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 첫 식사를 잊지 못한다. 평소 식사량이 많지 않아서 밖에서 그러하듯 조금의 배식을 받아서 자리에 앉았다. 앞에 있던 상병이었던 선임이 물었다.
ㅡ 너 왜 이렇게 조금 먹냐.
ㅡ 저 원래 소식하지 말입니다.
숟가락이 날아왔다.
ㅡ XX 그럼 나는 돼지라 많이 처먹냐?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ㅡ 뒤지기 전에 다시 퍼와라.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은 듯 뛰어가서 밥과 반찬을 수북이 채워가지고 퍼왔다. 앞에 있는 선임의 양보다 두배 가량 되었다. 하지만 더 빨리 먹어야 했다. 밥과 반찬을 거의 물 마시듯 마셔버렸다. 속이 좋지 않았다. 그날은 겨울도 아닌데 유난히 춥고 외로운 밤을 홀로 맞이했다.
군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다. 이 기억을 필두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면으로 그 시절들이 올라온다. 어떤 것들은 더 이상은 올라오지 말라고 꾹꾹 눌러 차마 그 전신은 확인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고, 어떤 것들은 제법 반가워서 그 전신을 확인하고 싶은 것들도 있다. 나에게 군대는 딱 그 정도의 온도다.
대한민국 남성들 중, 군필자는 모두 저마다의 군대의 온도를 지니고 있다. 그건 딱히 기억하지는 않아도 지워지지는 않는 그런 질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어떤 것이 트리거가 될 때에, 누군가 갑자기 라테 이즈 홀스를 시전 하며 군대 이야기를 한다던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한다던가, 아니면 여러 매체에서 군대에 관련된 콘텐츠들을 본다던가 하면, 시간여행을 하듯 생생하게 그 순간으로 돌아가버리고 만다.
<D.P>는 이런 맥락에서 딱 그런 장치가 되어준다. D.P는 ‘Deserter Pursuit’의 줄임말로 ‘군무이탈 체포전담조’를 말한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고, 이런 보직이 있는 줄도 몰랐다. 일단 이 콘텐츠를 보면서 놀랐던 것은, 어떻게 이런 소재를 가지고 ‘그들은 왜 탈영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역주행하는 듯한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가 있지 라는 것이었다. <무브 투 헤븐>을 보면서도 참 즐거웠지만, 이건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간 참신함이 있었다.
<D.P>는 가혹행위를 강조한 연출 때문에 극사실 주의처럼 보이지만, 사실 군대 이야기 극사실 주의의 최고봉은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라고 생각한다. 또한 풍자의 최고봉은 <푸른 거탑>이었고 <진짜 사나이>는 예능이었다. 하지만 나열한 모든 콘텐츠들 보다 <D.P>는 연기, 연출, 주제의식, 음악 이런 부분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수작이다.
정해인은 확실히 야누스 적인 매력을 가진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해일이 그러했듯, 정말 많은 얼굴들을 가지고 있어서, 멜로도, 스릴러도, 내면연기가 강조되는 이런 작품도 소화해내는 그 스펙트럼이 놀라웠다. 황 병장을 연기한 신승호 배우는 무려 군필이 아니라는 사실이 엄청난 충격이었고, 헌병대장을 연기한 현봉식 씨는 나랑 동갑이고, 헌병 보좌관 손석구보다 1살 어리며, 군무이탈 담당관 김성균보다 4살 어리다는 것도 신기했다. 조석봉 일병을 연기한 조현철은 박정민이 그 연기 재능에 좌절했다고 한 것이 결코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모든 배우들보다 구교환의 연기는 … 그냥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싶을 정도다. 누군가의 댓글의 표현처럼, 정해인 보고 들어왔다가 구교환에게 갇혀버리게 만든다.
첫 인트로 장면에서 어린아이 때부터, 유치원, 초등학생, 대학생,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모습이 촤르르 스쳐 지가 나는 장면이 나오고, 배우 정해인이 모두가 앞을 보고 집합해 있는 체육관에서 홀로 뒤를 돌아보는 모습은 몹시나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 연출을 통해서 아마 군필자들은, 군대에서 들었던 ‘다 부모님의 귀한 자식들이다. 잘해줘라’라는 톤의 이야기가 떠올랐을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도 보통 넷플릭스를 볼 때 인트로는 그냥 넘겨버리는데, 총 6회가 진행되는 동안 인트로를 넘기지 않았다. 군대는 개인의 개성이 모조리 삭제되는 곳이다. 그런 군대에 대해서 이들도 다 사랑받던 시절이 있었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 꿈, 청춘, 방황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몹시나 코끝이 찡해지는 연출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복싱을 통한 격투 장면이었는데, 와 이거 되게 잘 찍었는데? 하면서 돌려보기도 많이 했고 감탄했다. 전체적으로 액션의 질감이 너무나 좋았다. 또한 음악도 만만치 않게 아련하고 먹먹해서 종일 그 속에 있고 싶을 정도로 여운이 강했다. 6화 밖에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이라, 마지막에 임팩트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지 너무 급하게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라 생각한다. 좀 더 많은 사연들을, 천천히, 적절히 가볍게 또 묵직하게 풀어주고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이 떠오르며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극 중 나오는 대사처럼 ‘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군대가 뭐 바뀌나 라는 회의적인 생각으로 마무리된 것 같다. 결국 ‘참으면 윤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라는 말이 떠오를 뿐, 딱히 <D.P>도 어떠한 답을 주지 못하는 곳이 결국 대한민국 군대라는 집단 아닌가. ‘우리는 선임 되면 그러지 말자’라며 준호를 다독 거리고, ‘아픔 없는 교훈엔 의미가 없지. 인간은 희생 없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니까’라는 <강철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대사를 말하며,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를 외치며 나아갔지만, 결국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추억과 먹먹함 많이 오래 남는다. 준호의 마지막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는 것이었을까. 예나 지금이나 군대는 강철로 된 무지개 인가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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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B급들을 위한 작은 시’ 글쓴이 - 김싸부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닌, 글이 나를 쓰길 바라며, 오늘도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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