 직장에 비해 조금 특별하게 느껴져서 관심을 갖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또 조금 거창하게 사회 정의 실현과 같은 무거운 사명감을 갖고 시작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국회에 들어오면 실망할 확률이 높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조금 폼 나게 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일하면 업무의 강도나 범위가 주는 부담이 커서 폼을 낼 겨를도 없습니다. 일반 직장인이나 공무원처럼 야근 수당이나 휴일 수당이 따로 책정되지도 않고, 월차나 연차 휴가가 명확하게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노동법을 만드는 국회지만 정작 보좌관들의 노동 환경은 열악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의원실 마다 많은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그런 조건을 감수하고서 이 일을 하는 경우는 보통 두 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하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나 의지가 있는 사람, 다른 하나는 이 일과 자리를 통해 시의원이나 국회의원처럼 선출직 공무원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일반 회사와 성격이 다른 만큼 자신의 적성이 정말 이 일에 맞는지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고, 판단이 잘 안서면 국회 인턴 경험을 통해 실제로 일을 해본 후 자신의 직업으로 삼아도 좋을지 결정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5. 이번에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를 출간하게 되었는데, 집필하면서 느꼈던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보좌관으로 일해 왔던 시간들을 글로 쓸 기회가 생기리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일을 글로 설명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지만 마치 영화를 보듯이 내가 일해 온 날들을 되감기 하고, 때로는 어떤 한 순간에서 일시 정지하거나 반복 재생하는 과정은 과거의 나를 이해하고 현재의 나를 인정하는데 중요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마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미래에는 이 책을 썼던 시간들에 책갈피를 꽂아 넣고 싶을 것 같습니다.
6.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를 추천하는 말씀을 해주신다면요? [어떤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왜 추천하고 싶나요?]
일을 글로 배울 수 있는 기회입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일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은 곧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며, 이 다양한 세계 속에서 고유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7. 마지막으로 어떤 직업을 가져야할지,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할지 고민하는 청춘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지금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것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실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청춘의 특권일 것입니다. 주변에서 원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길 바랍니다. 제발.
* 2024. 11. 출간 -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클릭시 책정보 이동)
평범하고도 특별한 세상의 어떤 직업들 그리고 일하는 마음들
국회의원 보좌관, 변호사, 사회복지사, 보건교사, 책방지기, 말 수의사, 보드게임 개발자, 비디오게임 개발자, 메디컬라이터, 인공지능 리서치 엔지니어, 유튜브 크리에이터, 미술대학 입시 컨설턴트, 전시 기획자, 투자 상담가, 인사 담당자 등 이 책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은 다채로우며 경력도, 일하는 현장이나 일의 성격도 모두 다르다. 다만 그 일이 무엇이든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나름대로의 가치를 찾고 있다는 점만은 같다.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만이 느끼고 알 수 있는 일의 기쁨과 슬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그 일의 의미를 진솔하게 펼쳐 보인 글들을 통해 우리의 하루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하는 마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가 될 것이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